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비사비 라이프 - 없는 대로 잘 살아갑니다
줄리 포인터 애덤스 지음, 박여진 옮김 / 윌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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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라이프가 유행된 것처럼
와비사비라이프도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삶의 모습인 것 같아 읽고싶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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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
폴 비티 지음, 이나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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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부색이 뭐가 그리 중요하며 누가 월등하고 누가 하등한지 결정하는 기준이라는 것이 애당초 존재한다 믿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어째서 인간들은 자꾸 편견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 인종차별이란 것이 사라지지 못하게 하는걸까? 인간의 존귀함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까진 안돼더라도 겉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해 버리고 선 그어버리는 비굴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스스로 더 높은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말도 안돼는 사상이 아직도 이 세상에 공공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이뤄온 비약적인 발전에 비하면 너무나 치졸하고 부끄러운 이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 평화와 평등까지 부르짖진 못하더라도 나 하나만이라도 잘못된 인식을 갖지 말자 다짐한다고 해서 지금도 차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당장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과 불편함을 애써 피하려고만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래서 흑인사회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해 적나라하게 들춰내고 표현된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며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범죄로 들끓는 흑인들의 가상 도시 디킨스, 그곳에 사는 나의 재판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왜 그가 재판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거의 이야기를 되짚어가며 이어진다. 어릴적 사회학자인 아버지로부터 실험실의 생쥐처럼 실험대상이 되며 자라나고 그런 어린시절을 보낸 나는 아버지가 사복경찰의 총에 맞아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한번의 반발이나 분노조차 표출하지 못한채 아버지를 뒷마당에 묻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디킨스라는 도시가 지도에서 사라지자 그는 디킨스를 다시 부활시키려 한다. 도시 경계선을 그리기도하고 학교에서부터 인종 분리 정책을 다시 시행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불평을 하지만,인종 차별을 보고 깨닫지. 그걸 보면 겸손해져.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깨닫게 돼.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깨닫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은 인종차별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블랙유머로 가득하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꺼리는 인종차별이라는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유머와 해학으로 풀어나간다. 하지만 우리에겐 너무 낯선 단어나 문화의 차이가 있기에 이해 되지 않는 부분도, 또 너무 적나라한 이야기들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심각한 상황도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로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천 리 길도 한 모금부터...
“ 그놈의 <천 리 길> 소리는 노자가 한 소리다. “
공자가 말한다. 
“당신네들 빌어먹을 철학자들 지껄이는 소리는 다 비슷 비슷해서. “




사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고 아무리 세계화로 인해 많은 외국인들이 이주해 살고 있긴 하지만 수많은 다른 인종들이 모여 살아가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낯설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세세하게 알 수는 없기에 그저 인종차별의 문제는 인식하고 있지만 우리가 체감할 수는 없는 먼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되는 인종차별은 더 심각하고 큰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비단 인종차별뿐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어떤 종류의 차별들과도 크게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며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 또한 그들이 겪고 있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비록 이 책은 소설이고 디킨스도, 나도, 모든 상황들도 전부 허구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 현실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유머가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읽히거나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작가가 그려낸 디킨스의 현실보다 더 시궁창같은 도시들이 실제로도 존재하고 있다는 진실을 떠올리는 순간이 사실은 더 고통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쨋든 누구나 알아야 할 이야기이고 무겁고 어둡게 풀어나가는 신파적이거나 참혹한 표현들이 아닌 냉소적이지만 유머가 녹아든 풍자이기에 그래도 우리가 받아들이고 기억하기에 더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인종차별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어쨋든 무조건적인 화합만이 답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서로가 틀린것이 아닌 다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 쉽지만 어려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시간을 갖게 해준 책이었다. 



나는 흑인 여자들을 항상 피부색으로 묘사하는 게 지겨워요! 꿀색이 어떻고! 다크 초콜릿색이 어떻고! 내 친할머니는 모카색이 감도는 카페오레, 망할 그레이엄 크래커 갈색이었다고 하다니! 대체 백인 여자들을 음식이나 뜨거운 액체의 색으로 묘사하지 않은 이유는 뭐죠? 어째서 이 인종 차별적이고 결말도 없는 책에 요구르트색, 달걀 껍질색, 스트링 치즈 피부, 저지방 우윳빛 백인 주인공은 안 나오는거죠? 그래서 흑인 문학들이 후지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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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가 된 어린 왕자 - 불행의 늪에서 행복을 건져 올리는 비밀 청소부가 된 어린 왕자 1
박이철 지음 / 길(길퍼블리싱컴퍼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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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며 한번쯤은 생각하게 되는 고민, 난 어디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철학적인 생각까진 아니더라도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보곤 했다. 비록 지금은 정신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빠 근본적인 물음이나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지만 그래도 나 자신에 대한 생각, 또는 사랑과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끝없이 질문하고 답해야 하는 쉽고도 어려운 명제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주는 사랑 받는 사랑 모두 소중하고 귀중하며 그로인해 행복해진다는 어느정도의 연결고리는 느끼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깊이있는 질문과 답을 해본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 우리 모두는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온 거야




이 책의 어린왕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끊임 없이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자신이 가진 의문을 풀어나간다. 어린왕자의 궁금증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지만 질문이 더해질수록 점점 더 복잡하고 어떻게 보면 어려운 이야기들로 퍼져나가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대단한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지만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명쾌한 해답이 되는 순간 어린왕자는 행복해지고 어린왕자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찾아가는 나 또한 행복해 지는 것을 느꼈다. 질문이 가진 힘을 새롭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질문은 생각의 문을 열어 깊은 곳에서 조용히 현명한 답을 찾아내게 하는 힘을 가졌다. 


 


이 책의 어린왕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어린왕자와 같이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자신의 존재는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물음은 비단 어린왕자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물음이고 그것에 대한 답을 갈구하는 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에 질문 하는 어린왕자와 대답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읽고 있는 나 역시 모두가 같은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답을 얻기는
쉽지 않다. 하루하루가 바쁘게 흘러가는 시대에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진정한 행복과 사랑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는 여유가 거의 없다시피 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더 불행해지고 우울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아닐까. 자기 스스로 사랑과 행복에 대해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을 자신이 가질 수도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도 없기에 끝없이 자신에게 질문하고 답하며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어린왕자는 질문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질문에 대답한 사람들 역시 어린왕자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며 모두가 행복에 한발자국 더 다가서는 것, 이것이 이 책이 가진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스스로 ‘사랑’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사랑을 주는 행위’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갈 때 가장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자신의 존재 이유와 이 세상에 자신이 오게 된 이유에서 시작된 어린왕자의 물음은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지는 법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지며 끝이 난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하고 사랑이 이 세상의 중심이며 우리들 그 자체가 사랑이라는 이야기는 사실 언뜻 들으면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질문에 질문이 더해지고 대답이 깨달음으로 연결되는 그 긴 과정들을 모두 읽는다면 분명 이때까지 내가 사랑과 행복이라 정의 내렸던 것들보다 더 넓고 깊은 의미를 가진 사랑과 행복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거리를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청소하는 것이기에 행복하다는 청소부의 말에 왕자의 옷을 벗고 청소부가 된 어린왕자가 깨달은 것을 함께 생각하다 보면 사랑과 행복에 대한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져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랑해’라는 말을 늘 마음속으로 외치는 거예요. 그리고 상상하는 거죠. ‘사랑해’가 온몸으로 퍼져나간다고, 마치 물에서 파장이 이는 것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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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의 미학 - 도스또예프스끼의 간질병과 예술혼
김진국 지음 / 시간여행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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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해 대문호로 인정받는 것이 꼭 그 사람의 됨됨이나 인격 역시 훌륭해야 한다는 전제를 바탕에 둔 것은 아니겠으나 그래도 엄청난 작품을 쓴 작가의 모습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기 마련이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나 작가로서 가지는 위대함, 또는 비범함이 더해진다면 작품과의 시너지는 더욱 커질테니 작품과 더불어 작가의 삶 또한 소설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또예프스끼란 이름만 들어도 죄와벌을 떠올리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나는 읽는데 실패했지만.. 그외에도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어쨋든 그가 대단한 작가임을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스또예프스끼는 심각한 간질병을 앓고 있었다. 그로 인해 발작을 일으키기 일쑤 였고 그 시절 간질병은 모든 사람들이 혐오하는 병 중의 하나였다. 그는 귀족 출신이었지만 귀족적인 삶을 살지는 못했다.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고 더러운 뻬쩨르부르그 뒷골목에 살았으며 간질병으로 인한 발작이 언제 어떻게 생길지 모르기에 사람을 만나지도 밖을 돌아다니지도 않는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도스또예프스끼는 간질병을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것이 창작의 원동력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저리치는 발작의 순간은 삶의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일종의 자극제와 같았다. 또한 대부분 간질병 환자들이 발작 전후에 의식을 잃어 가는 것과 다르게 도스또예프스끼는 그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기록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기에 확실히 비범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삶과 죽음, 영혼과 육체, 영광과 치욕, 빛과 어둠, 상승과 추락, 사랑과 증오, 믿음과 불신, 천사와 악마.. 양 극단을 넘나드는 그의 삶의 이력과 사상이 고질병인 간질병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대문호 도스또예프스끼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예술혼이 주조된다. 

이 책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삶과 정신, 그리고 작품과 인물들의 심층적인 분석과 그 시대의 시대상과 함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의 모습을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살던 19세기 러시아의 뻬쩨르부르그의 뒷골목은 더러운 오물과 악취를 풍기는 병과 세균의 온상지였다. 장티푸스,결핵,콜레라등 수많은 병균들이 들끓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암울한 곳이다. 이런곳에서 간질병을 앓으며 글을 쓴다면 과연 희망적이고 긍정적 기운이 담긴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렇기에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은 잔인한 살인이나 각종 정신병을 앓는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중엔 자신의 정신상태나 가치관을 투영시킨 인물들이 많으며 그로 인해 그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당시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칭송을 받는 대문호라기엔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여성을 혐오하고 자신의 종교 이외에는 모두 경멸하며 유럽에 대한 절대적인 적대심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일지라도 대문호라는 칭호를 받기는 커녕 학계에서 매장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살아야 했던 암울한 시대상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도스또예프스끼는 사회범으로 교도에 수감되며 잔인한 고문을 당하고 또 실제 사형수로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경험까지 있다니 그런 인생을 살아온 사람에게 건강한 정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결핵균보다 더 독한 혐오와 경멸, 증오라는 세균이 자란다.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침을 뱉고 이를 갈게 만드는. 


하지만 19세기 러시아 뒷골목의 처참한 상황이 낯설지 않은것은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대와 크게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백신이나 보건위생이 발달하여 옛날처럼 결핵이나 콜레라에 걸려 아무런 치료 없이 그냥 죽어가는 사람은 없어졌지만 지금 우리에겐 더 큰 질병들이 사람들의 정신을 갉아 먹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울증이나 치매는 본인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함께 고통 받게 되는 현대인들의 가장 큰 질병 중의 하나이다. 백신이나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마음의 병들은 그와 더불어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뗄 수 없는 고독과 합쳐지면 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결핵 발생률, 유병률, 사망률, 항생제 내성발생률 모두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부모를 부양하지 않아 고독사에 이르는 노인들의 마지막이 더이상 특별한 일로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고독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모두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몰려 들지만 공동체 의식이나 일체감을 찾아 보긴 힘들다. 항상 쫓기는 듯한 생활과 자신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언제나 피로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또한 부를 거머쥔 일부의 사람들이 대다수의 시민들을 조롱하고 기만하는 행위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암울한 소설 속의 시대보다 더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21세기 지금이 그때보다 얼마나 더 많은 발전을 한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문명생활에는 누구나 거부하기 힘들고 단념하기 불가능한 편리함과 안락함, 화려함 같은 것이 있다. 그 대신 불안과 우울을 늘 안고 살아가야 한다. 



비록 그의 소설은 잔인하고 암울한 인물과 이야기로 가득하며 자신 역시 고독하고 우울한 인생을 살았고 간질병을 앓았지만 그는 자신의 병을 초월하여 그 고통을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 대단한 사람이란것을 느꼈다. 병으로 인해 고독하고 기댈곳 하나 없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 같은 삶을 살며 끝없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글 쓰기를 포기하지 않은 집념과 그 재능은 충분히 대문호라 칭호되기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사상이나 가치관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그가 겪은 수많은 고초와 고통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병든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 어찌 건강한 정신과 몸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그가 표현해 낸 많은 인물들의 심리와 그 당시의 사회상과 빗대어 지금 우리의 21세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신적 질병과 문제들을 들춰내어 지각하게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을 내가 펼쳐볼 수 있는 마음의 결심이 생기기를 바래본다. 



그는 진정 21세기의 의사들을 가르칠 수 있는, 19세기의 거룩한 병자였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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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온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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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 가정을 이룬 모든 사람들이 아이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둘만의 생활에 만족하며 산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아이를 낳아 보니 아이가 주는 기쁨과 행복은 세상 어떤 것과 비교해 봐도 좀더 크고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이라면 상관없겠으나 절실히 아이를 원하지만 가지지 못하는 불임, 난임 부부들의 고통은 얼마나 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부모가 되어 가는 주변 사람들 틈에서 왜 아이를 갖지 않냐는 사람들의 무심한 한마디가 비수같이 마음에 꽂히며 점점 더 초조하고 고통스러워지는 그 마음은 겪어 보지 않고는 모를 아픔이지 않을까. 


힘든 치료를 통해 임신에 성공한다면 좋겠지만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있을 것이며, 힘들고 긴 치료의 여정을 버티기엔 비용도 시간도 모두가 넉넉한 것은 아니다. 여기 사토코 역시 아이를 갖고자 했지만 남편 기요카즈의 무정자증으로 결국 임신을 포기하고 아이를 입양하게 된다. 아이의 입양을 주선해 주는 베이비 배턴이란 단체를 통해 중학생 산모가 히로시마에서 낳은 남자 아이를 입양하고, 아사토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하지만 아사토가 6살이 되었을 때 아이를 낳은 생모로부터 아이를 돌려 받고 싶고 그렇지 않다면 돈을 달라는 연락을 받으며 큰 혼란을 겪게 된다. 



흐릿한 하늘에는 분명히 햇살이 비치고 있는데 그 햇살을 더듬어도 해는 보이지 않았다.



사실 입양 가정에 대해 가진 편견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니 서로간의 결속력이 아무래도 덜할것이란 생각이나 입양 사실을 숨기다 아이가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로인해 아이가 받게 될 큰 충격 같은 왠지 부정적인 입장의 생각들이 우리 사회엔 아직 만연하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입양 가정인 아사토의 집은 다르다. 아사토가 어린 시절부터 입양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이야기 해 주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입양 사실을 이야기 하며, 집안에 아이를 낳아 준 ‘히로시마 엄마’로 불리는 모두의 엄마가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 굉장히 신선한 부분이었다. 낳아준 엄마의 존재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함께 가족의 일원으로서 소중히 생각하는 아사토 가족의 모습은 입양이란 제도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없앨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아사토의 생모인 히카리의 삶은 너무나 힘겹다. 중학생의 나이로 아이를 가진 히카리는 강압적이고 보수적인 부모로 인해 가족들과 어긋나기 시작하고 아이를 낳고 난 뒤에 긴긴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사실 중학생이면 몸도 마음도 아직 미성숙한 나이일텐데 임신과 출산이라는 큰 일을 겪은 히카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가족의 품일 것이다. 하지만 히카리의 부모님은 이해해주고 품어주기 보다 점점 더 히카리를 밀어내기만 한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기까지 힘겨운 시간 동안 히카리가 진정 기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히카리의 부모님은 아이를 낳고 아이가 인생에서 없어지면 다시 예전 히카리의 인생으로 돌아갈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지만, 과거의 히카리는 더이상 없다. 결국 그렇게 어른이 된 히카리는 스스로 삶의 무게와 책임감에 짓눌린채 무너지고 만다. 



도망칠 일도, 키울 일도, 아이의 생일을 축하할 일도 없는 대신 똑똑히 기억하자. 아이와 오늘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을 봤다는 것을. 
둘이자 하나인 우리가 함께 봤던 하늘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이 시간을. 



히카리의 절망적인 인생도, 사토코의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어두운 터널 같은 불임 치료의 시간도, 도무지 해답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시간들의 끝엔 언제나 아사토가 있었다. 무너지기 직전의 히카리와 사토코에게 빛처럼 나타난 아사토는 그 자체로 그들에겐 희망의 기운을 가진채 솟아나는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과 같다. 어둠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 사이에서도 언제나 아침은 다시 오게 마련이다. 그 어둠을 체감하는 것도 이겨내는 것도 모두다 다르겠지만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따스한 햇빛이 비치는 아침이라면 누구나 희망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힘을 얻는 것처럼 히카리와 사토코 역시 각자의 아침을 맞이하며 새로운 삶을 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힘든일이 있을 때 일출을 보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힘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비록 절망적이고 어두운 사회의 모습과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두운 실상을 마주하며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저자는 그 속에서도 희망을 읽어내고 그로인해 우리에게 더 크고 깊은 감동을 준다. 아이를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현실과 중학생의 임신과 출산 후 이어지는 힘겨운 인생, 그리고 다시 아이를 돌려 받겠다는 등 수많은 갈등이 어찌보면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일들의 연속이지만 저자는 잔잔하고 담담하게 이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나가기에 나에겐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둠이 끝나면 빛이 있다는 간단한 명제를 대부분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소설의 그녀들과 같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겐 희망을, 잘못된 인식이나 편견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겐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해 줄 수 있는 따뜻하고 온화하지만 큰 힘을 가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들었던 사랑에 빠진다는 표현과는 약간 다르다. 하지만 사토코는 분명히 깨달았다. 아침이 왔다는 것을. 끝없이 이어지는 밤의 밑바닥을 걸어, 빛 하나 없는 터널을 빠져나왔다. 영원히 밝아 오지 않을 것 같던 아침이 지금 밝았다. 아이는 우리에게 아침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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