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새벽 1시경에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장소와 집까지 거리는  걸어서 30분정도 걸리는데, 운동 삼아 집까지 걸어가곤 했다.

집은 도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이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별빛이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늘 보는 광경이지만 하늘을 쳐다볼 때마다 넓은 우주 속에서 우리는 너무 고립된 존재들이라는 생각과

저 끊임없는 공간이 두렵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누구말대로 이 우주에 우리밖에 살지 않는다면 엄청나게 큰 공간 낭비가 아닐런지...

 

 10분 후면 도착한다.

 

귀속으로 울리는 스탄 겟츠의 연주를 듣는다.

이따금씩 입으로 악기소리를 내면서 그들의 연주에 끼어들곤 한다.

흉내 내기 쉬운 소리는 색소폰과 드럼이다. 그렇다고 똑같이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고 혼자서만 기분을 내는 정도.

 

겟츠의 'Autumn leaves'에 맞추어 나도 중간 중간에 심벌즈를 두드려본다.

 

치치치 추추추 치치추추 치치칙…….

겟츠가 흐뭇한 모습으로 나의 연주를 흘끔흘끔 쳐다본다.

그들의 세션에 끼어드는 순간 공간과 시간은 어그러지고 일그러져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잊게 된다.


신호등이다.

차량운행은 뜸하지만 나는 어김없이 빨간 불 앞에서 멈춰 선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모범 시민인것이다. 아니면 강박의 노예이든지.

 

멍하니 신호등을 쳐다보고 있는데 옆쪽에서 인기척이 있기에 흘낏 쳐다보았다.

사람이 서있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다.

 

갑자기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싸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처럼 빠르게 주절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음악소리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인지 확인 하고픈 생각도 들었지만 마침 파란불이 켜져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뒤쪽에서 걸어오고 있는 사람을 의식하며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눈앞에 한창 공사 중인 건물이 들어온다.

터파기 공사를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뼈대를 세우고 벽돌을 쌓아 올렸다. 테크놀로지의 위대한 힘이여.

그런데 건물의 내구성은 공사기간과 반비례하는 것은 아닐까? 글쎄 모르지 정확한 데이터가 없으니.

공사 기간이 빠르면 부실공사일 것이라는 생각도 나의 편견일지 모른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배고픔은 더욱 뼈에 사무친다. 빨리 집에 가서 냉장고를 열어보고 싶다.

목표가 다가올수록 마음은 상대적으로 급해지기 마련이다.

 

조금 가다보니 왠지 등 뒤에서 누가 다가오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소리는 확인할 수 없지만 무언가 가까이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것이 바로 육감이라는 것이다.

감각기관에 의지하지 않고 영적으로 사물을 감지하는 능력.

 

동네 강아지나 다른 동물은 아닌 사람이 있는 듯하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돌아보기가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느낌을 무시하고 계속 걷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돌아볼까 말까를 고민했다.

저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일 확률이 얼마나될까? 나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뒤쪽으로 돌리고자 했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묵직한 것이 나의 등을 짓누르는 듯 한 기분이 들더니 곧바로 중심을 잃고, 땅으로 쓰러져 버렸다.

얼굴이 땅과 마주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았다.

 

상황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 본능일 것이라고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등 뒤에서 아련하게 전해오는 異物感. 신경세포들이 부지런히 그 이질적인 존재를 분석하고 있었다.

 

스테인리스 스틸이다.

절대로 녹이 슬지 않는다는 그 혁명적인 쇠붙이가 지금 내 척추를 비집고 들어와 있다.

씽크대안에 가지런히 놓여있어야 할 그것이, 지금은 번지수가 다른 곳에서 다른 용도로 놓여있다.

놀랍게도 그 순간에도 대뇌는 활발히 움직이며, 수많은 생각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쓰지도 않았던 나의 자서전 한 권이 파노라마처럼 나의 머리를 휘젓고 지나갔다.

 

고통은 순간적이고 곧이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함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흙냄새다.

참으로 정답구나. 본래 내 고향은 흙이었다지 아마.

 

심장은 이다지도 빠르게 고동치는데 색소폰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음과 음사이가 알래스카와 뉴질랜드만큼 멀어지고 있다.

 

다음은 씽코페이션이 와야 하는데..............겟츠, 연주 좀 똑바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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