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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
폴 비티 지음, 이나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피부색이 뭐가 그리 중요하며 누가 월등하고 누가 하등한지 결정하는 기준이라는 것이 애당초 존재한다 믿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어째서 인간들은 자꾸 편견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 인종차별이란 것이 사라지지 못하게 하는걸까? 인간의 존귀함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까진 안돼더라도 겉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해 버리고 선 그어버리는 비굴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스스로 더 높은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말도 안돼는 사상이 아직도 이 세상에 공공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이뤄온 비약적인 발전에 비하면 너무나 치졸하고 부끄러운 이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 평화와 평등까지 부르짖진 못하더라도 나 하나만이라도 잘못된 인식을 갖지 말자 다짐한다고 해서 지금도 차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당장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과 불편함을 애써 피하려고만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래서 흑인사회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해 적나라하게 들춰내고 표현된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며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범죄로 들끓는 흑인들의 가상 도시 디킨스, 그곳에 사는 나의 재판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왜 그가 재판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거의 이야기를 되짚어가며 이어진다. 어릴적 사회학자인 아버지로부터 실험실의 생쥐처럼 실험대상이 되며 자라나고 그런 어린시절을 보낸 나는 아버지가 사복경찰의 총에 맞아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한번의 반발이나 분노조차 표출하지 못한채 아버지를 뒷마당에 묻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디킨스라는 도시가 지도에서 사라지자 그는 디킨스를 다시 부활시키려 한다. 도시 경계선을 그리기도하고 학교에서부터 인종 분리 정책을 다시 시행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불평을 하지만,인종 차별을 보고 깨닫지. 그걸 보면 겸손해져.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깨닫게 돼.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깨닫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은 인종차별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블랙유머로 가득하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꺼리는 인종차별이라는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유머와 해학으로 풀어나간다. 하지만 우리에겐 너무 낯선 단어나 문화의 차이가 있기에 이해 되지 않는 부분도, 또 너무 적나라한 이야기들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심각한 상황도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로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천 리 길도 한 모금부터...
“ 그놈의 <천 리 길> 소리는 노자가 한 소리다. “
공자가 말한다.
“당신네들 빌어먹을 철학자들 지껄이는 소리는 다 비슷 비슷해서. “
사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고 아무리 세계화로 인해 많은 외국인들이 이주해 살고 있긴 하지만 수많은 다른 인종들이 모여 살아가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낯설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세세하게 알 수는 없기에 그저 인종차별의 문제는 인식하고 있지만 우리가 체감할 수는 없는 먼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되는 인종차별은 더 심각하고 큰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비단 인종차별뿐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어떤 종류의 차별들과도 크게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며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 또한 그들이 겪고 있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비록 이 책은 소설이고 디킨스도, 나도, 모든 상황들도 전부 허구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 현실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유머가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읽히거나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작가가 그려낸 디킨스의 현실보다 더 시궁창같은 도시들이 실제로도 존재하고 있다는 진실을 떠올리는 순간이 사실은 더 고통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쨋든 누구나 알아야 할 이야기이고 무겁고 어둡게 풀어나가는 신파적이거나 참혹한 표현들이 아닌 냉소적이지만 유머가 녹아든 풍자이기에 그래도 우리가 받아들이고 기억하기에 더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인종차별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어쨋든 무조건적인 화합만이 답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서로가 틀린것이 아닌 다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 쉽지만 어려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시간을 갖게 해준 책이었다.
나는 흑인 여자들을 항상 피부색으로 묘사하는 게 지겨워요! 꿀색이 어떻고! 다크 초콜릿색이 어떻고! 내 친할머니는 모카색이 감도는 카페오레, 망할 그레이엄 크래커 갈색이었다고 하다니! 대체 백인 여자들을 음식이나 뜨거운 액체의 색으로 묘사하지 않은 이유는 뭐죠? 어째서 이 인종 차별적이고 결말도 없는 책에 요구르트색, 달걀 껍질색, 스트링 치즈 피부, 저지방 우윳빛 백인 주인공은 안 나오는거죠? 그래서 흑인 문학들이 후지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