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조 퀴넌 지음,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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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존재 자체로 완벽한 것들이 많지만 그중 하나가 책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책은 사람들에게 본능과도 같은 존재라는 생각도 든다. 지식을 얻기 위해,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등 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나에게 독서란 그저 단순히 즐겁고 재밌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는 단순한 이유가 가장 크다. 그저 책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집 한켠의 빽빽한 책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에 자꾸만 책 욕심은 더더 커지고 읽을 시간이 항상 부족함에도 자꾸만 책을 들일 수 밖에 없다. 


다행히도 남편은 책을 그리 많이 읽진 않지만 책 자체를 싫어하진 않고 한달에 내가 모아둔 책 중에 한권씩은 꼭 읽는편이다. 하지만 자꾸만 늘어나는 책과 그로인한 공간부족을 토로하는 내게 적당히 늘리라는 핀잔을 주곤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독서라는 취미는 그렇게 부정적으로 인식되지 않기에 그래도 당당히 읽고 당당히 모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취미라고 말하기도 좋고..(흠흠) 아직은 내가, 그리고 가족들이 감당할 수 있을만한 수준이기에 큰 문제는 없지만 지금같은 속도라면 조만간 다시 책장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 걱정없이 마음껏 책을 읽고 소유할 수 있는 자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이 아닐까. 



책 사랑꾼들은 대개 정보를 얻으려고, 시간을 보내려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혹은 C.S. 루이스의 말마따나 혼자가 아님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한결 흥미진진하고 살맛 나는 세상으로 도피하려고 책을 읽는다. 자신의 밥벌이, 배우자, 자국 정부, 생활이 진절머리 나지 않는 세상으로. 


 

 

아마 나와 같은 책 사랑꾼이라면 이 책의 이야기에 격한 공감과 이 세상에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다는 면에서는 위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필라델피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여러가지 잡일을 병행하며 대학을 다니고, 프랑스 유학을 계기로 언론 매체에 자유 기고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저자는 유수의 매체들의 서평을 담당하며 방대한 독서 편력을 바탕으로 출판 칼럼니스트로서 명성을 얻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돈까지 벌고 명예까지 얻는다니, 참으로 부러운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직업적으로도 수많은 책을 접할 수 밖에 없고 또한 일상생활에서도 지독한 애서가의 면모를 보이는 저자이기에 그가 펼치는 책에 대한 예찬은 책을 읽느라 바친 세월만큼 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가득하다. 하지만 괴팍해 보이기도 하고 또 고집스러움도 내비치는 성격탓에 절대 상냥하고 부드럽게만 책을 사랑하진 않는다. 한번에 서른권이 넘는 책을 동시에 읽는 습관이나 요즘 한창 유행인 북클럽에 대한 비판, 공공도서관의 미대출 책들이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책들을 모두 빌려보았던 일, 대중교통에서 책 읽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자가용을 타지 않는 것, 작가들은 팬들의 조언보다 돈에만 신경 쓴다는 파격적인 발언들은 저자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책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삶이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책을 읽느라 집을 소홀히 하고 해야할 다른 일들을 끊임없이 미루며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책이라는 사물 자체가 신성하다고 믿으며 책은 우리가 만질 수 있고 체취를 맡을 수 있어야 하기에 전자책 사용을 거부한다는 그의 확고한 이야기는 나의 생각과 너무나도 일치하는지라 좀 걸걸하고 극단적이긴해도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환호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맞게 세상을 상대하는 방식을 고안해냈지만 이 방식이 모두에게 통하진 않는다. 내 손, 내 집, 내 주머니, 내 삶 안의 책은 나의 행복에 늘 필수적일 것이다. 나는 절대 전자책 단말기를 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건 필요 없다. 누크로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기억나는 여자 친구의 손글씨를 불현듯 발견할 수 있을까. 킨들에서 빛바랜 에펠탑 입장권이 툭 떨어질 일이 있을까. 나는 기술 문명의 반대자요, 그래서 자랑스럽다. 


 

 

 

누군가는 읽지도 못할 책들을 왜 사냐며, 왜 다시 읽지도 않을 책들을 계속 쌓아두냐며 얘기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마 책과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을 것이다. 책을 소유하는 순간부터, 아직 첫 페이지도 펼치지 않은 책이라 해도, 어떤 면에서 그 책이 내 삶을 바꾸었다는 느낌이 든다는 저자의 말을 듣는다면 그 생각이 조금은 바뀔 수 있을까. 또한 내가 읽었던 책을 보면 그 책을 읽었던 그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며 그 시절 나의 생각과 마음들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하기에 책은 나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좋은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내가 행복하게 읽었던 책을 없앤다는 건 나의 과거의 추억이 없어져 버린다는 생각이 든다는걸 이해할 수 있을까. 책에 대한 그런 많은 질문들과 비난을 받아왔던 사람이라면 아마 이 책으로인해 그런 고통의 시간들을 보상받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분명 개인마다 선호하는 작가와 선호하는 책의 종류가 존재하기에 만약 내가 좋아하는 책을 비난하는 부분을 읽게 된다면 기분이 상할지도 모른다. 가감없이 거부하고 단호하게 배제하는 저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취향이 어찌됐든 책을 통해 휴식을 얻고 추억을 되살릴 수 있으며 뻔하고 지루한 인생에서 잠시 벗어나 은밀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세상에 좋은 책이 너무도 많아서 그 책들을 전부 맛보고 싶다는 저자의 책 사랑만큼은 분명 함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 책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삶을 꿈꾸는 사람도, 독서란 너무나 멀고도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도 이 책을 통해 책이 주는 벅찬 행복을 절실히 느껴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아직 [빌레트]를 다 읽지 못했으니 죽음의 천사에게 나중에 다시 오라 전하라. 거기에는 우리 모두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는 희망이 있다. 나 믿노니, 이것이 책이 인류에게 주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모든 생은, 최고의 생조차도, 끝은 슬프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는다. 우리가 듣고 싶은 목소리는 영원히 멈춰버린다. 책은 끝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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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강
올리버 색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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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남길 수 있는 이야기엔 어떤 것들을 담아야 할까?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을 담을 수도, 또 후회스러운 순간의 반성이 가득할 수도 있다. 아마 대부분 자신 스스로나 가족들,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한평생 무언가를 관찰하고 연구하고 치료하던 사람의 마지막 글엔 좀더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죽기 직전까지 글을 썼다는 것도 놀랍지만 죽기전 남긴 마지막 책을 이토록 담담하게 써내려 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경학자로서 살아온 그의 삶에서 중요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이 책은 흐르는 강처럼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며 읽을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은 고정되거나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며, 변화와 새로운 경험에 늘 민감하다. 


 

 

 

저자인 올리버 색스는 2015년 안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그는 신경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여러 환자들의 사연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들려주며 뇌와 정신 활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 불리기도 했던 그는 항상 대중과 소통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가 남긴 마지막 책으로 여러편의 길고 짧은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 흠모했던 학자들의 연구에서부터 본인의 이야기까지 그가 가졌던 세상에 대한 무수히 많은 호기심과 그에 따른 과학적 사례들이 담겨 있다. 늘 그가 동경했던 찰스 다윈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식물학자이기도 했으며 난초와 꽃의 관찰을 통해 진화론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심리학자로 알고 있던 프로이트는 신경학자로서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기도 했다니 우리가 몰랐던 과학자들의 또다른 업적에 대해서 새로운 이면을 알게 되기도 한다. 특히 저자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기억의 부실함과 오류에 대한 사례나 청력이 저하되며 상대방의 말을 잘못 들었던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과학적 이론들에 대한 이야기는 스스로의 경험 역시 끝없이 되돌아보고 고찰하며 끊임없이 연구하는 그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도 했다. 



다윈은 난초와 꽃을 전례 없이 면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여, <종의 기원>보다 훨씬 자세한 내용이 담긴 책으로 펴냈다. 이는 그가 현학적이거나 강박적인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세밀하지 않으면 유의미하지 않다고 느끼는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신이 세세한 것에 관여한다’고 믿었지만, 다윈은 ‘그건 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선택의 소관 사항’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선택은 수백만 년에 걸쳐 꽃을 세부적으로 빚어내므로, 역사와 진화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만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다윈을 통해 나의 생물학적 독특성, 생물학적 내력, 다른 생명 형태와의 생물학적 혈연관계를 알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이 지식은 내 마음속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자연을 내 고향처럼 느끼게 해주고, 나 자신만의 고유한 생물학적 의미를 느끼게 해준다. 동물의 삶은 식물의 삶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인간의 삶은 다른 어떤 동물의 삶보다도 복잡하지만, 모든 생물은 각자 나름의 생물학적 의미를 갖는다. 



의식이니 진화론이니 사실 어려운 내용들이 태반이다. 사실 저자가 유명하긴 하지만 난 그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기에 그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진 못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남긴 마지막 책을 통해 그간 그가 써온 많은 책들이 궁금해지는 계기가 됐다. 왜 그의 책이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어렵고 낯선 분야이고 나로선 자주 마주할 수 없는 주제들로 가득하지만 그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많은 과학자들이나 고통 받는 사람들, 또는 우리가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는 풀한포기나 지렁이, 벌레에까지 관심과 집요한 관찰을 멈추지 않는 그의 열정 또한 느껴졌다. 분명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고통 역시 무겁거나 어둡지 않게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그런 몸상태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 가득한 모습, 그리고 끝까지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글쓰기를 놓지 않았던 것은 존경심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그런 것들을 어렵지 않고 유머러스하고도 쉽게 풀어 썼기에 대중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앞으로 새로운 그의 글을 읽을 순 없겠지만 난 이번 책을 계기로 과거 그가 써온 책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 나가는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의도했든 말았든, 알았든 몰랐든, 모든 지각과 장면들은 우리 자신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영화의 감독인 동시에 배우다. 모든 프레임과 순간들은 우리 자신의 모습인 동시에 우리가 만든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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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일까 사랑일까
유희완 지음 / 토실이하늘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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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사랑이 전부인 시절이 있었다. 사랑에 울고 웃고, 사랑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던 그땐 정말 사랑 없이는 절대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마 그런 사랑과 헤어진다는 건 나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이 느껴져 그렇게나 집착했었나 보다. 헤어진 후의 그리움을 버텨내는 것 또한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지금은 그런 그리움이란 내겐 희미해져 어색하기만 한 감정이다. 


하지만 지금 열렬하게 사랑하고 치열하게 이별하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겐 여전히 사랑과 그리움이란 감정은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특히나 헤어진 후의 처절한 그리움을 느끼고 있을 사람들에겐 순간순간이 힘들고 괴로울것이지만 그 무엇보다 상대방 역시 같은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나처럼 힘든 것인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쓸데없는 후회를 끝내고 용기내어 다시 시작하고 싶어도 그저 견뎌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움이란 감정은 단지 추억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감정이 아닐까.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시간이었지만
어느새 과거형으로 변해버린 지금의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사랑했던 사이로 변해 있었다. 
행복해가 아닌 행복했었다. 
사랑해가 아닌 사랑했었다. 



 

 

이 책은 그런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남자와 여자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저자 역시 16년간 연애를 하며 여느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굴곡을 겪었기에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느꼈던 그리움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랜 시간동안의 연애에 있었던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이 이 책에 그대로 잘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흔하디 흔한게 사랑이야기고 사랑이 있다면 이별 또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사랑했던 그 순간의 빛나는 기억보다 헤어진 후의 절절한 시간들이 훨씬 더 우리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것은 사랑할 땐 깨닫지 못했던 진짜 사랑을 헤어진 후에 더 명확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진짜 사랑을 확인하고 깨닫는 순간의 감정들이 오롯이 기록되어 있는 이 책의 글들을 읽다보면 아마 같은 상황의 수많은 사람들 역시 과거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진짜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헤어진 후 슬픈 발라드를 들으며 감정이입하듯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그리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에, 사랑과 그리움이란 서로 다른듯 같은 두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이야기>
네가 가끔
나에게 보고 싶을 거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
보고 있었으면서도 왜 보고 싶다고 했던 거야?
난 지금까지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
<여자 이야기>
이상하게도 자꾸만 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언제부턴가 너와 헤어지는 게
너무나도 아쉽게만 느껴졌던 내 마음이
어느새 나에겐 보고 싶다는 의미가 된 것 같더라고.
그래서 너를 보고 있으면서도
보고 싶을 거라는 말을 했었나 봐.


 

사실 난 헤어지면 쿨하게 끝을 내는 성격이었다. 물론 슬프지 않고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사랑했던 동안 내 모든것을 쏟아 부어 사랑했기에 헤어질 때 후회없이 헤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질척거리게 연락을 해오고 다시 만나자는 희망사항을 내비춰도 단칼에 잘라낼 수 있는 단호함마저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회을 하고 미련을 가지기 마련이다. 사소하게 상처줬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생각나며 점점 더 자신을 힘들게 만들곤 하니 말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겪었던 많은 상황들이 언제나 행복하기만 할 순 없기에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해 줘야 하지만 대부분 그러지 못해 이별이라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사랑하던 시절 헤아리지 못했던 상대방의 마음이 헤어진 후에도 끊임없이 궁금하고 그래서 또 용기내서 말할 수 없게 되기에 사랑과 그리움은 혼자만의 감정이 아닌 두 사람이 함께 공유하는 감정이라는 말이 깊게 와닿았던 것 같다. 사랑하는 중에도, 헤어진 후에도 이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그리움인지 미련인지 혼란스럽기만 한 사람들에게 똑같은 상황일지라도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다른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은 아마 본인들 스스로 그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소중함과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헤어짐과 그리움으로 너무나 힘든 사람들은 미련이 있다면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는 용기와 또는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마음의 정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이대로 그냥 남이 되어 버리기에는
서로가 그립고 또 많이 그리워했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우리는 서로 아파하며 그리워하기보다
아직 사랑해야 할 시간이 더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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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철학 - 깊은 공부, 진짜 공부를 위한 첫걸음
지바 마사야 지음, 박제이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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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창시절 공부는 참으로 지긋지긋하게 느껴지곤 했다. 재미있지도 흥미롭지도, 살면서 전혀 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 지식을 머릿속에 우겨넣는건 괴롭고 힘든 일이다. 아마 어린시절 그런 공부에 지쳐 어른이 되고 나면 공부라는 것을 회피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살면서 어떤 분야던 새로운 지식을 계속 알아가고 공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공부라는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고 지레 겁부터 먹으며 지금와서 무슨 공부를 하겠느냐며 자꾸만 외면하게 되는 것은 나를 위한 공부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공부를 나 자신을 위해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가기 위해, 취직을 하기 위해 필요에 의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라도 더 외우고 기억하기 위한 공부에 익숙한 우리에게 공부에도 철학이 있고 진짜 공부가 있다는 것은 어색하기만 하다. 1등이 되기 위한 공부, 합격 하기 위한 공부가 아닌 나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 주고 나를 좀더 유쾌하게 변신시켜 줄 이때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공부에 대한 책을 만난다는 건 어찌보면 행운일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집적대기만 하고 의욕만 앞서 제대로 시작조차 해보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여기에 멈춰 서서 생각하기가 어렵다. 넘치는 정보 자극 속에서 허우적대느라 한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찬찬히 생각하기가 힘들다. 이 책에서는 이런 정보 과잉 상황을 공부의 유토피아로서 적극 활용하여 자기 나름대로 깊게 사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찰할 것이다. 


 

 

 

 

저자인 지바 마사야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로 21세기 일본 철학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질 드뢰즈, 자크 데리다, 카트린 말라부, 캉탱 메이야수 등 현대 프랑스 철학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공부라는 실용적 주제를 들뢰즈와 라캉, 비트겐슈타인의 주요 철학 개념을 통해 메타적으로 탐색한 <공부의 철학>으로 일본 출판계,대학생들에게 큰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사실 공부 잘 하는 법이나 자신의 노하우를 담은 책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런 책들은 점수를 잘 받기 위한, 또는 어딘가에 합격하기 위한 공부의 방법을 담은 책들이 많다. 이제 그런 시험과는 거리가 멀어진 나에게 그런 책들은 흥미를 가지지도, 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공부란 무엇이고 왜 필요하며 남들과 차별되는 독학자을 위한 공부론을 이야기하기에 나처럼 무언가 혼자 공부하길 좋아하고 또 공부에 대한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지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공부란 기존의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공부란 다른 사고방식을 쓰는 환경으로 이사하는 것, 다시 말해 새로운 환경의 동조로 들어가는 일이다. 이때 익숙지 않은 언어가 주는 위화감에 주의해야 한다. 레고블록의 조각을 맞추듯 언어를 자유롭게 조합하는 언어유희야말로 삶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상상하는 일이고 이러한 ‘완구적 언어 사용’이야말로 모든 공부의 기본이다. 한편 환경의 동조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동조에 서툰 말을 하는 것이다. 동조에 서툰 말은 자유로워지기 위한 사고 기술과 대응한다. 크게 나누어 사고에는 츳코미(아이러니)와 보케(유머)가 있다. 근거를 의심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이러니다. 근거를 의심하지는 않고 시각을 다양화하는 것은 유머다. 공부의 근본은 아이러니의 자세이며, 환경의 코드를 메타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러니를 과도하게 추구하지 말고 유머로 되돌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언어란 애초에 환경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공부란 어떤 전문 분야로 들어가는 것, 즉 그 동조로 이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분야의 공부는 깊이 파고드는 방향과 한눈팔기 방향으로 한도 끝도 없어진다. 따라서 유한화하는 방법을 생각해야만 한다. 공부란 어떤 전문 분야에 참여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우선 입문서를 여러 권 비교하여 전문 분야의 큰 틀을 파악한다. 혹은 교사에게 최소한의 요점을 배운다. 그런 다음, 교과서나 기본서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한다. 독서할 때는 골라 읽기도 독서이며, 전체를 다 읽는다 해도 ‘완벽한 통독’은 불가능하다는 의식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의 본체는 신뢰할 수 있는 문헌을 읽는 것이고 신뢰성의 조간은 지적인 상호 신뢰의 공간과 연결되어 있는지 여부다. 또한 독서의 기본 방법은 기존의 자기 체감에 이끌려 읽지 않는 것이다. 공부에서는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 증거로서 다루는 자세가 필요하고, 공부를 계속한다는 말은 곧 일상생활 속에서 공부의 타임라인을 유지하는 것이기에 노트 어플을 사용하여 공부에서 멀어져 있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읽기 못지않게 쓰기의 기술도 중요하며 글쓰기를 통한 생각하는 습관에 의해 그 기술은 향상되기에 자유연상하듯 쭉쭉 써나가는 자유롭게 쓰기가 좋다.  



키워드는 ‘유한화’다. 나는 제안한다. 한정된 것, 유한한 범위에서 가만히 멈춰 서서 생각해보자고. 무한히, 정보의 바다에서 쉴 새 없이 밀어닥치는 파도에, 동조에, 그저 휩쓸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나는 이것을 공부했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공부를 유한화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읽기 녹록한 책은 아니다. 우리에게 독일의 철학자들은 익숙하지만 프랑스 철학은 생소하기만 하다. 그렇기에 이해하기엔 버거운 부분이 많다. 게다가 이때까지 우리가 추구하고 해왔던 공부에 대한 상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는 치열하게 공부해온 우리에게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준다. 매번 수학의 정석 책의 집합 부분만을 공부하고 끝내고마는, 언제나 시작은 열정 넘치지만 그새 지쳐버리고 포기해버리는 나에게 완벽하게 끝내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며 중간에 중단되고 멈추더라고 다시 재개할 수 있는 반복 경험을 쌓는 것이 공부라는 것이다. 지금껏 우리가 해온 방식에 인식의 변화와 방법을 조금만 바꿔줘도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주로 읽으며 지식을 머릿속에 넣기에 급급한 공부가 아닌 순서대로 찬찬히 지식에 접근하고 그것을 읽는것뿐만 아니라 쓰기의 영역으로 확장하며 진짜 자신을 위한 향락적인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매번 시작했다 포기하고 자책하던 나에게 새로운 차원의 공부법을 깨닫게 해주었다. 비록 저자가 철학적으로 분석한 공부의 정의를 100% 이해하진 못했고 몇번을 읽어도 사실 완벽하게 이해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몇가지 키워드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이때까지 내가 공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깨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린 항상 작심삼일식으로 공부하며 죄책감을 가지곤 한다. 끝까지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짓밟아 버린다. 하지만 질리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기 위해선 그 완벽주의를 버려야 한다. 독서 또한 마찬가지다. 많이 읽고 끝까지 읽어야만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는건 아님에도 다독과 통독에 집착하다 보면 진짜 책을 읽는 의미를 잃어버리기 쉽다. 이것저것 읽고 공부하다 보면 어느순간 여러 분야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며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공부의 묘미라는 저자의 말은 중간에 잠시 멈추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고 그것이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 해주기에 앞으로는 공부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줄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절대 ‘최후의 공부’를 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절대적인 근거’를 추구하지 말라는 소리다. 이것을 ‘궁극의 자아를 찾기 위한 공부는 그만두라’는 말로 바꿔도 좋다. 자신을 진정한 모습으로 만들어줄 최고의 공부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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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유물에 있다 - 고고학자, 시공을 넘어 인연을 발굴하는 사람들 아우름 27
강인욱 지음 / 샘터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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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인디아나 존스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보물을 찾아 엄청난 모험을 하는 멋진 탐험가 같은 모습. 오래된 무덤속에 가득한 금은보화와 그것을 노리는 자들을 향한 저주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래서 고고학자는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며 여행하는 매력적인 직업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나역시 생소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분야이기도 하기에 고고학자들이 정확히 무엇을 위해, 어떤식으로 일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부드러운 붓으로 모래 한알한알을 털어내며 섬세하고도 조심스러운 작업을 하는 고고학자들이 멋있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작은 토기조각 하나, 금조각 하나로도 수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것도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분명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지금 현재와 미래를 중요시 여기지만 과거를 돌아보고 공부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현재 또한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와 역사는 그저 편하게 글로, 그림으로 남겨져 모든 것이 기록되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끊임없이 과거의 행적을 좇아 분석하는 고고학자들은 꼭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저는 고고학이란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유물을 통해 밝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유물과 유적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고 썼던 사람들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저자는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북방 지역 고고학을 전공하여 매년 러시아,몽골,중국등을 다니며 조사하고 세계 여러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하는 고고학자이다. 저자에겐 너무나 재밌고 흥미로운 고고학이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고고학은 멀기만 한 존재다. 특히나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이 많기에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그로인해 고고학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책을 집필하고자 했다. 사실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유물들을 배경지식없이 접하게 된다면 우린 그것들이 소중한 유물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흙으로 빚어진 부서진 토기조각이나 뼛조각으로 알아낼 수 있는것이 무엇일지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유물들은 무덤에 있기 마련이고 미라나 오래된 유골을 보면 으스스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사소한 유물 하나가 우리를 과거와 이어 주는 거대한 인연의 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흙 한 줌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알타이 구석기 시대의 동굴 유적에서 발견 된 어린아이의 자그마한 이빨 한개에서 호모 알타이엔시스라는 새로운 인류를 발견하기도 하고 티베트에서 발견된 불상 하나가 나치들의 순수 혈통이라는 선전도구에 쓰이며 그 의미가 퇴색되기도 한다. 칼자루 끝의 작은 청동장식에서 최초의 스키 부대를 발견하기도 하고 동물의 어깨뼈를 그슬러 뼈가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길흉을 점치며 그위에 글자를 써놓은 복골을 통해 샤먼의 풍습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우리에겐 사소해 보이는 유물엔 우리가 생각지 못한 수많은 인생들이 담겨 있고 파편만 남은 유물을 매개로 과거와 인연을 잇는 학문이 바로 고고학이다. 그렇기에 고고학은 역사에 대한 탐구와 끈기가 필요하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유물이란 화려한 금관이나 웅장한 기념물이지만 고고학자들에겐 외관보다 그속에 숨겨진  것들을 관찰하며 얻게 되는 치밀하고도 사실적인 과거 사람들의 삶이 더 중요하다. 그 유물들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인연의 끈이 되고 그로인해 앞날을 모색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고고학은 형식이라는 틀을 가지고 사소한 유물의 변화를 통해 수천 년을 두고 이어지는 인간 세상의 흐름을 찾아 나선다. 찬란한 황금에 혹하지 않고 사소한 토기의 조그마한 변화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고고학은 소박하지만 인간을 생각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이 있듯이 과거가 없었다면 현재도 없고 미래 또한 존재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인류의 과거를 찾고 또 그로인해 현재와 미래에 대한 답을 제시하게 되는 고고학이란 학문이 굉장히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보던 스펙터클한 모험은 비록 없을지라도 그보다 더 큰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고학이 그렇게 쉽기만 한 학문은 아니다. 척박한 발굴 현장과 끝없이 이어지는 반복되는 작업과 단시간에 끝나지 않고 긴 시간동안 이루어지는 많은 연구들은 강인한 체력 못지않게 끈기와 집념 또한 필요한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무한한 애정이 없다면 고고학을 전공하고 평생의 직업으로 가지기엔 너무나 힘든 일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기술이 발전하고 많은 직업들이 로봇으로 대체되는 시기가 온다고 하지만 고고학만큼은 로봇으로는 절대 대체될 수 없는 분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현대 과학이 진화한다고 해도 흙 속에서 자기 손으로 유물 한 조각을 찾아내는 기쁨, 그리고 그 순간 고고학자가 느끼는 과거와의 소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고고학은 계속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고고학이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학문이었지만 사실 고고학만큼 우리 인간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되는 학문도 없는 것 같다. 내가 쓰고 있는 사소한 물건 하나가 몇천년뒤에 발견되어 소중한 유물로 후손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뜻깊고 기쁜 일일까. 하지만 그런 유물을 위조하고 침략을 정당화 하기 위한 도구로 쓰는 몇몇 사례들을 보면 인간이란 참으로 이기적이고 욕심과 탐욕에 눈이 먼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물이 가진 본래의 의미와 가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소중히 발굴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진실은 이렇듯 화려한 황금이 아니라 사소해 보이는 토기 한 조각 한 조각에 숨어 있다. 진실은 유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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