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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온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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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 가정을 이룬 모든 사람들이 아이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둘만의 생활에 만족하며 산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아이를 낳아 보니 아이가 주는 기쁨과 행복은 세상 어떤 것과 비교해 봐도 좀더 크고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이라면 상관없겠으나 절실히 아이를 원하지만 가지지 못하는 불임, 난임 부부들의 고통은 얼마나 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부모가 되어 가는 주변 사람들 틈에서 왜 아이를 갖지 않냐는 사람들의 무심한 한마디가 비수같이 마음에 꽂히며 점점 더 초조하고 고통스러워지는 그 마음은 겪어 보지 않고는 모를 아픔이지 않을까.
힘든 치료를 통해 임신에 성공한다면 좋겠지만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있을 것이며, 힘들고 긴 치료의 여정을 버티기엔 비용도 시간도 모두가 넉넉한 것은 아니다. 여기 사토코 역시 아이를 갖고자 했지만 남편 기요카즈의 무정자증으로 결국 임신을 포기하고 아이를 입양하게 된다. 아이의 입양을 주선해 주는 베이비 배턴이란 단체를 통해 중학생 산모가 히로시마에서 낳은 남자 아이를 입양하고, 아사토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하지만 아사토가 6살이 되었을 때 아이를 낳은 생모로부터 아이를 돌려 받고 싶고 그렇지 않다면 돈을 달라는 연락을 받으며 큰 혼란을 겪게 된다.
흐릿한 하늘에는 분명히 햇살이 비치고 있는데 그 햇살을 더듬어도 해는 보이지 않았다.
사실 입양 가정에 대해 가진 편견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니 서로간의 결속력이 아무래도 덜할것이란 생각이나 입양 사실을 숨기다 아이가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로인해 아이가 받게 될 큰 충격 같은 왠지 부정적인 입장의 생각들이 우리 사회엔 아직 만연하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입양 가정인 아사토의 집은 다르다. 아사토가 어린 시절부터 입양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이야기 해 주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입양 사실을 이야기 하며, 집안에 아이를 낳아 준 ‘히로시마 엄마’로 불리는 모두의 엄마가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 굉장히 신선한 부분이었다. 낳아준 엄마의 존재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함께 가족의 일원으로서 소중히 생각하는 아사토 가족의 모습은 입양이란 제도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없앨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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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아사토의 생모인 히카리의 삶은 너무나 힘겹다. 중학생의 나이로 아이를 가진 히카리는 강압적이고 보수적인 부모로 인해 가족들과 어긋나기 시작하고 아이를 낳고 난 뒤에 긴긴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사실 중학생이면 몸도 마음도 아직 미성숙한 나이일텐데 임신과 출산이라는 큰 일을 겪은 히카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가족의 품일 것이다. 하지만 히카리의 부모님은 이해해주고 품어주기 보다 점점 더 히카리를 밀어내기만 한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기까지 힘겨운 시간 동안 히카리가 진정 기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히카리의 부모님은 아이를 낳고 아이가 인생에서 없어지면 다시 예전 히카리의 인생으로 돌아갈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지만, 과거의 히카리는 더이상 없다. 결국 그렇게 어른이 된 히카리는 스스로 삶의 무게와 책임감에 짓눌린채 무너지고 만다.
도망칠 일도, 키울 일도, 아이의 생일을 축하할 일도 없는 대신 똑똑히 기억하자. 아이와 오늘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을 봤다는 것을.
둘이자 하나인 우리가 함께 봤던 하늘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이 시간을.
히카리의 절망적인 인생도, 사토코의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어두운 터널 같은 불임 치료의 시간도, 도무지 해답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시간들의 끝엔 언제나 아사토가 있었다. 무너지기 직전의 히카리와 사토코에게 빛처럼 나타난 아사토는 그 자체로 그들에겐 희망의 기운을 가진채 솟아나는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과 같다. 어둠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 사이에서도 언제나 아침은 다시 오게 마련이다. 그 어둠을 체감하는 것도 이겨내는 것도 모두다 다르겠지만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따스한 햇빛이 비치는 아침이라면 누구나 희망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힘을 얻는 것처럼 히카리와 사토코 역시 각자의 아침을 맞이하며 새로운 삶을 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힘든일이 있을 때 일출을 보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힘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비록 절망적이고 어두운 사회의 모습과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두운 실상을 마주하며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저자는 그 속에서도 희망을 읽어내고 그로인해 우리에게 더 크고 깊은 감동을 준다. 아이를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현실과 중학생의 임신과 출산 후 이어지는 힘겨운 인생, 그리고 다시 아이를 돌려 받겠다는 등 수많은 갈등이 어찌보면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일들의 연속이지만 저자는 잔잔하고 담담하게 이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나가기에 나에겐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둠이 끝나면 빛이 있다는 간단한 명제를 대부분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소설의 그녀들과 같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겐 희망을, 잘못된 인식이나 편견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겐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해 줄 수 있는 따뜻하고 온화하지만 큰 힘을 가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들었던 사랑에 빠진다는 표현과는 약간 다르다. 하지만 사토코는 분명히 깨달았다. 아침이 왔다는 것을. 끝없이 이어지는 밤의 밑바닥을 걸어, 빛 하나 없는 터널을 빠져나왔다. 영원히 밝아 오지 않을 것 같던 아침이 지금 밝았다. 아이는 우리에게 아침을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