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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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hy I read

 

우선, 나는 왜 읽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나름 활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왜 읽는지에 대해서는

질문을 안 해본 것 같다.

 

사람들은 왜 읽는것일까?

아마도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다종의 인쇄물을 읽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든 내 자신에게로 돌아와보자.

 

왜 읽는가에 대한 현재의 대답은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라고 답하고 싶다.

 

그렇다면 통찰력(洞察力)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사물을 환히 꿰뚫어 보는 능력’이다.

내가 생각하는 통찰력은 ‘처음 보는 사물이나 처음 경험하는 일들과 마주했을 때

자신의 직관만으로 대상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으며 판단을 내릴 때 마다 대부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 가는 능력‘이다.

 

통찰력은 흔히 말하는 ‘지혜’라는 단어와 유사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통찰력 혹은 지혜는 자연적으로 생겨나기도 한다.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 정보들을 체화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간의 선물이며 우리가 은빛 면류관을 쓰신 노인들을 존경해야

하는 이유이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의 도움을 받아 통찰력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문제는 성질 급한 사람들 때문에 생겨난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좀 더 빨리 통찰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그 방법은 다름 아닌 ‘읽기’, ‘생각하기’, ‘경험하기’ 이다.

뭐 대단한 것을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이 방법이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한다.

(엄선된)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여행을 하거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경험의

폭을 넓혀 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것들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하나로 결합할 촉매제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시간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호응하여 발효가 될 때 ‘사물을 환히 꿰뚫어 보는 능력’을

조금은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읽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앎은 삶을 수직으로는 연장할 수 없지만,

수평으로는 확장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 Why I write

 

대여섯 살 때부터 이미 커서 작가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던 조지 오웰은 글쓰기의 동기를

다음의 네 가지로 정리했다.

 

1. 순전한 이기심

: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하는 건 허위다.

 

2.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기도 하다.

 

3. 역사적 충동

: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신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조지 오웰 자신은 앞의 세 가지 동기가 네 번째 동기를 능가하는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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