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날 그곳 사람들 - JTBC 이가혁 기자가 전하는 현장의 온도
이가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12월
평점 :


책은 많이 읽지만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학생시절에는 신문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시사주간지는 꼬박꼬박 챙겨 읽었지만 내가 좋아했고 믿었던 주간지에서 어느 순간 마주하게 된 잘못된 시선과 아집 섞인 변명을 마주하며 절독을 선언하고 그때부터 언론사들에 대한 이유 없는 불신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특히 세월호부터는 뉴스를 보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던 것 같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과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어진 왜곡된 진실을 듣고 싶진 않았기에 점점 눈을 닫고 귀를 막았던 것 같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세월호때부터 눈에 띄는 언론사가 있었으니 바로 JTBC. 그 어떤 말로도 제대로 표현 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입에 발린 말이 아닌 어느정도의 진심이 느껴지기도 하기에 어느 순간 뉴스는 JTBC의 뉴스룸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세월호가 모두에게 잊혀졌을 때도 지속적으로 후속 보도를 하기도 하고 국정농단 사태를 수면위로 올리며 촛불집회를 항상 현장에서 독특하게 보도하기도 하고 특히 정유라의 덴마크 은신처를 찾아내 체포할 수 있게 했던 장면은 나역시 인상 깊게 보았기에 그 현장에서 그 일을 실제로 해낸 이가혁 기자의 얼굴은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러고보니 근 2년간 있었던 가장 굵직한 사건들의 현장엔 항상 이가혁 기자가 있었다. 세월호의 팽목항과 목포신항, 촛불집회의 광화문 광장, 탄핵 헌법재판소, 이화여대, 덴마크 올보르까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현장에서의 인상적인 취재 덕인지 이가혁 기자는 그 생생했던 현장뒤의 많은 이야기들을 책에 담아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뉴스의 모습은 잘 정제되고 다듬어진 그 일부일 뿐이기에 그 뒤에 숨겨진 현장의 이야기들이 항상 궁금하기 마련이다. 팽목항도 촛불집회도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뉴스에서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그 곳의 상황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 뜨거웠던 현장의 중심에서 매일 매일을 살았던 저자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의, 공정이라는 걸 책으로만 접하다가 비로소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옆 사람과 함께 손을 맞잡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힘을 모아봤다. 단순히 그 힘을 한두 차례 폭발시키고 그친 것이 아니라 여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는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책은 저자가 취재를 했던 많은 사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유라를 체포하기 위해 온 나라가 혈안이 되어 있던 때지만 정유라의 행적은 묘연하기만 했을 때 직접 독일, 오스트리아를 거쳐 덴마크까지 가게 된 결정적인 제보에 대한 이야기, 저자에게 ‘가혁벗’이란 살가운 별명을 선사해 준 이화여대 농성의 현장, 세월호 선체 인양으로 거점이 된 목포신항 풍경속의 미수습자 가족들의 끝없는 기다림과 가슴 아픈 재회의 순간, 국민이 하나가 되어 목청 높여 외쳤던 촛불집회의 뜨거웠던 광화문 광장과 탄핵 순간의 헌법재판소 앞의 상해위협과 사망자를 나은 태극기부대의 살벌한 집회까지 작년 한해를 뜨겁게 달궜던 큰 현장에는 항상 저자가 있었다. 그래서 뉴스룸에서 자주 얼굴을 보며 왠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덴마크 올보르에서 정유라가 현지 경찰에 체포되는 현장에서의 취재는 굉장히 인상적이었기에 이가혁이라는 이름 세글자를 기억하게 되기도 했다. 그런 현장에서의 취재가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더 힘든 여정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잠을 못자고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하며 기약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확신 없이 버텨야 하는 시간들은 힘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엔 도움을 준 고마운 많은 사람들과 결국은 마주하게 된 진실, 그리고 국민들에게 그 진실을 알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고생들은 눈 녹듯 사라지며 또다시 힘든 현장으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천막이 하나둘 걷히고 팽목항은 또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되겠지요. 그때가 되면, 우리는 또 착각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잊지 말자는 겁니다. 슬픔과 위로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이 슬픔과 위로를 어떻게 보관할지 정도는, 그래서 또 착각에 빠지지 않을 방법 정도는 함께 고민하자는 겁니다.
사실 저널리즘이란 무엇이고 지금 우리 사회에 진정한 저널리즘을 가지고 보도하는 언론사가 있긴 한걸까라는 생각을 가지며 뉴스를 항상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박근혜정부의 언론 장악으로 진실이 왜곡되고 국민들을 눈속임하기 급급한 무능한 언론사들의 행태에 큰 실망과 분노를 느끼며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가혁기자의 책을 읽고 나니 모든 언론인들이 누군가의 꼭두각시 노릇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란 자그마한 희망을 가지게 해주었다. 분명히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우리에게 진심어린 마음와 이 사회의 정의, 그리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언론인들이 있다는 것도 절대 잊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왠지 책을 읽고 나니 나 역시 이가혁기자를 ‘가혁벗’이라 부르며 좀 더 칭찬하고 다독여주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으니 왜 그가 힘든 현장에서도 꿋꿋이 버텨내며 많은 이야기들을 전해 줄 수 있었는지 그 이유와 원동력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난여름부터 올여름까지 저는 이 현장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역사적인 현장’이라고 말하는 곳을 저는 일 때문에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각 했습니다. 이 현장에서의 모든 것이 기자 생활뿐만 아니라 제 삶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로 남을 그날, 그곳, 그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