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침공(Jupiter attacks)

 
 
외계인들의 침공이 시작된 지 3일째다. 지구인들은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평  

소 지구방위대처럼 설쳐대던 미국은 전쟁만은 피해야한다고 평화지상주의를 외쳐대다가 가장 

먼저 외계인들에게 점령을 당했다. 망할 놈의 대갈장군 같은 외계인들이 우리의 뒤통수를 칠 줄

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틀 동안 공중에서 폭탄들을 떨어뜨리더니 이제는 비행선을 착륙시키고 

수색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런 전투방법은 지구에서도 전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그들은 왜 지구를 공격하고자 마음을 바꾸었을까? 우리의 지구는 더럽게 아름답고, 어지러울정

도록 질서정연하게 돌아가고 있는 행성이 아니던가. 내 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

지의아버지의아버지때부터 우주에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은 채 조용히 자전과 공전주기를 지

켜오지않았던가? 하기야 전쟁이라는 것이 합리적인 이유로 일어난다면 그건 전쟁이 아니겠지.


   여기저기서 비명소리와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도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라고 자

부해왔지만, 가본적도 없는 우주의 어느 구석에서 날아온 생명체에 의해, 레이저 광선총에 맞아 

죽게 될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우습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지금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니.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피식 피식 웃음이 삐져나

온다. 어쩌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보았던 SF영화의 여운일지도.


   옆집에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크, 꿈은 아니다. 젠장, 이젠 정말 죽는구나. 이 죽음

의 도시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더욱이 숨을 곳도 없다. 이젠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사과나무를 심어야 할 때인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어 보이던 죽음이 이제는 코끝에 앉아 있

다. 조금 있으면 한눈에도 외계인처럼 보이는 녀석들이, 저 문을 박차고 의기양양하게 들어올 것

이다. 그들이 들어왔을 때 두려움에 덜덜 떠는 모습을 보여주지 말자. 내가 지구인을 대표해서 

당당하고 용감한 모습을 보여주리라. 자, 마음을 진정시키자. 이럴 땐 음악이라도 들으면 조금

은 편안해 질지도 모른다. 전기가 끊겨서, CD플레이어에 스피커를 연결했다. 플레이어 안에 어

떤 곡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 순간에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지 도저히 생각할 수 없

었다. 평소에 죽는 순간 듣고 싶은 음악 Top 5 같은 것이라도 생각해 두었으면 이럴 때 편할 텐

데. 염병할 언제나 조금 늦게 도착하는 것이 택시와 후회라는 녀석이 아니던가.


  play버튼을 눌렀다. 하나, 둘, 셋. 음악이 흘러나왔다. 오호라, 팻 매스니 Offramp앨범이다. ‘타

인의 취향’이라는 영화에 삽입되었던 ‘Au Lait'이라는 곡을 찾다가 구입하게 된 앨범이다. 팻 매

스니를 들으니 그를 좋아했던 친구 녀석이 생각났다. 그 친구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죽었다면 덜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였기를...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듣는 음악이다. 볼륨을 조금 더 올려본다. 이런 순간에도 음악이 귀에 들

려오다니.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이다. 그 순간 번쩍이는 빛이 귀 옆을 스치는가 싶더니 뒤쪽에 

있던 책장을 후벼 파는 소리가 들렸다. 외계인들의 광선총이 문에 바람구멍을 낸 후, 책장에 꽂

아둔  필립 K, 딕의 책을 뚫고 지나간 것이다. 그 광선이 내 머리에 맞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원래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편인데 죽음을 기다리며 죽음을 상상한다는 건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다. 크리스마스에 웬 악몽 같은 일이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그러더니 금방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캐릭터처럼 정말 웃

기게 생긴 외계인이 총을 겨누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게 총을 겨누었다. 그래 빨리 쏴라. 그 대

신 조금 덜 아프게 쏘아다오. 그런데 총을 겨누던 외계인이 방아쇠를 당길 생각을 하지 않고, 눈

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찾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무얼 찾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리 급해도 눈앞에 보이는 적을 처리하고 나서 볼 일을 봐야 되는 것 아닌가? 이 녀석

은 도대체 군사교육을 제대로 받기나 한 거야 뭐야.



    잠깐 동안 가만히 서서 방안을 둘러보던 그 외계인은 총을 내려놓고 갑자기 스피커 앞으로 다

가갔다. 그러더니 아직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 스피커를 부둥켜 안는 것이 아닌가. 조금 지나

자 동료들이 들어왔다. 처음에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경계의 눈빛을 보이더니 이윽고 그들도 

무기를 내려놓고 스피커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피커를 구경하러 간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들이 음악 앞에서 무장해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확

실한 것은 우리의 팻 매스니가 외계인들을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안 일

이지만 팻 매스니의 음악만이 아니라 모든 음악이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가장 큰 효력을 

발휘한 것은 비밥(Be-bop)이었다.




  이제 다시 지구는 ‘평화’를 되찾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평화’라기보다는 원래대로 지구

인들끼리 치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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