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곳 사람들 - JTBC 이가혁 기자가 전하는 현장의 온도
이가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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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많이 읽지만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학생시절에는 신문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시사주간지는 꼬박꼬박 챙겨 읽었지만 내가 좋아했고 믿었던 주간지에서 어느 순간 마주하게 된 잘못된 시선과 아집 섞인 변명을 마주하며 절독을 선언하고 그때부터 언론사들에 대한 이유 없는 불신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특히 세월호부터는 뉴스를 보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던 것 같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과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어진 왜곡된 진실을 듣고 싶진 않았기에 점점 눈을 닫고 귀를 막았던 것 같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세월호때부터 눈에 띄는 언론사가 있었으니 바로 JTBC. 그 어떤 말로도 제대로 표현 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입에 발린 말이 아닌 어느정도의 진심이 느껴지기도 하기에 어느 순간 뉴스는 JTBC의 뉴스룸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세월호가 모두에게 잊혀졌을 때도 지속적으로 후속 보도를 하기도 하고 국정농단 사태를 수면위로 올리며 촛불집회를 항상 현장에서 독특하게 보도하기도 하고 특히 정유라의 덴마크 은신처를 찾아내 체포할 수 있게 했던 장면은 나역시 인상 깊게 보았기에 그 현장에서 그 일을 실제로 해낸 이가혁 기자의 얼굴은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러고보니 근 2년간 있었던 가장 굵직한 사건들의 현장엔 항상 이가혁 기자가 있었다. 세월호의 팽목항과 목포신항, 촛불집회의 광화문 광장, 탄핵 헌법재판소, 이화여대, 덴마크 올보르까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현장에서의 인상적인 취재 덕인지 이가혁 기자는 그 생생했던 현장뒤의 많은 이야기들을 책에 담아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뉴스의 모습은 잘 정제되고 다듬어진 그 일부일 뿐이기에 그 뒤에 숨겨진 현장의 이야기들이 항상 궁금하기 마련이다. 팽목항도 촛불집회도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뉴스에서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그 곳의 상황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 뜨거웠던 현장의 중심에서 매일 매일을 살았던 저자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의, 공정이라는 걸 책으로만 접하다가 비로소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옆 사람과 함께 손을 맞잡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힘을 모아봤다. 단순히 그 힘을 한두 차례 폭발시키고 그친 것이 아니라 여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는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책은 저자가 취재를 했던 많은 사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유라를 체포하기 위해 온 나라가 혈안이 되어 있던 때지만 정유라의 행적은 묘연하기만 했을 때 직접 독일, 오스트리아를 거쳐 덴마크까지 가게 된 결정적인 제보에 대한 이야기, 저자에게 ‘가혁벗’이란 살가운 별명을 선사해 준 이화여대 농성의 현장, 세월호 선체 인양으로 거점이 된 목포신항 풍경속의 미수습자 가족들의 끝없는 기다림과 가슴 아픈 재회의 순간, 국민이 하나가 되어 목청 높여 외쳤던 촛불집회의 뜨거웠던 광화문 광장과 탄핵 순간의 헌법재판소 앞의 상해위협과 사망자를 나은 태극기부대의 살벌한 집회까지 작년 한해를 뜨겁게 달궜던 큰 현장에는 항상 저자가 있었다. 그래서 뉴스룸에서 자주 얼굴을 보며 왠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덴마크 올보르에서 정유라가 현지 경찰에 체포되는 현장에서의 취재는 굉장히 인상적이었기에 이가혁이라는 이름 세글자를 기억하게 되기도 했다. 그런 현장에서의 취재가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더 힘든 여정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잠을 못자고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하며 기약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확신 없이 버텨야 하는 시간들은 힘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엔 도움을 준 고마운 많은 사람들과 결국은 마주하게 된 진실, 그리고 국민들에게 그 진실을 알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고생들은 눈 녹듯 사라지며 또다시 힘든 현장으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천막이 하나둘 걷히고 팽목항은 또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되겠지요. 그때가 되면, 우리는 또 착각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잊지 말자는 겁니다. 슬픔과 위로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이 슬픔과 위로를 어떻게 보관할지 정도는, 그래서 또 착각에 빠지지 않을 방법 정도는 함께 고민하자는 겁니다. 



사실 저널리즘이란 무엇이고 지금 우리 사회에 진정한 저널리즘을 가지고 보도하는 언론사가 있긴 한걸까라는 생각을 가지며 뉴스를 항상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박근혜정부의 언론 장악으로 진실이 왜곡되고 국민들을 눈속임하기 급급한 무능한 언론사들의 행태에 큰 실망과 분노를 느끼며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가혁기자의 책을 읽고 나니 모든 언론인들이 누군가의 꼭두각시 노릇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란 자그마한 희망을 가지게 해주었다. 분명히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우리에게 진심어린 마음와 이 사회의 정의, 그리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언론인들이 있다는 것도 절대 잊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왠지 책을 읽고 나니 나 역시 이가혁기자를 ‘가혁벗’이라 부르며 좀 더 칭찬하고 다독여주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으니 왜 그가 힘든 현장에서도 꿋꿋이 버텨내며 많은 이야기들을 전해 줄 수 있었는지 그 이유와 원동력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난여름부터 올여름까지 저는 이 현장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역사적인 현장’이라고 말하는 곳을 저는 일 때문에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각 했습니다. 이 현장에서의 모든 것이 기자 생활뿐만 아니라 제 삶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로 남을 그날, 그곳, 그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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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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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라는 건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라기 보다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문화와 정체성이 포함 되어 있는, 그 시대를 상징하고 그 시대의 가치관을 볼 수 있는 훌륭한 매개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에 대해서도 알게되고 문화나 음식등 모든 것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언어 역시 시대가 지나며 서서히 변하고 그 변화에는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에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한 나라와 그 언어를 써온 시간만큼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는 영어나 유럽의 언어들과는 그 뿌리 자체가 다르고 공통점이 거의 없기에 특히나 더 어렵게 느껴진다. 초등학교부터 배운 영어를 아직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우리를 보면 억지로 하는 공부나 주입식 교육법의 폐해를 여실히 느낄 수가 있다. 그렇기에 영어나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등의 근본이 되는 라틴어는 특히나 더 어렵고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라틴어라면 뭔가 고상해 보이고 지적인 느낌이 들기에 한번쯤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책의 시작이 된 대학교의 라틴어 수업을 들은 많은 학생들도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수강신청을 했던게 아닐까.


이 책은 서강대학교에서 진행된 라틴어 강의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저자는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로 한국과 로마를 오가며 이탈리아 법무법인에서 일했었고 그의 라틴어 강의는 타 학교 학생과 교수들, 심지어 일반인들까지 청강하러 찾아오는 등 최고의 명강의로 평가받은 바 있다. 사실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법을 비롯해 라틴어와 기타 유럽어를 구사하고 라틴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수료해야 한다니 저자의 실력에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자의 화려한 이력만이 그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듣도록 한 원동력은 아니다.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수업이었다면 지루하고 어렵기만 할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삶의 긴 여정 중의 한 부분인 학문의 지난한 과정은 어쩌면 칭찬 받고 싶은, 젠체하고 싶은 그 유치함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소위 배움에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고 합니다. 라틴어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을 공부하든 공부가 즐겁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예 즐겁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뭔가 거창한 목적마저 있어야 한다면 시작하기 전부터 숨이 막힐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정말 라틴어를 배워보고 싶어서, 또는 그 어렵다는 라틴어를 배운다 말하며 우쭐하고 싶어서 수업을 신청했을테지만 어쨋든 이 수업은 단지 라틴어를 가르쳐 주기 위한것 만은 아니다. 그것보다 라틴어를 통해 고대 로마인들이 가졌던 사상이나 그 시대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학생들의 사고의 체계를 잡아주고 진정한 학문의 길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수업이기에 꽤 오랜시간 동안 많은 학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강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 중간 나오는 라틴어의 문법이나 체계에 대한 설명을 보면 정말 어렵고 복잡하다. 그럼에도 유럽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지금은 쓰이지 않는 라틴어를 계속 가르친다는 건 공부하는 습관, 공부하는 태도를 라틴어를 통해 가르치는 것 같다고 한다. 아마도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인 라틴어를 익히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과 끈기라면 웬만한 공부들은 능히 해낼 수 있을테니 말이다. 공부라는 게 사실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라틴어 공부는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타인과 경쟁하고 이기기 위한 공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부모나 학교를 위한 공부를 하기에 힘들고 외로울 수 밖에 없다. 진정한 학문의 길이란 그저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학문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꿈꾸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엄마의 입장에서도 아이에게 앞으로 부모로서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비록 복잡하고 어려운 라틴어이지만 단어 하나에서 파생된 수많은 다른 언어와 그 기원이나 그 시대의 상황을 함께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점점 빠져든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그 복잡함과 어려움은 서서히 잊혀지곤 한다. 고대의 지식인들이 했던 훌륭한 말씀은 먼 시간을 건너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에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다’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달려갔다가, 막상 이루고 나서야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달려본 사람만이 압니다. 또 그게 내가 꿈꾸거나 상상했던 것처럼 대단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만큼 불필요한 집착이나 아집을 버릴 수도 있어요. 그만큼 내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겁니다.


 

대학생이라면 새로운 길을 걷게 되는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고, 어떻게 공부하고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또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의문에 의문이 더해져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는 때라고 생각한다. 이때까지 정해진 길을 따라 오다 이제 스스로 결정하고 나아가야 하기에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물론 그건 비단 대학생뿐만이 아니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 있거나 권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며 변화를 갈망하는 누군가에게도 힘이 되고 도전을 결심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설계해야 할 앞으로의 길은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그동안 알면서도 잊어버리고 살곤 했던 많은 것들을 다시금 접해볼 수 있는 흔치 않는 시간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가져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타인의 방법이 아니라 나의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찾아야 한다는 것이기에 내가 믿는 방법과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수 밖엔 없다. 라틴어라는 매개체로 수많은 지성들의 이야기와 경험을 통해 많은 깨달음의 시간을 가진 저자의 수업에서 많은 학생들이 느꼈던 것들을 나역시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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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이유 - 고전이 된 소설은 저마다 이유가 있다
김한식 지음 / 뜨인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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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누군가의 손에서 태어난 작품이 몇 세대를 거쳐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는 것, 그런 대단한 가치를 지닌 작품을 우리는 고전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고전이라는 작품들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을 알지만 쉽사리 책장을 펼칠수가 없는 건 어렵다는 편견과 작가가 숨겨둔 의미를 찾아서 이해하고 느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까, 나역시 집에 많지는 않지만 몇권의 고전 작품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읽지 못하고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훌륭한 작품들이니 그간 읽은 많은 사람들의 서평이나 해석을 접할 수는 있지만, 사실 그마저도 너무 어렵다고 느껴질때가 많기에 지금 당장 읽어야 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고전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또 이해하기 쉬운 해설서 같은 책을 한번쯤은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기에 그간 읽어보고 싶었던 많은 작품들이 포함된 이 책의 리스트에 끌릴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끝엔 다시 그 고전들을 펼칠 용기가 생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에는 총 15편의 고전에 대한 줄거리,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작품에 대한 해석과 저자 나름의 분석, 그리고 그 작품이 쓰인 시기나 작가에 대한 부연설명까지 한편당 길지 않은 분량의 내용이지만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 장황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 아닌 꼭 필요한 액기스만을 축약해 놓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작품의 의미와 내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중요 부분들을 발췌해 두어 그 작품을 읽지 못했어도 그 작품의 전반적인 느낌을 가늠해 볼 수 있기에 훨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고전의 생명은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풍부한 의미의 광맥에 달려 있습니다. 독자나 연구자들이 파고 또 파도 여전히 팔 수 있는 풍부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면 식상하지 않은 소설이 되겠지요. 



사실 책에 실린 고전들 중엔 내가 읽은 작품도 더러 있었지만 과연 내가 읽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나의 기억속에서 말끔히 잊혀져 있었기에 내가 그 책을 읽을 때 그저 텍스트를 읽기에만 급급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쨋든 오랜 시간동안 좋은 작품이라는 명성으로 이어져 온 책이니 나도 한번은 읽어 봐야 겠다는 성급한 마음에 호기롭게 펼쳤지만 집중하지 못하고 끝맺음 하지 못한 책도 더러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고전이라며 추앙하는 책도 내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니 그저 어렵고 재미 없다는 인식만 생길 뿐이었다. 그렇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니 점점 더 멀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친절한 해설이 달린 이 책을 읽고 나니 나 혼자 읽었다면 생각할 수 없었던 숨겨진 의미와 그런 이야기가 쓰일 수 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시대, 그리고 작가의 상황까지 퍼즐이 맞춰지는 것 처럼 이어지며 조금씩 단단했던 나의 편견의 틀이 깨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는 많이 다르기도 하고 또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새로운 사실들도 알게 되니 점점 더 흥미가 생길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확실히 고전이라는 칭호를 갖게 된 작품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작품을 쓴 작가의 놀라운 능력은 위대하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불행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불행과 절망을 감각하여 표현하는 작가의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문제를 타인의 문제로 만들고 나아가 사회적 문제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작가만이 위대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작품이니까 모두가 인정하는 작품이니까 나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하고, 또 되려 그 압박감에 책을 펼치기가 힘든것도 사실이다. 책을 읽고 난 뒤 내가 느끼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다르면 내가 잘못 읽은건가 내 생각이 틀린건가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나는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를 느낄 깜냥이 안돼나 보다하고 다른 고전에 대한 거부감이 들기도 하기에 사실 누구보다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게 도와줄 책이 필요했다. 이 책을 읽고나니 집 책꽂이 한구석에 조용히 잠들어 있던 고전책들을 소환할 용기가 그래도 조금은 생기기도 하고 또다른 매력을 느끼며 흥미가 생긴 작품들도 꼭 새롭게 읽어보자는 새해의 독서 동기가 생기기도 했다. 무엇이든 내가 가진 선입견을 벗겨내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생각이나 틀 속에 빠져있지 말고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어드바이스를 접해보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힘들게만 생각하지 말고 좀 더 쉽고 재밌는 방향으로의 접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으니 앞으로는 좀더 많은 고전 작품을 읽는 기회를 가져야 겠다는 새해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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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머무는 밤
현동경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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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순간을 영원한 기억으로 남겨 두는 것!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여행의 감동을 저도 함께 느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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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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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의 나를 생각해 보면 그리 밝은 아이도 긍정적인 아이도 아니었던 것 같다. 하고자 하는 열망이나 꿈이 확고하지 못했고 그냥 기류에 휩쓸려 흘러가듯 특별하지도 그렇다고 그렇게 비관적이지도 않은 길을 걸어왔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어두운 과거인 것 같지만 그런것은 아니다. 약간 어긋나도 항상 내 뒤엔 가족들이 있었고 함께 즐거웠던 시간을 보낸 친구들도 많았기에 생각해 보면 가장 무난하지만 또 한편으론 가장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끔찍하게 힘든 시간을 보내는 아이도 또 흘러 넘치는 사랑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아이도 존재할 것이다. 주어진 환경으로 인해 결정되어 지는 상황이야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노력한다면 개선될 여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한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어떤 불행의 요소를 안고 태어난다면 그것을 극복시키는 것은 분명 더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자식을 지켜봐야하는 부모의 마음이란 또 어떨까. 


윤재는 태어나면서부터 일명 아몬드라 불리는 뇌의 편도체가 일반인보다 작아 사람의 감정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왜 슬픈지 왜 웃긴지 왜 무서운지 감정이 무엇이고 공감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엄마와 할멈은 끊임없이 윤재가 평범한 아이로 보일 수 있도록 공부와 훈련을 시킨다. 하지만 윤재의 생일인 크리스마스 이브에 다함께 외식을 하러 나간 날 윤재의 눈 앞에서 할멈은 살인을 당하고 엄마는 머리를 다쳐 식물인간이 된다. 엄마가 하던 헌책방을 그대로 운영하던 윤재에게 자신의 잃어버린 아들과 닮았으니 죽어가는 아내에게 딱 한번만 아들인 척 연기를 해달라는 윤교수의 부탁을 받게 되고 그렇게 그의 진짜 아들인 곤이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곤이는 부모를 잃어버리고 여기저기 떠돌며 험난한 인생을 살다 극적으로 다시 부모를 만나게 되지만 아버지인 윤교수와는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그 누구보다 감정이 풍부한 곤이는 윤재에게 적대감을 가지게 되지만 서로의 다름에 이끌린 것인지 둘은 점점 서로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사실 요즘은 인간관계에 치이고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에 차라리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것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윤재를 보면 사람에게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느낄 수 있다. 특히나 예민한 청소년 시기엔 자신들과는 다른 아이에 대해서는 배척하고 적대심을 가지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윤재의 엄마와 할멈은 그렇게 평범한 삶을 사는 아이를 꿈꾸며 끊임없이 훈련을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족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다면 과연 그 아이는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손을 잡아 준 가족이 있었기에 비록 윤재는 선천적인 불행을 안고 태어났고 좋지 않은 환경이었을지라도 살아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반면 곤이는 그 누구보다 감정에 충실한 아이다. 비록 어린시절 부모를 잃어버려 힘든 어린시절을 보내며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고 그저 강한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애쓸 뿐이다. 그런 곤이에게 윤재의 시종일관 아무런 감정 없이 자신을 대하는 모습에서 곤이는 자신의 약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왠지 강하고 특별해 보이는 윤재에게  어느정도의 동경을 가지게 되는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곤이가 부모를 잃지 않았다면 따뜻한 부모 밑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한 아이로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뒤늦게 나타난 아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감당할 수 없는 문제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부모 역시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기에 곤이와 윤교수는 계속 어긋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람들은 곤이가 대체 어떤 앤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처음엔 너무 어둡고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윤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지란 생각을 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상황을 극복해 나가고 성장해 나가는 모든 인물들의 모습에서 확실히 청소년 성장 소설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른인 내가 읽기엔 그 끝이 모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 역시 어떤게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른다고 한 것처럼 나역시 뭔가 풀리지 않는 의구심을 가진채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인격이 완성되지 않은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누군가의 삶을 외면하고 다름을 틀림으로 배척하는 것이 아닌, 느끼고도 행동하지 않거나 공감하면서도 쉽게 잊는 것이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 나을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요즘처럼 개인의 이기주의가 팽배해지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지 않도록 깨달음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은 똑같지 않고 모두가 다른 상황속에 살아가지만 그래도 다함께 어우러지며 살아간다는 것, 간단하고 단순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며 잊기 쉬운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릴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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