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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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전에 유레루라는 영화로 처음 만난 감독 나카시와 미와’. 영화를 본 후 그 섬세한 묘사와 독특한 영상이 한동안 계속 기억에 남았었는데 이미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번 소설은 읽기 전부터 아주 긴 변명이라는 제목에서 사람의 시선을 끈다.

쓰무라 케이라는 필명을 쓰는 유명소설가 기누가사 사치오. 아내 나쓰코가 친구와 여행을 갔다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나쓰코와 만나서 결혼생활까지 거의 2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지냈지만 아내의 죽음으로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다. 작가가 되기로 한 사치오를 10년간 미용사로 뒷바라지하고 쓴 글에 대해 평가해주었던 나쓰코였지만 언제부터인가 서로의 사이는 어색해지고 사랑의 감정은 사라졌다. 심지어 사치오는 외도까지.. 그랬기에 사치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행동하고 심지어 슬픔을 가장하기까지 한다. 그러던 중 아내의 친구 유키의 남편 오미야 요이치와 어린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엄마가 없어 생활이 어긋난 그 가족의 삶에 사치오는 도움을 주기로 하고, 그들과 함께하며 자신이 몰랐던 아내의 삶을 알게 되는데..

이 소설은 주인공 사치오의 1인칭 시점과 외도했던 편집자, 그의 매니저, 형사 등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으로 그들이 본 사고 후 사치오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사치오 본인과 타인이 본 그는 참 다르다.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고 전과 다름없는 삶을 영위하는 듯 생각하지만 타인이 보는 그의 모습은 지난 일상과 비슷해보이면서도 위태롭기 짝이 없다. 이러한 다양한 시점에서 본 사치오에 대한 섬세한 심리묘사는 우리가 접하기 힘든 중년 남자 소설가의 삶을 잘 느끼고 공감하게 해준다.

또 아내를 읽은 오미야 요이치는 대부분 사고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 사고에 가슴 아파하고 아내 유키를 계속 기억하며 추억하는 요이치. 이렇듯 이별에 대처하는 다른 두 사람의 상반된 모습은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아픔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어 소설임에도 현실감이 느껴졌다.

장거리 트럭운전수인 아빠 요이치는 중학교 시험을 준비하는 신페이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네 살의 아카리를 돌볼 여력이 없어 사치오는 도움을 주기로 한다. 이들을 만나며 사치오는 묘하면서도 살아 있음을 느끼고 또한 자신을 되돌아보고 아내 나쓰코의 새로운 모습을 알아가며 아내 나쓰코에 대한 생각이 그를 채우기 시작한다.

마지막에 시간에는 한계가 있음을, 가까운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감기 걸렸을 때 한 말을 후회한다는, 살아가기 위해 마음에 두고두고 생각할 사람이 누구에게든 필요하다는 그의 담담한 편지 내용을 보며 뒤돌아본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와 함께 뒤늦게 찾아온 아내에 대한 사랑을 절절히 느껴졌다. 여자 감독이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렇듯 섬세한 심리묘사로 공감대를 형성함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소설이나 에세이에서 많은 삶들이 지진의 영향을 받고 변화된 생각을 가지게 됨을 볼 수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지진으로 인해 헤어진 가족과 죽음, 상실에 대한 깊은 작가의 고민이 느껴졌다. 미래의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 현재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하라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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