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행복』 – 그 잊혀진 감정의 향기를 따라 걷는 산책
“그러자 그녀가 바라보는 동안
빛이 움직이고 어둠이 움직였다.
그녀는 누운 채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행복했다. 완전히 행복했다.
시간이 멈췄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숨을 잠깐 멈춘 채로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어요.
그 말들 사이에서 무언가 따뜻하고 낯익은 감정이 퐁 하고 올라왔거든요.
그것은 아마도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행복의 파편’ 이었을 거예요.
🌸기억은 풍경을 타고 흐르고
『모두의 행복』은 단순한 산문집이 아니에요.
정원과 풍경, 나무와 꽃, 바람과 햇살을 따라 흐르는 울프의 기억, 감정,
내면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는 에세이예요.
울프가 유년기를 보낸 세인트 아이브스의 바닷가 풍경, 켄싱턴 가든스의 벚꽃,
몽크스 하우스의 사과나무 아래에서 들은 까마귀 소리.
이 모든 장면은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흔들리며
제 안에서 “그때 나도 그랬지”라는 감정들을 깨워줍니다.
저도 어릴 적 외할머니 댁의 마당을 떠올렸어요.
장독대 옆에 피어있던 분홍 접시꽃, 여름 내내 귀에 익숙했던 매미 소리.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이 제 기억 속 정원과 맞닿아 있었던 거죠.
🌼 정원, 그리고 ‘존재보다 비존재가 더 많은 하루하루’
울프는 정원을 단순히 아름다운 공간으로만 보지 않아요.
정원은 감정이 스며들고 기억이 자라나는 내면의 풍경이에요.
그녀는 존재보다 비존재가 더 많은 하루 속에서 아주 작은 감각,
사라지는 순간,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을 언어로 포착해내요.
이 부분에서 저는 정말 울컥했어요.
우리는 보통 ‘행복’을 말할 수 있는 큰 사건이나
완전한 순간으로 기억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울프는 행복을 아주 작고 미세한
잔향처럼 떠오르는 감정의 흐름으로 말해요.
그리고 그게 너무 솔직해서, 너무 진짜여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 전쟁과 정원 사이, 감각의 끈을 놓지 않은 글쓰기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울프가 전쟁 중에도 정원에 집중했다는 점이에요.
포탄이 떨어지고 유리창이 흔들리는 그 순간에도,
그녀는 햇살이 벽을 스치는 움직임을 기록해요.
“나는 무無에 대해 생각한 것 같다.”
이 말이 저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어요.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그녀가 붙잡은 것은
삶을 감당하게 하는 글쓰기와 감각이었어요.
그 작고 여린 마음을 통해 울프는 결국 ‘모두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거예요.
🌷 나만의 정원, 모두의 행복
『모두의 행복』은 거창한 철학도, 무거운 메시지도 없어요. 하지만 그 안에는 잊고 있던 감정의 씨앗이 가득 담겨 있어요. 그리고 조용히 그 씨앗을 꺼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 정원에 심도록 유도해요.
책을 덮고 나서 저는 아주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고 근처 공원을 산책했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아직 피어 있던 봄꽃,
벤치에 걸터앉은 모르는 노부부의 웃음소리. 그 순간 저는 문득 생각했어요.
“아, 지금, 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