아이와 함께 《기억을 달리는 소년》을 읽는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어요.
책장을 덮은 뒤에도 이야기 속 장면들이 계속 떠올라서요.
역사 동화라고 하면 어렵거나 교훈이 앞설까 걱정했는데,
이 책은 그런 염려를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해 주더라고요.
이야기의 중심에는 노비 신분의 소년 사훈이가 있어요.
조선 시대, 그것도 단종 복위 운동이라는
무거운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요.
그래서인지 아이도 역사적 사건보다는 사훈이의 감정에 먼저 공감하더라고요.
사훈이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삶을 살아야 하는 아이예요.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이어가야 하는 운명,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이 먼저인 현실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지요.
그 모습이 지금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마음과도 닮아 보여서,
읽는 내내 괜히 더 마음이 쓰였어요.
특히 인상 깊었던 인물은 스승 유훈창이었어요.
사훈이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 사람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 주는 존재였거든요.
아이도 책을 읽으며 “이런 어른이 곁에 있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 한마디에, 이 책이 아이에게 어떤 온도로 다가갔는지 느껴졌어요.
아버지 철식의 선택들도 오래 남았어요.
정의롭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택해야 했던 모습이,
어른인 제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더라고요.
아이 역시 아버지의 행동을 단순히 나쁘다고 보지 않고,
왜 그런 선택을 했을지 한참을 생각했어요.
그 과정을 지켜보며,
이 책이 아이에게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남겨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 후반부로 갈수록 ‘기억’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점점 또렷해져요.
앞에 나서지 못해도,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해도, 누군가는 그 일을 보고 기억하고 다음으로 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조용히 전해지지요.
아이도 책을 덮으며,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고 했어요.
그 말이 참 고마웠어요.
《기억을 달리는 소년》은 역사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삶을 묻는 이야기였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대신 스스로 생각해 보게 만들어요.
아이와 나란히 읽고, 각자 다른 마음을 품게 되는 그런 책이었어요.
조용하지만 깊게, 그리고 오래 남는 동화를 찾고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어요.
읽는 동안 아이는 한 뼘 자라고, 어른은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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