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 시대의 철학
김정현 지음 / 책세상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은 빠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특히나 성격 급하기로는 어디 가도 빠지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속도는 생명이다. 무엇이든 빨리 빨리를 외치다 보니 그래도 어쨋든 고도의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로 인해 IT 강국이라는 보기 좋은 명함을 가지고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간 것까진 좋았으나 선진국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로 가려진 이면의 문제점들은 허다하다. ‘2015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58개국의 나라의 국민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10점 만점에 5.984점을 얻어 47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동안 국민들의 삶의 질은 좋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와 함께 끊임 없이 대두되는 높은 자살률이나 분노범죄는 분명 우리 사회가,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개개인이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 옛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을 지금은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로 우리를 전 세계와 연결해 주고 어느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게 해준 기술혁신은 우리에게 시공간의 한계를 없애주며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또 가공하여 교환하는 지식 소비의 시대를 열어 주었다. 그렇기에 이젠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도 구글맵으로 손쉽게 목적지를 찾을 수 있고 고민 없이 그곳의 맛집을 서칭하여 실패 없는 식사를 하고 빈방 있는지 여기저기 다닐 필요 없이 어플로 간단하게 숙소를 예약할 수 있다. 여행이라는 카테고리 외에도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이 그렇게 발달되어 있기에 우린 그 어느 시절보다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정보 매체가 발달하며 우리는 점점 가상의 공간에 집착하게 되고 실제 외부의 인간관계의 단절은 공허함을 낳고 그 공허함을 물질적으로 채우고 보상 받으려 하기에 진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누구인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를 맞아 다양한 문명의 이기들을 사용하며 오감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지만, 동시에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등과 같은 시대적 물음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시대적인 물음에 답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고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우리 국민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사회가 요구하는 성과를 내는 노동 활동을 해야만 했고 더 나아가 자아실현 혹은 자기계발이라는 명목 아래 끊임 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바쁘게 살아왔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자신의 존재를 소진하며 과도한 피로에 빠져 있는 ‘불안 사회’,’피로 사회’,’소진 사회’로 표현되고 있다. 삶이 힘들고 불안한 사람들은 돈이나 소유물을 통해 삶의 안정과 존재를 확인하는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게 된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끝없이 노동하고 몸값을 올리기 위한 과도한 자기 몰입은 가족의 해체와 인간관계의 소멸을 불러 일으키며 고독하고 고립된 생활을 부추기게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추구하는 세속적인 가치, 즉 집이나 차, 명품등이 우리를 나타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물건들이 나를 품격 있는 명품인간으로 만들어 줄 것이란 허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그 끝엔 나는 누구이고 내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물음만이 메아리처럼 들려올 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우리가 효율성, 경제성, 실용성의 잣대로 배제해 왔던 철학,문학,역사등의 인문학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실용성과 경제적 효과, 취업, 창업만을 강조하면 당장에는 작은 경제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 구성원들이 인간적인 삶을 깊이 성찰하며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는 없기에, 이 책은 저자 개인의 철학적 고뇌를 담은 책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기울어진 존재의 중심을 잡고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인문학적 ‘정신적 산소’를 마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문제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진정 건강한 사람이다. - 뵈쉐마이어



우리는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욕망을 과잉 생산하고 지식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가운데 인간적 삶의 위기 문제를 겪고 있다. 도덕적 불감증에 사로잡혀 자존감을 상실하고 욕망만을 채워가는 현대인은 자아를 상실한 ‘자본주의적 욕망 기계’가 되어 가고 있다. 과학기술 문명과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회복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철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진실하게 이끌어나가려는 의지는 삶을 창조적으로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고 신경증이나 존재의 불안에서 탈피하려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삶을 창조해나가려는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 도구화되고 사물화 된 인간이 아닌 영혼을 가진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선 영혼이 깨어 있도록 새로운 사고 습관을 들이는 정신 근육을 단련하고 일상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자기 성찰의 습관이 필요하며 우리 삶에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에 의미를 더 부여하고 익숙한 사고와 행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의 삶이나 삶의 사태를 바라보는 영혼의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죽음에 대한 진지하고 올바른 성찰과 깨달음을 가져야 할 필요도 있다.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주변 세계에서 떼어지고 사회적 소통 가능성을 상실하며 고독 속에 놓이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기에 점점 죽음을 외면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하지만 죽음이란 우리 삶의 일부이며 자신의 유한성과 한계,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탐욕과 집착, 소유욕에서 벗어나 일상을 의미 있고 성숙하게 이끌어갈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나 대지의 문제를 우리의 삶을 위한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에도 인간의 안락한 삶의 풍요를 위해 화학 물질은 더 많이 사용되고 있고, 오염 물질의 독성은 대기,토양,강,바다 등 삶의 터전인 지구 생태계와 인간의 몸에 그대로 노출되고 축적되고 있다. 대지가 죽으면 인간의 삶도 죽는다. 그렇기에 우리가 우주적 생명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자각하며, 대지가 우리 삶의 터전이며 몸도 우주 생명의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 생명 자각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근본적인 행복이란 무엇인지 그 행복을 얻기 위한 삶의 자세는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필요하다. 행복은 우연히 얻어지는 행운이 아니라 마음의 관리나 훈련, 즉 자기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행복이란 시련을 극복할 때의 느낌, 즉 내가 지금 의미 있게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행복이 단순히 어려움이 없고 평안한 안락 상태 혹은 단순한 욕구의 충족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다. 삶의 무게를 짊어 지고 자신의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을 긍정하고 타인에게도 사랑을 나눠줄 수 있다. 



행복은 일반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보편적 ‘명사’가 아니라 나에게 다가올 때 비로소 의미가 구체화되는 ‘동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어떤 문제든 돈이나 시간의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는 해결책이나 데이터화하여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해결책만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방법으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바랄 수 없는데도 말이다. 대학만해도 순수문학은 어느샌가 취업이 되지 않고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비인기 학과라는 오명으로 축소되거나 없어지기까지 하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인문학에 대해 등한시하고 외면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그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 한사람의 삶이 행복하고 건강해야 한다. 피로와 소진의 시대에 찌들어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과 물질적 보상을 준다한들 그들의 삶과 인간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철학적인 접근법은 100% 완벽하게 이해하고 내 삶에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적어도 내가 어떤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며 인간으로서 버리지 말아야 할 도덕적 가치나 지구촌이라는 말에 걸맞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세계 시민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과연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어렵고 난해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그것을 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묻고 올바른 길을 찾고자 노력하는, 그리고 자신의 삶과 영혼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나라는 사람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지는 사회라면 분명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철학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고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해준, 의미있는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행성이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자전하면서 동시에 중심이 되는 천체 주위를 공전하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독자적인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동시에 인류 전체의 발전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 프로이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 나도 집을 나가야 하는 걸까? - 독립을 원하는 모든 사람을 응원하는 코믹 에세이
소네 아이 지음, 정은서 옮김 / 북스토리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엔 결혼을 해야 집을 나가는 것이 흔했지만 요즘은 TV에 나혼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큰 인기를 얻기도 하고 1인 가구가 굉장히 많아 졌기에 싱글 라이프를 즐기며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이 많다. 나도 20대 시절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잠깐 독립했던 적이 있는데 오래 버티지 못하고 결국 집으로 다시 돌아갔던 경험이 있다. 자유로운 생활을 꿈꾸며 시작했던 나의 독립은 힘든 기억만 남기고 끝났지만 우리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겠다고 한다면 난 아마 적극 찬성할 것이다. 스스로의 인생을 직접 꾸려나가는 첫걸음이 독립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마냥 내 품에 끼고 사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독립도 여건이 따라 주어야 가능한 일. 스스로 돈을 벌어 살아갈 수 있어야 싱글 라이프도 가능하지만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넘쳐나는 지금, 안락하고 멋진 싱글 라이프를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꿈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비싼 월세와 보증금을 스스로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대학을 다니며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면 더더욱 생활이 빠듯할 수 밖에 없을텐데 사회초년생이 받는 월급으론 터무니 없이 모자랄 수 밖에 없으니 성인이 되었다고 바로 집을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가 없다 하더라도 마음속엔 독립을 꿈꾸고 원하는 청년들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주인공인 키노시타 마미는 서른이 되었지만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현재 애인도 없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주변의 독립한 친구들을 보고 스스로 비교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엄마의 잔소리에 폭발하기도 하며 서른이 되도록 부모님과 산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하기에 그녀는 점점 독립을 꿈꾸게 되지만 이미 굳어져 버린 생활 패턴들을 뒤로 하고 멋지게 독립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그에 못지 않을 것이다. 비록 어느정도의 자유를 박탈 당하더라도 부모님과 사는 것에 대한 장점을 버리고 힘든 독립생활을 시작하고자 마음 먹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성별에 관계 없이 서른즈음의 청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해 봤을법한 생각들을 글이 아닌 만화로 접하는 것은 색다르기도 하고 또 신선하기도 했다. 부담스럽지 않은 단순한 그림에 각각 캐릭터들만의 독특한 설정과 개성이 더해져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간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이나 사건, 또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나 오랜 친구들과 나눌 수 있을 법한 딱 그 시절의 고민들이 별것 아닌 것 같은 잔잔한 스토리일지라도 큰 공감을 일으키게 한다. 아마 똑같은 이야가 일지라도 글로 읽었을 때와는 사뭇 또다른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를 앞질러 가고 있는 친구나 형제자매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인생은 더디고 멈춰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마미 역시 먼저 독립해 근사한 싱글 라이프를 사는 친구나 먼저 결혼해 이미 아이도 있고 미래를 착실히 준비해 가는 동생을 보며 자꾸만 자신의 상황과 비교하게 되니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그들만이 진짜 어른처럼 느껴지고 마냥 어린아이 같은 자신의 모습에 자꾸 불평 불만이 늘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책의 마지막에 마미가 느낀 것 처럼 누군가와 비교하기만 한다면 계속 흔들리기만 할 뿐, 나아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생의 무게 중심을 자기 자신에게 두고 살아간다면 누군가와 비교할 일도, 그로인해 비틀거리며 힘겨워 할 일도 없을 것이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이제 더이상 어리지도 그렇다고 인생의 경험이 충분히 쌓여 연륜이 묻어나는 나이도 아니기에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나이다. 나는 비록 서른 살 이전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강제 독립(?)을 하게 되었지만 이제 막 서른으로 접어든 많은 사람들은 뭔가 인생에 변화가 생기길 기대하며 독립을 꿈꿀지도 모르겠다. 독립해서 사는 것이 무조건 진취적인 것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무조건 퇴보하는 것도 아니기에 그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시 해야 하는 것이 어떤것인지에 대해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친구와 함께 고민 상담하듯 나누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며 큰 공감을 느끼고 소소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이 머무는 밤
현동경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전 가족들과 속초로 여행을 다녀왔었다. 둘째가 태어난 뒤로 처음 갔던 여행이었는데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가는 여행이니 떠나기 전부터 힘들 것이란 예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실제 여행은 나의 예상 수치를 몇배나 뛰어넘는 힘듦의 연속이었다. 오랜 차량 탑승으로 지치고 추운 날씨에 짜증내는 아이들을 달래며 속초의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 볼 여유는 극히 짧았고 맛있는 음식들도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음미할 시간따윈 없었다. 일정을 끝내고 숙소로 간 우리 부부는 2017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의미를 되새기며 시간을 보낼새도 없이 곯아 떨어지고 말았으니 이쯤되면 내게 여행이란 극기훈련의 체력을 요하는 고된 노동이라해도 과언은 아닐듯 싶다. 


나의 상황은 이렇듯 내가 원하는대로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없으며 여행 후 온 가족이 병이나는 큰 후유증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여행을 언제나 꿈꾸게 된다. 여행으로 나를 찾겠다는 거창한 목표까진 없더라도 그냥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설레임을 느끼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당장 모든걸 멈추고 떠나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렇게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역시 짧은 1박2일의 여행에도 아이들 컨디션 신경쓰고 스케쥴 맞추고 기저귀에 간식에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기에 배낭 하나, 캐리어 하나 훌렁 챙겨 홀연히 떠나는 여행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쏟아져 나오는 여행에세이는 대리만족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자괴감을 들게 하기도 하기에 책을 읽으며 살짝 겁이 나기도 한다. 과연 이번 나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까. 



아침이 오는 소리부터 밤이 저무는 냄새, 살갗을 간지럽히는 봄바람부터 혀끝에 내려앉는 한 송이의 눈까지. 당연하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여기기에 놓치는 수많은 행복들.



여행의 목적이야 수만가지가 있겠지만 이 책속의 이야기는 그저 사람을 위한 여행, 그 여행속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속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글로 쓴 순간들의 기록이다. 사실 여행에세이라는 분류를 하지 않았다면 어찌보면 시집 같기도, 어찌보면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일기 같기도 한 다양한 형태의 글들이 혼재하는 책인지라 그저 여행했던 나라들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그 나라에 대한 느낌을 쓴 것이 아니기에 훨씬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나라들을 오가며 자신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깊은 시간 생각하고 되뇌이며 써 내려가는 글들은 오글거리거나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글들이 아닌 굉장히 직설적이기도 하고 또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기에 훨씬 더 큰 공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미화하고 찬양하며 지금 당장 떠나서 나처럼 새로운 세계를 접하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 그냥 한 개인이 여행하며 느낀 것들을 써내려 가고 그렇게 수없이 많은 곳으로 떠나게 하는 그 이유가 그저 사람이 좋아서라는 저자의 이야기에서 풍기는 소박함은 여행이 가지는 새로운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예상컨대 돌아올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이 점차 사회가 만든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쳐 사라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 어쩌면 여행 후에 달라진 것이 없다며 홀로 괴로워하는 것 역시 ‘현실’이 내뱉는 추궁에 지나온 시간들을 합리화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함에서 오는 두려움 아닐까. 



사실 대부분의 여행에세이나 여행기를 읽고 나면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지금의 힘든 현실을 마주하곤 하기에 씁쓸하기도 하고, 또 떠나고자 하는 결심에 뒤따르는 수많은 핑계거리들을 덧붙히며 손사래치게 만들기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특히 아이들과의 너무나 힘든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지라 돌아오며 한동안 여행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기에 다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저 떠나고 싶게 만들기 보단 앞으로의 여행에서 그저 관광하고 맛있는 현지 음식을 먹는데 열중하는 것 이상으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 함께 여행하며 마주하게 되는 사람, 하나의 풍경, 스쳐지나가는 생각등 복합적인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함께 경험하고 느껴볼 수 있는 여행을 해야 겠다는 새로운 방식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떠날 수 없다는 괴로움보다는 비록 언제 다시 가게 될지 기약은 없지만 다음 여행에서 새롭게 찾을 수 있을 많은 것들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오늘도 설렘과 두려움, 사랑과 여행이 한데 섞여 인생을 살아가고 있겠지. 나는 내 방식대로 당신은 당신의 방식대로. 다만 문득 궁금한 것은 나는 그리고 당신은 무엇에 설레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 -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자기를 발견하는 글쓰기의 힘
셰퍼드 코미나스 지음, 임옥희 옮김 / 홍익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전문가까진 아니더라도 고정된 습관으로 고착시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이라면 연초마다 사람들이 올해의 목표에 영어공부와 다이어트가 매번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꾸준히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며 나역시 매달 새로운 목표와 계획을 다짐하곤 하지만 그중에 꾸준히 이어나가 습관처럼 된 것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분명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임에도 자꾸만 미루고 나태해지는 모습은 스스로를 한심하다 자책하는 시간만 늘려갈 뿐이다. 


특히 일기는 미루다 한번에 써야 제맛인건지 이상하게도 꾸준히 쓰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숙제라는 강압된 명목하에 시작되었기 때문일까, 일기라면 그저 형식적이고 또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일기에 진짜 내 속마음을 적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진짜 내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분출하고 꺼내 보일 창구는 거의 없기에 고민이든 우울한 감정이든 그저 마음 속에만 꼭꼭 담고 있을 수 밖에 없기에 그 속은 점점 곪아가게 된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가감없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괜찮겠지만 사실 점점 나이 들어가며 이젠 가족들에게도 힘든 내색을 비추기가 어려워지곤 한다. 그렇다면 나를 어루만져 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진실된 나를 끄집어 낼 수 있는 수단은 없는 것일까?



당신이 쓸 일기는 책으로 출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하나하나 기록하는 일입니다. 그냥 마음속에 있는 단어들이 흘러나오는 대로 써내려가세요. 그게 전부입니다. 





저자의 글쓰기는 젊은 시절 만성적인 악성 편두통에서 벗어나고자 찾아갔던 통증클리닉의 70대 늙은 전문의의 ‘규칙적으로 일기를 써보라’는 권유에서 시작된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시작한 일기 쓰기에서 몸과 마음을 보듬고 영혼을 어루만지는 힘을 느낀 저자는 그 뒤로 여러 대학과 종합병동의 암 병동, 그리고 각종 문화센터에서 글쓰기가 어떻게 인생을 변화시키는지에 대해 강연해 왔다. 특히 글쓰기 워크숍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의 기쁨을 전파하고 그 과정에서 치유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글쓰기를 통해 삶을 변화시키고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이 책을 통해 제시한다.



 남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걱정하지 않고 어떤 문제든지 솔직하게 쓰면 핵심을 이해하는 문을 두드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치유의 방법을 스스로 발견해 나가게 된다. 



하지만 글쓰기를 시작하기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써져 있지 않은 백지를 바라보면 그것을 채워야 한다는 두려움 또한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시작하는 것도, 또 그것을 지속기키는 것도 힘들 수 밖에 없다. 그런 어려움을 알기에 저자는 일기를 쓰며 그 무엇보다 진실된 자신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해선 에너지,용기,인내,실천이 필요하기에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자신의 한계에 대해 깨달을 수 있고 글쓰기를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신나는 여행처럼 느낄 수 있다. 과학적으로도 감정의 격동을 글로 쓸 때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현저히 나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니 글쓰기가 단순한 치유의 차선적인 방책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강조한다. 그렇게 스스로에 대해 진실되게 표현하며 서서히 긍정이고 희망적인 태도로 변화하다 보면 두렵게 느껴지고 회피하고 싶던 노년이나 죽음에 대해서도 수용하며 회고하고 성찰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 진정으로 원하고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그로인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워 줄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글쓰기는 우리의 복잡한 정신생활을 원활하게 조직하도록 보조한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의 심리적인 나침반이 방향을 제대로 가리키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비록 만병통치약은 아닐지라도, 글쓰기는 값싸고 간단하게 건강을 유지 시켜주는 탁월한 수단이다. 



사실 고작 매일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 얼마나 큰 변화을 일으킬 수 있겠냐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글쓰기를 통해 치유를 경험하고 변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냥 흘려 넘길만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것이기에 거창하게 준비하고 큰돈 들일 필요 없이 그저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나역시 그 치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기에 더욱 나를 굳게 다짐하도록 만들었다. 처음엔 어떻게 써야 할지, 그리고 나의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고 힘들게 느껴질지라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직하게 쓰고 꾸준히 쓴다는 것만 기억하고 지킨다면 점점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 미루고 미루다 한번에 휘갈겨 쓰는 일기가 아니라 내가 나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또 그로인해 삶의 새로운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 그 무엇보다 진짜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은 지금 당장 일기 쓰기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사람들은 글쓰기를 통해 현관문 바깥으로 단 한 발짝도 옮기지 않고서도 자기발견의 항해를 시작할 수 있었고, 인생의 새로운 모험에 착수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샤의 집 (리커버) - 매일매일 핸드메이드 라이프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리처드 브라운 사진 / 윌북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똑같은 구조의 똑같은 평수로 찍어낸 아파트에 살기에 타샤처럼 자신만의 취향이 듬뿍 담긴 집이 그립고 부럽고.. 책으로나마 껴보고 싶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