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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으면 들리는 책 ㅣ 웅진 세계그림책 267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지음, 레너드 웨이즈가드 그림, 이혜원 옮김 / 웅진주니어 / 2025년 3월
평점 :
어릴 때, 한 번쯤은 눈을 꼭 감고 세상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지요.
하지만 매일 똑같이 오가는 소리들,
익숙하다는 이유로 무심코 지나쳐 버린 적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눈 감으면 들리는 책》은 그런 우리에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보자고 조용히 손 내미는 책이었습니다.

책 표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따뜻한 색감과 부드러운 터치가 인상적이었어요.
아기 강아지 머핀이 조심스레 소리를 듣는 장면이 살짝쿵 담겨 있어서,
책을 펼치기도 전에 가슴이 몽글몽글해졌습니다.
이야기는 눈을 다친 강아지 머핀에게서 시작됩니다.
의사 선생님이 머핀의 눈에 붕대를 감아주고 나자,
세상은 까만색으로 변해버려요. 그런데 머핀은 금세 깨닫지요.
“그래도 소리는 들을 수 있어!”
머핀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귀를 쫑긋 세우기 시작합니다.
자동차 소리, 고양이 울음소리,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머핀은 눈을 감고도 세상을 만나기 시작해요.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낮고 삐익삐익거리는 소리.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이 장면에서 선아가 말했어요.
“엄마, 머핀이 귀로 세상을 찾아가는 것 같아!
눈을 감으면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나 봐.”
그 말처럼, 《눈 감으면 들리는 책》은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세상’을 가르쳐줍니다.
이 책은 단순히 강아지 머핀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온 소리들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 소리에 담긴 세심한 풍경을 함께 느끼게 해줘요.
심지어 햇살이 비추는 소리,
눈이 쌓이는 소리처럼 평소엔 상상조차 못했던 소리들도
이 책에서는 아주 구체적이고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무엇보다 감탄스러웠던 건 책의 구성 방식이었어요.
소리가 크고 작거나, 높고 낮은 느낌에 따라 글자의 크기와 높낮이가 변주됩니다.
때로는 그림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기도 하고요.
머핀처럼 우리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소리에 따라 흔들리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책을 읽는 동안 선아와 저는 계속 서로 눈을 마주치며 귀를 기울였어요.
이 책은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책이었습니다.

《눈 감으면 들리는 책》은 1939년에 출간된 고전이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낡은 느낌이 없어요.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과 레너드 웨이즈가드라는 그림책의 거장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직접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고 또 살핀 끝에 탄생시킨 작품이라고 해요.
그래서인지 책 전체에 아이들의 감각과 눈높이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선아가 또 웃으며 말했어요.
“엄마, 나도 머핀처럼 눈을 감고 소리 찾아볼래!”
그 순간, 저는 《눈 감으면 들리는 책》이 단순한 그림책이 아니라,
아이의 감각을 깨우고 세상을 새롭게 만나게 해주는
소중한 안내서라는 걸 확신했습니다.

다 읽고 난 후,
선아랑 함께 눈을 감고 집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찾아보는 놀이도 했어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시계 초침 소리, 바람에 스치는 커튼 소리까지.
머핀 덕분에 우리 일상이 얼마나 소리로 가득 차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답니다.
《눈 감으면 들리는 책》은 아이와 엄마가 함께, 천천히,
오롯이 세상과 이어지는 멋진 방법을 알려준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만난 것만으로도, 세상이 조금 더 다정하게 느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