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 시대의 철학
김정현 지음 / 책세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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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빠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특히나 성격 급하기로는 어디 가도 빠지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속도는 생명이다. 무엇이든 빨리 빨리를 외치다 보니 그래도 어쨋든 고도의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로 인해 IT 강국이라는 보기 좋은 명함을 가지고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간 것까진 좋았으나 선진국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로 가려진 이면의 문제점들은 허다하다. ‘2015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58개국의 나라의 국민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10점 만점에 5.984점을 얻어 47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동안 국민들의 삶의 질은 좋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와 함께 끊임 없이 대두되는 높은 자살률이나 분노범죄는 분명 우리 사회가,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개개인이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 옛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을 지금은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로 우리를 전 세계와 연결해 주고 어느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게 해준 기술혁신은 우리에게 시공간의 한계를 없애주며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또 가공하여 교환하는 지식 소비의 시대를 열어 주었다. 그렇기에 이젠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도 구글맵으로 손쉽게 목적지를 찾을 수 있고 고민 없이 그곳의 맛집을 서칭하여 실패 없는 식사를 하고 빈방 있는지 여기저기 다닐 필요 없이 어플로 간단하게 숙소를 예약할 수 있다. 여행이라는 카테고리 외에도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이 그렇게 발달되어 있기에 우린 그 어느 시절보다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정보 매체가 발달하며 우리는 점점 가상의 공간에 집착하게 되고 실제 외부의 인간관계의 단절은 공허함을 낳고 그 공허함을 물질적으로 채우고 보상 받으려 하기에 진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누구인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를 맞아 다양한 문명의 이기들을 사용하며 오감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지만, 동시에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등과 같은 시대적 물음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시대적인 물음에 답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고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우리 국민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사회가 요구하는 성과를 내는 노동 활동을 해야만 했고 더 나아가 자아실현 혹은 자기계발이라는 명목 아래 끊임 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바쁘게 살아왔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자신의 존재를 소진하며 과도한 피로에 빠져 있는 ‘불안 사회’,’피로 사회’,’소진 사회’로 표현되고 있다. 삶이 힘들고 불안한 사람들은 돈이나 소유물을 통해 삶의 안정과 존재를 확인하는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게 된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끝없이 노동하고 몸값을 올리기 위한 과도한 자기 몰입은 가족의 해체와 인간관계의 소멸을 불러 일으키며 고독하고 고립된 생활을 부추기게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추구하는 세속적인 가치, 즉 집이나 차, 명품등이 우리를 나타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물건들이 나를 품격 있는 명품인간으로 만들어 줄 것이란 허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그 끝엔 나는 누구이고 내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물음만이 메아리처럼 들려올 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우리가 효율성, 경제성, 실용성의 잣대로 배제해 왔던 철학,문학,역사등의 인문학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실용성과 경제적 효과, 취업, 창업만을 강조하면 당장에는 작은 경제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 구성원들이 인간적인 삶을 깊이 성찰하며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는 없기에, 이 책은 저자 개인의 철학적 고뇌를 담은 책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기울어진 존재의 중심을 잡고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인문학적 ‘정신적 산소’를 마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문제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진정 건강한 사람이다. - 뵈쉐마이어



우리는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욕망을 과잉 생산하고 지식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가운데 인간적 삶의 위기 문제를 겪고 있다. 도덕적 불감증에 사로잡혀 자존감을 상실하고 욕망만을 채워가는 현대인은 자아를 상실한 ‘자본주의적 욕망 기계’가 되어 가고 있다. 과학기술 문명과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회복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철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진실하게 이끌어나가려는 의지는 삶을 창조적으로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고 신경증이나 존재의 불안에서 탈피하려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삶을 창조해나가려는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 도구화되고 사물화 된 인간이 아닌 영혼을 가진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선 영혼이 깨어 있도록 새로운 사고 습관을 들이는 정신 근육을 단련하고 일상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자기 성찰의 습관이 필요하며 우리 삶에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에 의미를 더 부여하고 익숙한 사고와 행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의 삶이나 삶의 사태를 바라보는 영혼의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죽음에 대한 진지하고 올바른 성찰과 깨달음을 가져야 할 필요도 있다.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주변 세계에서 떼어지고 사회적 소통 가능성을 상실하며 고독 속에 놓이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기에 점점 죽음을 외면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하지만 죽음이란 우리 삶의 일부이며 자신의 유한성과 한계,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탐욕과 집착, 소유욕에서 벗어나 일상을 의미 있고 성숙하게 이끌어갈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나 대지의 문제를 우리의 삶을 위한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에도 인간의 안락한 삶의 풍요를 위해 화학 물질은 더 많이 사용되고 있고, 오염 물질의 독성은 대기,토양,강,바다 등 삶의 터전인 지구 생태계와 인간의 몸에 그대로 노출되고 축적되고 있다. 대지가 죽으면 인간의 삶도 죽는다. 그렇기에 우리가 우주적 생명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자각하며, 대지가 우리 삶의 터전이며 몸도 우주 생명의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 생명 자각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근본적인 행복이란 무엇인지 그 행복을 얻기 위한 삶의 자세는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필요하다. 행복은 우연히 얻어지는 행운이 아니라 마음의 관리나 훈련, 즉 자기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행복이란 시련을 극복할 때의 느낌, 즉 내가 지금 의미 있게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행복이 단순히 어려움이 없고 평안한 안락 상태 혹은 단순한 욕구의 충족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다. 삶의 무게를 짊어 지고 자신의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을 긍정하고 타인에게도 사랑을 나눠줄 수 있다. 



행복은 일반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보편적 ‘명사’가 아니라 나에게 다가올 때 비로소 의미가 구체화되는 ‘동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어떤 문제든 돈이나 시간의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는 해결책이나 데이터화하여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해결책만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방법으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바랄 수 없는데도 말이다. 대학만해도 순수문학은 어느샌가 취업이 되지 않고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비인기 학과라는 오명으로 축소되거나 없어지기까지 하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인문학에 대해 등한시하고 외면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그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 한사람의 삶이 행복하고 건강해야 한다. 피로와 소진의 시대에 찌들어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과 물질적 보상을 준다한들 그들의 삶과 인간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철학적인 접근법은 100% 완벽하게 이해하고 내 삶에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적어도 내가 어떤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며 인간으로서 버리지 말아야 할 도덕적 가치나 지구촌이라는 말에 걸맞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세계 시민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과연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어렵고 난해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그것을 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묻고 올바른 길을 찾고자 노력하는, 그리고 자신의 삶과 영혼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나라는 사람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지는 사회라면 분명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철학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고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해준, 의미있는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행성이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자전하면서 동시에 중심이 되는 천체 주위를 공전하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독자적인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동시에 인류 전체의 발전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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