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언어라는 건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라기 보다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문화와 정체성이 포함 되어 있는, 그 시대를 상징하고 그 시대의 가치관을 볼 수 있는 훌륭한 매개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에 대해서도 알게되고 문화나 음식등 모든 것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언어 역시 시대가 지나며 서서히 변하고 그 변화에는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에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한 나라와 그 언어를 써온 시간만큼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는 영어나 유럽의 언어들과는 그 뿌리 자체가 다르고 공통점이 거의 없기에 특히나 더 어렵게 느껴진다. 초등학교부터 배운 영어를 아직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우리를 보면 억지로 하는 공부나 주입식 교육법의 폐해를 여실히 느낄 수가 있다. 그렇기에 영어나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등의 근본이 되는 라틴어는 특히나 더 어렵고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라틴어라면 뭔가 고상해 보이고 지적인 느낌이 들기에 한번쯤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책의 시작이 된 대학교의 라틴어 수업을 들은 많은 학생들도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수강신청을 했던게 아닐까.


이 책은 서강대학교에서 진행된 라틴어 강의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저자는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로 한국과 로마를 오가며 이탈리아 법무법인에서 일했었고 그의 라틴어 강의는 타 학교 학생과 교수들, 심지어 일반인들까지 청강하러 찾아오는 등 최고의 명강의로 평가받은 바 있다. 사실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법을 비롯해 라틴어와 기타 유럽어를 구사하고 라틴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수료해야 한다니 저자의 실력에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자의 화려한 이력만이 그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듣도록 한 원동력은 아니다.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수업이었다면 지루하고 어렵기만 할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삶의 긴 여정 중의 한 부분인 학문의 지난한 과정은 어쩌면 칭찬 받고 싶은, 젠체하고 싶은 그 유치함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소위 배움에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고 합니다. 라틴어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을 공부하든 공부가 즐겁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예 즐겁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뭔가 거창한 목적마저 있어야 한다면 시작하기 전부터 숨이 막힐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정말 라틴어를 배워보고 싶어서, 또는 그 어렵다는 라틴어를 배운다 말하며 우쭐하고 싶어서 수업을 신청했을테지만 어쨋든 이 수업은 단지 라틴어를 가르쳐 주기 위한것 만은 아니다. 그것보다 라틴어를 통해 고대 로마인들이 가졌던 사상이나 그 시대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학생들의 사고의 체계를 잡아주고 진정한 학문의 길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수업이기에 꽤 오랜시간 동안 많은 학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강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 중간 나오는 라틴어의 문법이나 체계에 대한 설명을 보면 정말 어렵고 복잡하다. 그럼에도 유럽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지금은 쓰이지 않는 라틴어를 계속 가르친다는 건 공부하는 습관, 공부하는 태도를 라틴어를 통해 가르치는 것 같다고 한다. 아마도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인 라틴어를 익히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과 끈기라면 웬만한 공부들은 능히 해낼 수 있을테니 말이다. 공부라는 게 사실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라틴어 공부는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타인과 경쟁하고 이기기 위한 공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부모나 학교를 위한 공부를 하기에 힘들고 외로울 수 밖에 없다. 진정한 학문의 길이란 그저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학문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꿈꾸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엄마의 입장에서도 아이에게 앞으로 부모로서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비록 복잡하고 어려운 라틴어이지만 단어 하나에서 파생된 수많은 다른 언어와 그 기원이나 그 시대의 상황을 함께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점점 빠져든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그 복잡함과 어려움은 서서히 잊혀지곤 한다. 고대의 지식인들이 했던 훌륭한 말씀은 먼 시간을 건너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에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다’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달려갔다가, 막상 이루고 나서야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달려본 사람만이 압니다. 또 그게 내가 꿈꾸거나 상상했던 것처럼 대단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만큼 불필요한 집착이나 아집을 버릴 수도 있어요. 그만큼 내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겁니다.


 

대학생이라면 새로운 길을 걷게 되는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고, 어떻게 공부하고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또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의문에 의문이 더해져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는 때라고 생각한다. 이때까지 정해진 길을 따라 오다 이제 스스로 결정하고 나아가야 하기에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물론 그건 비단 대학생뿐만이 아니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 있거나 권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며 변화를 갈망하는 누군가에게도 힘이 되고 도전을 결심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설계해야 할 앞으로의 길은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그동안 알면서도 잊어버리고 살곤 했던 많은 것들을 다시금 접해볼 수 있는 흔치 않는 시간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가져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타인의 방법이 아니라 나의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찾아야 한다는 것이기에 내가 믿는 방법과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수 밖엔 없다. 라틴어라는 매개체로 수많은 지성들의 이야기와 경험을 통해 많은 깨달음의 시간을 가진 저자의 수업에서 많은 학생들이 느꼈던 것들을 나역시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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