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철학 - 깊은 공부, 진짜 공부를 위한 첫걸음
지바 마사야 지음, 박제이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 공부는 참으로 지긋지긋하게 느껴지곤 했다. 재미있지도 흥미롭지도, 살면서 전혀 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 지식을 머릿속에 우겨넣는건 괴롭고 힘든 일이다. 아마 어린시절 그런 공부에 지쳐 어른이 되고 나면 공부라는 것을 회피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살면서 어떤 분야던 새로운 지식을 계속 알아가고 공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공부라는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고 지레 겁부터 먹으며 지금와서 무슨 공부를 하겠느냐며 자꾸만 외면하게 되는 것은 나를 위한 공부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공부를 나 자신을 위해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가기 위해, 취직을 하기 위해 필요에 의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라도 더 외우고 기억하기 위한 공부에 익숙한 우리에게 공부에도 철학이 있고 진짜 공부가 있다는 것은 어색하기만 하다. 1등이 되기 위한 공부, 합격 하기 위한 공부가 아닌 나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 주고 나를 좀더 유쾌하게 변신시켜 줄 이때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공부에 대한 책을 만난다는 건 어찌보면 행운일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집적대기만 하고 의욕만 앞서 제대로 시작조차 해보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여기에 멈춰 서서 생각하기가 어렵다. 넘치는 정보 자극 속에서 허우적대느라 한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찬찬히 생각하기가 힘들다. 이 책에서는 이런 정보 과잉 상황을 공부의 유토피아로서 적극 활용하여 자기 나름대로 깊게 사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찰할 것이다. 


 

 

 

 

저자인 지바 마사야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로 21세기 일본 철학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질 드뢰즈, 자크 데리다, 카트린 말라부, 캉탱 메이야수 등 현대 프랑스 철학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공부라는 실용적 주제를 들뢰즈와 라캉, 비트겐슈타인의 주요 철학 개념을 통해 메타적으로 탐색한 <공부의 철학>으로 일본 출판계,대학생들에게 큰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사실 공부 잘 하는 법이나 자신의 노하우를 담은 책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런 책들은 점수를 잘 받기 위한, 또는 어딘가에 합격하기 위한 공부의 방법을 담은 책들이 많다. 이제 그런 시험과는 거리가 멀어진 나에게 그런 책들은 흥미를 가지지도, 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공부란 무엇이고 왜 필요하며 남들과 차별되는 독학자을 위한 공부론을 이야기하기에 나처럼 무언가 혼자 공부하길 좋아하고 또 공부에 대한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지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공부란 기존의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공부란 다른 사고방식을 쓰는 환경으로 이사하는 것, 다시 말해 새로운 환경의 동조로 들어가는 일이다. 이때 익숙지 않은 언어가 주는 위화감에 주의해야 한다. 레고블록의 조각을 맞추듯 언어를 자유롭게 조합하는 언어유희야말로 삶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상상하는 일이고 이러한 ‘완구적 언어 사용’이야말로 모든 공부의 기본이다. 한편 환경의 동조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동조에 서툰 말을 하는 것이다. 동조에 서툰 말은 자유로워지기 위한 사고 기술과 대응한다. 크게 나누어 사고에는 츳코미(아이러니)와 보케(유머)가 있다. 근거를 의심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이러니다. 근거를 의심하지는 않고 시각을 다양화하는 것은 유머다. 공부의 근본은 아이러니의 자세이며, 환경의 코드를 메타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러니를 과도하게 추구하지 말고 유머로 되돌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언어란 애초에 환경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공부란 어떤 전문 분야로 들어가는 것, 즉 그 동조로 이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분야의 공부는 깊이 파고드는 방향과 한눈팔기 방향으로 한도 끝도 없어진다. 따라서 유한화하는 방법을 생각해야만 한다. 공부란 어떤 전문 분야에 참여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우선 입문서를 여러 권 비교하여 전문 분야의 큰 틀을 파악한다. 혹은 교사에게 최소한의 요점을 배운다. 그런 다음, 교과서나 기본서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한다. 독서할 때는 골라 읽기도 독서이며, 전체를 다 읽는다 해도 ‘완벽한 통독’은 불가능하다는 의식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의 본체는 신뢰할 수 있는 문헌을 읽는 것이고 신뢰성의 조간은 지적인 상호 신뢰의 공간과 연결되어 있는지 여부다. 또한 독서의 기본 방법은 기존의 자기 체감에 이끌려 읽지 않는 것이다. 공부에서는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 증거로서 다루는 자세가 필요하고, 공부를 계속한다는 말은 곧 일상생활 속에서 공부의 타임라인을 유지하는 것이기에 노트 어플을 사용하여 공부에서 멀어져 있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읽기 못지않게 쓰기의 기술도 중요하며 글쓰기를 통한 생각하는 습관에 의해 그 기술은 향상되기에 자유연상하듯 쭉쭉 써나가는 자유롭게 쓰기가 좋다.  



키워드는 ‘유한화’다. 나는 제안한다. 한정된 것, 유한한 범위에서 가만히 멈춰 서서 생각해보자고. 무한히, 정보의 바다에서 쉴 새 없이 밀어닥치는 파도에, 동조에, 그저 휩쓸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나는 이것을 공부했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공부를 유한화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읽기 녹록한 책은 아니다. 우리에게 독일의 철학자들은 익숙하지만 프랑스 철학은 생소하기만 하다. 그렇기에 이해하기엔 버거운 부분이 많다. 게다가 이때까지 우리가 추구하고 해왔던 공부에 대한 상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는 치열하게 공부해온 우리에게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준다. 매번 수학의 정석 책의 집합 부분만을 공부하고 끝내고마는, 언제나 시작은 열정 넘치지만 그새 지쳐버리고 포기해버리는 나에게 완벽하게 끝내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며 중간에 중단되고 멈추더라고 다시 재개할 수 있는 반복 경험을 쌓는 것이 공부라는 것이다. 지금껏 우리가 해온 방식에 인식의 변화와 방법을 조금만 바꿔줘도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주로 읽으며 지식을 머릿속에 넣기에 급급한 공부가 아닌 순서대로 찬찬히 지식에 접근하고 그것을 읽는것뿐만 아니라 쓰기의 영역으로 확장하며 진짜 자신을 위한 향락적인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매번 시작했다 포기하고 자책하던 나에게 새로운 차원의 공부법을 깨닫게 해주었다. 비록 저자가 철학적으로 분석한 공부의 정의를 100% 이해하진 못했고 몇번을 읽어도 사실 완벽하게 이해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몇가지 키워드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이때까지 내가 공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깨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린 항상 작심삼일식으로 공부하며 죄책감을 가지곤 한다. 끝까지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짓밟아 버린다. 하지만 질리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기 위해선 그 완벽주의를 버려야 한다. 독서 또한 마찬가지다. 많이 읽고 끝까지 읽어야만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는건 아님에도 다독과 통독에 집착하다 보면 진짜 책을 읽는 의미를 잃어버리기 쉽다. 이것저것 읽고 공부하다 보면 어느순간 여러 분야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며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공부의 묘미라는 저자의 말은 중간에 잠시 멈추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고 그것이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 해주기에 앞으로는 공부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줄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절대 ‘최후의 공부’를 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절대적인 근거’를 추구하지 말라는 소리다. 이것을 ‘궁극의 자아를 찾기 위한 공부는 그만두라’는 말로 바꿔도 좋다. 자신을 진정한 모습으로 만들어줄 최고의 공부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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