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대신 밭으로 출근하는 삶. 처음엔 생소했습니다.
‘은퇴 후 부모님과 밭을 일군다’는 설정은 어쩐지
TV 교양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이야기 같았거든요.
그런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어느새 제 마음도 밭으로,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에게로 스르르 스며들었습니다.
🧡 “우리 가족은 사이보그 인간이다”
책의 첫 문장이 너무 강렬해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어요.
“엄마는 발목에 철, 아빠는 허리디스크 보형물, 나는 임플란트 나사…”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이 말 안에는,
사실 건강이 온전하지 못한 가족이 서로를 붙잡고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절절한 진심이 담겨 있었어요.
가훈이 *‘알아서 각자 아프지 말자’*라는 집. 처음엔 웃겼지만,
곱씹을수록 가슴 한편이 아려왔습니다.
누군가를 돌보기도, 돌봄을 받기도 어려운 몸이지만,
서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버텨내는 가족.
그 모습이 참 따뜻하고, 묵직했어요.
🌼 밭일이란 게 이런 거였구나
저자처럼 조기 은퇴를 하고 땅을 일구는 삶,
낭만만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다르더라고요.
고라니가 작물 다 먹어치우고, 쥐가 씨앗을 물고 튀고,
삽질하다 허리 삐끗하는 일상.
그럼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삼겹살 파티”를 벌이는 가족의 풍경은 정말 영화 같았어요. 작고 느린 기쁨이 모여 결국 ‘행복’이 되는 걸까요?
💐 엄마, 딸은 서로가 친정이야
특히 저를 울컥하게 만든 건 **‘엄마와 딸은 서로의 친정’**이라는 말.
저도 딸이 있는 엄마이기에, 이 문장에서 참 오래 머물렀어요.
퍼즐을 함께 맞추고, “다음 생엔 엄마 딸로 다시 태어나 갚아줄게”라는 다짐.
세상에, 얼마나 아름답고 뭉클한 고백인가요.
평생 대가족의 밥상을 차려온 엄마, 말수 적고 불편했던 아빠와의 서먹함을 하나씩 허무는 저자의 노력이 진심으로 전해졌어요.
🐾 고양이와의 동거, 그리고 나를 돌보는 삶
1인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건 고독하지만, 고양이 ‘나뷔’와 ‘벙벙’이의 등장으로 이야기엔 따뜻한 체온이 더해집니다.
‘야옹이에게 팔베개를 해주는 시간’, ‘털 입술’, ‘털 백반’ 같은 귀여운 표현들은 읽는 내내 미소 짓게 만들었어요.
자신의 생일을 혼자 챙기고, ‘친구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에서 저는 오히려 단단한 자존감을 느꼈습니다. 외로워도 외로움에 눌리지 않는 삶.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주는 위로 아닐까요?
🌷 나도 퇴사하고 열심히 한가하게 살고 싶다
마지막 에세이 제목이 이렇습니다. “퇴사하고 열심히 한가하게 살겠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말인데, 묘하게 공감됐어요.
바쁘지 않지만 의미 있는 삶,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매일매일 곱게 살아내는 삶.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가장 바라는 삶의 모습 아닐까요?
💖 나의 감상 한 줄 정리
이 책을 덮는 순간, 제 안에 이런 문장이 맴돌았어요.
“오늘도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엄마로, 나의 삶을 사랑스럽게 살아낸다.”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는 그냥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생 소풍에 필요한 따뜻한 도시락 같은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