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와인
엘리자베스 녹스 지음, 이예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한 차례의 긴 꿈을 꾼 듯하다. 책을 다 읽은 후 며칠이 지나도 몽롱한 것이 뒷 여운이 많이 남았다. 읽기는 일주일전에 읽었는데 그 속에서 헤매이다 이제야 글을 쓴다..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스 녹스는 뉴질랜드 출신으로 1998년 뇌수막염에 걸렸던 기간 동안에 경험한 환상에 영감을 얻어 ‘천사의 와인 THE VINTNER'S LUCK’을 집필하였다. 그 해 독자가 선정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대중과 평단 양쪽으로부터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많은 상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1808년의 어느 날 사랑 때문에 가슴아파하는 양조업자의 아들 젊은 소브랑에게 천사가 나타난다. 그들은 매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한다. 소브랑은 천사를 경외하면서 하늘이 보내준 조언자라 생각하여 만날 때마다 지난 일년간의 일들을 털어놓는다. 첫만남 후 인간 ‘소브랑’과 천사 ‘새스’의 비밀스런 만남은 소브랑이 죽을 때까지 갖은 풍파를 겪으며 55년간 지속된다. 언뜻 보면 한 남자의 희노애락이 담긴 일대기이기도 하지만 정작 이 책에서 내 눈길을 끈 건 천사의 55년에 걸쳐 변해가는 모습이었다.

처음의 천사 새스는 높은 학식과 함께 약간 오만하면서도 도도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소브랑의 계속된 만남 속에서 변화하고 성숙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젊은 소브랑이 전쟁 때 적절치 못한 순간에 천사가 옆에 있음을 알았다고 얘기해도 무시하고 도도한 말을 하던 천사 새스가, 날개가 없어진 후에 사람들에 섞여 생활하려 하고 소브랑 가족의 가정교사가 되기도 하고, 늙은 노파에게 도움을 주려고 서기일을 하던 것까지 천사 새스는 점차 인간적 모습을 띄고 성숙되어져가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 책의 놀라웠던 점은 천사의 모습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면서도 섬세한 묘사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선지 읽는 내내 작가가 만들어낸 천사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소브랑의 천사 새스에 대한 생각과 욕망도 사실 이해될 수 없는 일이었으나 작가의 글을 읽고 있자면 모든 것이 가능할 것처럼 생각되어지기도 했다.

이 책은 481페이지의 조금은 긴 소설이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읽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시대순으로 이야기가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대한 설명을 모두 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소브랑이 밥티스트를 따라 갑자기 전쟁에 왜 갔는지, 셀레스트의 이상한 행동에 대한 대답, 살인자는 누구인지 등은 많은 시일이 지난 후에 밝혀진다. 이렇게 다양하고 매력적인 인물과 사건들을 함께 연결해 50년이 넘는 세월을 이끌어간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아마 눈으로 뒤덮힌 풍경을 보게 된다면 가까이 가서 눈 냄새를 맡고 천사 새스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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