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럼 영화 보자. 이거 이거 보고 싶어.  정말 별 기대없이, 그냥 매튜 맥커너히가

 나오니까, 놀란 감독이니까 하면서 보았다. 심지어 우주 다루는 영화인지도 몰랐어.

그냥 제목이 별 들 사이니까 별 나오나보다.  이렇게 멍청하게 보게 된 인터스텔라.

 

2. 영화관은 입추의 여지도 없이 꽉 차 있을 뿐이고. 영화는 아직 죽지 않았나

하며 나는 괴상한 착각을 하고. 세 시간 어떻게 버티지 하며 서서히 별 들 속으로

들어가는데 영화가 길거나 지루해서가 아니라 긴장감과 여러 가지 감정 때문에

버틴다, 라는 느낌이었고.

 

3. 인간의 미래. 우리가 사는 지구가 변해갈 모습. 인간의 선택과 대응.  영화 속에서는

작년에 작업을 하며 다루었던 시인 "Do not go gentle into the Night" 이라는 시가 되풀이

된다. 인터스텔라에서 말하는 밤, 이란 무엇일까? 시에서 의미하는 대로 노년이나 죽음?

어쩌면 그렇다면 그 늙어감이나 죽음의 대상은 다름아닌 "지구" 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구가 병들어갈때, 스스로도 버티지 못해 다른 생명의 터전이 되어갈 수 없을 때

인류는 지금껏 터를 잡고 살았던 행성을 버리게 될까, 아니면 마지막 호흡이라도 불어넣으려

해 볼까. 영화 속의 선택과는 별개로 우리가 사는 지구, 라는 생각을, 그러니까 내가 사는 동네,

나라가 아니라 더 넓은 공간에 대한 그림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렇겠지. 눈 앞에서는 우주가

펼쳐지고 있는데.

 

 

4. 최신과학, 물리학의 지식을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 영화가 발전해 갈 수 있는 방향을

보아서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상상력과 치밀한 준비의 결과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심장을 내내 두근거리게 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라는 차원에서 구상되고 준비되었다는 점은

차가울 수 있는 영화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온기가 되어준다.  인간에게는 삶의 두 좌표인

"시공간" 을 초월한다는 개념도 우리가 우주를 동경할 수 밖에 없는 하나의 근거로 다가온다.

미래에 인류를 뻗어나갈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좌표를 딸이 발견해낸다는 설정도 인상적이었음.

우주의 차원에서 이미 심어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우주상의 어떤 "그들"이

한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우리가, 우리를 대표/ 대신하는 그/ 그녀가 했음도 고무적이었음.

 

 

 

5. 영화 속에서 주요한 키워드로 등장하는 또 하나의 단어는 바로 "stay" 이다. 아빠, 가지 마

하는 딸의 절절한 부탁이다. 그 부탁은 수십 년을 건너 아빠가 딸에게 하는 부탁이 된다.

아빠는 떠나버렸지만, 결국 딸은 떠나지 않는다. 그 떠나지 않음이 희망의 구심점이 된다.

어쩌면 진부한 소재일까. 가족. 사랑. 진부하다는 건 그만큼이나 우리 곁에 오래 있었고,

또 우리와 떨어뜨릴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겠는지.

 

 

6. 다시 보고 싶다. 놀란 형제와 놀라운 별들 속의 세계로 다시 한 번. 그리고 지금의 나와

미래의 우리를 생각해 본다. 미래의 내가 같은 시공간에서 현재의 나를 볼 수 있다는 걸 안다면

오늘의 나는 무엇을 하려 할까.

 

 

- 머릿 속을 내내 떠나지 않는 대사가 있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을 충실히 읽는다면

그 누군가에게 스포가 될까봐 행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