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권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2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눈이 잘 내리지 않는 지역에 살고, 영화 ‘러브레터’나 ‘철도원’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하얀 눈이 가득 쌓인 설경을 실제로 겪어보고 싶은 마음을 꿈꾸어보지 않을까? 나는 그랬다. 언젠가는 눈쌓인 삿포로의 거리를 걸어보고 싶다는 낭만을 학창시절 꿈꾼 적이 있다. 그랬기에 이 책의 제목 ‘폭설권’을 보고 선듯 손이 갔다. 눈으로 덮인 마을의 강도살인사건. 낭만적이진 않지만 추리소설에서 많이 다루는 흥미로운 소재이고, 얼마전에 200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를 한 사사키 조의 장편소설 ‘경관의 피’를 읽었기에 더욱 경찰소설인 이 책에 대책없이 끌려들었다.

‘폭설권’은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인데, 첫 번째 이야기인 ‘제복수사’는 다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단편소설보다는 장편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장편소설로 나온 ‘폭설권’이 더 반갑고 읽고 싶었다.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 시모베츠 주재소의 주재경관 카와쿠보 아츠시 순사부장은 아침 첫 순찰을 마친 직후에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이를 시작으로 하여 점차 풍속32미터로 다가오는 폭풍설. 위가 좋지 않지만 돈도 없고 아내도 없고 한참 나이어린 여사원에게 무시당하는 절망감에서 회사돈 2천만엔을 훔치고 도망가던 니시다 야스오. 남편몰래 미팅사이트에서 만난 남자와 바람피다가 이 관계를 정리하려는 사카구치 아케미. 섹스와 돈을 목적으로 미팅사이트에서 여자사냥을 하는 스기와라 신야. 야쿠자의 부인을 죽이고 돈을 훔쳐 도망가는 사토 아키라. 강간하는 새아빠를 피해 가출한 여고생 사노 미유키. 사회의 암울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폭설을 피해 마을 펜션으로 모여든다. 그 곳 또한 범죄현장이 될 수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이 책에 눈에 띄는 것은 폭설에 대한 묘사였다. 홋카이도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저자의 경험을 살려 장엄한 대자연의 위력 앞에 무릎꿇는 인간의 모습을 내가 겪고 있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자칫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집안에서의 흔들거리는 창문과 바람소리와 도로에 쌓인 눈산들, 운전자들의 운전모습, 절전의 준비모습들에서 눈앞에서 영상이 펼쳐진 것 같은 현실감이 들었다.

작가 사사키 조의 사실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와 함께 펜션의 주인부부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이 모인 펜션의 레스토랑 안에서 생생하게 그들의 숨길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상황 속의 사람들의 심리를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사사키 조의 필력에 다시한번 놀라움을 느꼈다.

또한 일본 특유의 제도인 주재경관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전작인 ‘경관의 피’에서도 느꼈지만 마을주민들 가까이에서 밀착하여 그들을 돌보고 지키는 주재경관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깊었다. 먼 거리에 있는 경찰이 오기 전에 주민을 지키기 위하여 먼저 출동하는 카와쿠보의 행보에서 제복경관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고 빨리 읽고싶어졌다.

이 책은 마지막의 결말이 명확하지 않다. 다시 사무실로 간 니시마가 어떻게 되었는지, 미유키는 삿포로로 갔는지, 아케미는 남편과의 관계가 잘 해결되었는지... 그래서 다 읽은 후에 그들의 미래에 대해 상상할 수 있어 더욱 즐거웠던 것 같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제복경관 시리즈가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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