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라이프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명색이 살인 사건 수사를 소재로 하는 작품인데 제목이 저게 뭐니..너도 참...

 본 제목은... 살해를 당한, 작품 주인공인 제인 닐의 묘비명에 적힌 문구임을 밝힙니다.

 C.S. 루이스의 책 제목이기도 하죠.. 이 책을 올해의 첫 리뷰로 삼은 데는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는 구태여 밝히지 않도록 하고...

 

 

 아...길다... 항상 장편소설을 읽을 때면 드는 생각은, 그러다가 어떤 시점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표현이 난감한데..그러니까...쑥 들어가는 시점이다. 처음에는 내가 작품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사람들은 누구고, 여기는 어디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어떤

 분위기이고, 이들을 만나면 어떤 기분이 들고를 직접 익혀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걸

 장편을 읽는 수고라도 불러도 좋겠다. 수고에 상응하는 대가... 예기하는 기쁨..

 그걸 얻기 위해 한 장씩 버텨나간다. 그런 다음 그 시점이 온다. 물론 좋은 책일 경우의

 이야기다. 이 시점이 오는 때는, 사실 "예기치 못한 기쁨" 이라는 표현에 걸맞다. 그런

 순간이 오리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오는지는 알 수 없다. 가히 신비롭기까지.

 이미 들어가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작품이 날 부른다. 낯선 공간과 시간이, 정서가

 내 것이 된다. 영화를 보면 이 순간은 좀 더 빨리, 편하게 오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미지에

 약하니까. 하지만 언어에는 아무래도... 앞서 말했듯 좀 더 힘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만큼 더 값지기도 하다. 요새는 일부러 애를 써서 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든다고

 한다. 애를 쓴 다음에 얻는 환희를 알지 못해서는 아닐까.

 

 

 

 자, 이제 작품 속으로. 누가 죽는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해결사가 등장한다.

 사건의 경위를 조사하고 마을 사람들을 탐문한다. 이 사람일까? 저 사람은? 그러고 보니

 이 자도 수상해... 하지만 아니었고, 아니었다. 알고 보니 범인은.... 아... 그리고 제인의

 죽음은..... 이 소설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스틸 라이프라는 제목에서 사용한

 단어에서처럼 소설은 조용하고 차분하다. 살인까지 일어났는데도 정적이다. 저자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들은 조바심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뭐하는 거냐고, 지금?

 이런 대화는 왜 나오는 거야? 라고 느낄 수도. 하지만 어쩌면 이건 줄을 팽팽하게 당기려는

 저자의 수법인지도 모른다. 차오를 때까지...끊어지기 직전까지... 자... 조금만 기다려봐...

 그리고 차분하게, 다름아닌 자신의 범행이 밝혀질지 모르는 벽지를 뜯어나가는 살인범의

 손길처럼 하나씩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함께 비밀의 그림을 보고 싶은 클라라는 발을

 동동 구른다. 왜 이렇게 더딘 거야... 이때의 클라라의 심정은 어쩌면 독자들의 마음과

 같지는 않을지. 자, 더딘 호흡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또 장황하게...

 

 

 그럼 이제 제인 닐 이야기를 해야겠다. 제인 닐이 누구냐고?

 작품의 서두에서부터 죽음을 맞았던 여주인공이라고 해두자.

 그림에 대한 꿈을 접지 않은 화가 지망생이고, 선하디 착한 여교사이기도 하자.

 그리고 이 두문장에서부터 살인의 단서가 출발한다.

 제인 닐이 공개하게 될 그림과, 수사를 더욱 묘연하게 만드는 그녀의 선량함.

 제인의 그림 속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풍경과 일상이, 그녀의 추억과

 애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런 설명이 지나치게 평범한 것 같다면,

 잠시 아르망 가마슈 경감이 오래 전에 들었던 비유를 빌어보자.

 

 

 

 인생을 산다는 건 롱하우스에서 사는 것과 같다. 

 우리는 한쪽 끝에서 아기로 들어가 때가 되면 반대쪽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 크고 긴 방을 통과한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 모든 생각과 모든 행위가 그 방에서 우리와 함께 산다.

 과거의 일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과 화해할 때까지 모든 사람,

 생각, 행위는 그 방을 통과하는 내내 우리를 괴롭힌다. 그리고 그 중에 정말로

 목소리 크고 밉살스런 것들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까지 우리에게 행동 지침을 내린다.

 

 

 

 제인의 그림은 이 롱하우스와도 같은 것이다. 그녀가 들어가 산 크고 긴 방과도

 같다. 그리고 그녀의 그림을 보는 그림 속의 등장인물들, 마을 사람들 역시

 그림 속에 저마다의 롱하우스를 만난다. 염소로 묘사된 루스 자도라는 시인은

 호쾌한 웃음을 터트린다. 클라라는 사랑하던 친구의 온기 앞에서 뭉클해진다.

 그리고 살인범의 눈에는 목소리 크고 밉살스런 무언가가 들어온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행동 지침을 내린다. 살인이라는 끔찍한 지침을.

 

 

 좀 싱거운 것 같지만... 이 작품은 어찌 보면 루이즈 페니라는 작가의 롱하우스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다소 뒤늦은 나이에 이 작품으로 등단했다. 제인처럼 오랜 꿈을

 접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펼친 것이다. 제인의 날개는 죽음으로서 펼쳐졌지만,

 작가의 날개는 삶 속에서 비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독자들은 작가가 펼쳐 놓은

 롱하우스와도 같은 글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때로는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괴롭혀 왔던 목소리를, 스스로를 지배하는 어떤 행동지침을,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이

 극적이고 웅장한 추리소설 시리즈라는 예기치 못한 기쁨을 만난다. 혹은,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의 추리 소설은 어쩌면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다. 누가 죽었고,

 왜 죽었고, 어떻게 죽었고, 죽음을 찾아내는 행위를 주로 하지 않던가.

 하지만 이 추리 작품은 다르다. 살아 있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롱하우스를

 통과하는 삶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죽어서까지 저마다의 살아감은

 가까이에, 어쩌면 더 멀리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무엇을 불러일으키는가를.

 

 

 화가를 죽이기까지 했던 그림은 그녀가 죽어서도 사람들을 움직인다.

 결국은 자신을 죽인 사람을 찾아내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했다.

 제인은 죽었지만, 자신의 그림에는 생명력을 불어놓았던 것이다.

 작품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숨죽이게 하고, 감탄하게 하고, 두려워하게 하고, 슬퍼하게 하고,

 궁금하게 하고, 웃게 하고 울게 하고, 그리고 마침내 한숨을 짓게 만든다.

 아, 이게 끝이구나. 그리고 이제는 기다리게 만들 것이다. 이번에는

 예기하고 있을 기쁨을 만날 그날을 말이다.

 

 

 지나치게 추리소설 리뷰답지 않은 리뷰가 되었지만, 리뷰라는 것은

 "자신에게 감흥을 일으킨 어떤 목소리" 를 되살리라는 행동 지침에

 따르라는 요구라는 말로.... 이만 줄이련다. 양보다 질이라 했건만,

 역시나 질보다 양이 되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빈 2014-01-17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 작품과 관련해 제대로 언급하지 못한 점은, 스틸 라이프라는 제목의 의미, (still life goes on...쯤? ) 왜 묘비명이 "예기치 못한 기쁨" 이 되었나, 가마슈를 비롯한 수사팀 캐릭터, 스리 파인즈 마을의 상징성, 살인범이 왜 그림을 보고 제인을 죽이게 되었는가, 그 문제의 그림은 무엇이며 밝혀지는 과정 등.... 일텐데 제대로 분석할 능력도 없거니와...지면 관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