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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조 퀴넌 지음,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존재 자체로 완벽한 것들이 많지만 그중 하나가 책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책은 사람들에게 본능과도 같은 존재라는 생각도 든다. 지식을 얻기 위해,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등 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나에게 독서란 그저 단순히 즐겁고 재밌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는 단순한 이유가 가장 크다. 그저 책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집 한켠의 빽빽한 책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에 자꾸만 책 욕심은 더더 커지고 읽을 시간이 항상 부족함에도 자꾸만 책을 들일 수 밖에 없다.
다행히도 남편은 책을 그리 많이 읽진 않지만 책 자체를 싫어하진 않고 한달에 내가 모아둔 책 중에 한권씩은 꼭 읽는편이다. 하지만 자꾸만 늘어나는 책과 그로인한 공간부족을 토로하는 내게 적당히 늘리라는 핀잔을 주곤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독서라는 취미는 그렇게 부정적으로 인식되지 않기에 그래도 당당히 읽고 당당히 모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취미라고 말하기도 좋고..(흠흠) 아직은 내가, 그리고 가족들이 감당할 수 있을만한 수준이기에 큰 문제는 없지만 지금같은 속도라면 조만간 다시 책장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 걱정없이 마음껏 책을 읽고 소유할 수 있는 자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이 아닐까.
책 사랑꾼들은 대개 정보를 얻으려고, 시간을 보내려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혹은 C.S. 루이스의 말마따나 혼자가 아님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한결 흥미진진하고 살맛 나는 세상으로 도피하려고 책을 읽는다. 자신의 밥벌이, 배우자, 자국 정부, 생활이 진절머리 나지 않는 세상으로.
아마 나와 같은 책 사랑꾼이라면 이 책의 이야기에 격한 공감과 이 세상에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다는 면에서는 위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필라델피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여러가지 잡일을 병행하며 대학을 다니고, 프랑스 유학을 계기로 언론 매체에 자유 기고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저자는 유수의 매체들의 서평을 담당하며 방대한 독서 편력을 바탕으로 출판 칼럼니스트로서 명성을 얻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돈까지 벌고 명예까지 얻는다니, 참으로 부러운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직업적으로도 수많은 책을 접할 수 밖에 없고 또한 일상생활에서도 지독한 애서가의 면모를 보이는 저자이기에 그가 펼치는 책에 대한 예찬은 책을 읽느라 바친 세월만큼 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가득하다. 하지만 괴팍해 보이기도 하고 또 고집스러움도 내비치는 성격탓에 절대 상냥하고 부드럽게만 책을 사랑하진 않는다. 한번에 서른권이 넘는 책을 동시에 읽는 습관이나 요즘 한창 유행인 북클럽에 대한 비판, 공공도서관의 미대출 책들이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책들을 모두 빌려보았던 일, 대중교통에서 책 읽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자가용을 타지 않는 것, 작가들은 팬들의 조언보다 돈에만 신경 쓴다는 파격적인 발언들은 저자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책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삶이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책을 읽느라 집을 소홀히 하고 해야할 다른 일들을 끊임없이 미루며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책이라는 사물 자체가 신성하다고 믿으며 책은 우리가 만질 수 있고 체취를 맡을 수 있어야 하기에 전자책 사용을 거부한다는 그의 확고한 이야기는 나의 생각과 너무나도 일치하는지라 좀 걸걸하고 극단적이긴해도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환호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맞게 세상을 상대하는 방식을 고안해냈지만 이 방식이 모두에게 통하진 않는다. 내 손, 내 집, 내 주머니, 내 삶 안의 책은 나의 행복에 늘 필수적일 것이다. 나는 절대 전자책 단말기를 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건 필요 없다. 누크로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기억나는 여자 친구의 손글씨를 불현듯 발견할 수 있을까. 킨들에서 빛바랜 에펠탑 입장권이 툭 떨어질 일이 있을까. 나는 기술 문명의 반대자요, 그래서 자랑스럽다.
누군가는 읽지도 못할 책들을 왜 사냐며, 왜 다시 읽지도 않을 책들을 계속 쌓아두냐며 얘기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마 책과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을 것이다. 책을 소유하는 순간부터, 아직 첫 페이지도 펼치지 않은 책이라 해도, 어떤 면에서 그 책이 내 삶을 바꾸었다는 느낌이 든다는 저자의 말을 듣는다면 그 생각이 조금은 바뀔 수 있을까. 또한 내가 읽었던 책을 보면 그 책을 읽었던 그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며 그 시절 나의 생각과 마음들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하기에 책은 나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좋은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내가 행복하게 읽었던 책을 없앤다는 건 나의 과거의 추억이 없어져 버린다는 생각이 든다는걸 이해할 수 있을까. 책에 대한 그런 많은 질문들과 비난을 받아왔던 사람이라면 아마 이 책으로인해 그런 고통의 시간들을 보상받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분명 개인마다 선호하는 작가와 선호하는 책의 종류가 존재하기에 만약 내가 좋아하는 책을 비난하는 부분을 읽게 된다면 기분이 상할지도 모른다. 가감없이 거부하고 단호하게 배제하는 저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취향이 어찌됐든 책을 통해 휴식을 얻고 추억을 되살릴 수 있으며 뻔하고 지루한 인생에서 잠시 벗어나 은밀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세상에 좋은 책이 너무도 많아서 그 책들을 전부 맛보고 싶다는 저자의 책 사랑만큼은 분명 함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 책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삶을 꿈꾸는 사람도, 독서란 너무나 멀고도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도 이 책을 통해 책이 주는 벅찬 행복을 절실히 느껴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아직 [빌레트]를 다 읽지 못했으니 죽음의 천사에게 나중에 다시 오라 전하라. 거기에는 우리 모두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는 희망이 있다. 나 믿노니, 이것이 책이 인류에게 주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모든 생은, 최고의 생조차도, 끝은 슬프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는다. 우리가 듣고 싶은 목소리는 영원히 멈춰버린다. 책은 끝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