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불평등 기원론 고전의 세계 리커버
장 자크 루소 지음, 주경복 옮김 / 책세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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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지만 이 세상은 절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주위를 둘러봐도 나보다 돈도 많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리고 산다. 하지만 나의 노력이 부족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기를 쓰고 살고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날 추월해가는 사람들을 볼때면 이 세상의 불공평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어느새 빈부의 격차나 성별의 격차는 우리 사회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인간이 처음 생겨났던 태초부터 그런 불평등이 쭉 이어져 왔는지, 아니라면 어째서 우린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갈 수 없게 된건지 불만 섞인 물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영혼은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수많은 원인에 의해, 숱한 지식과 오류의 획득에 의해, 그리고 신체의 조직에 생긴 여러 가지 변화와 정념에 가해진 계속적인 충격으로 인해 애초의 모습이 변질되어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거기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일정하고 불변하는 원리에 의해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며 또한 조물주가 인간에게 새겨놓은 저 거룩하고 장엄한 단순성도 아니다. 거기에서는 다만, 이치를 좇고 있다고 믿는 정념과 망상에 빠져 있는 지성의 보기 흉한 대조만이 발견될 뿐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정치사상가이자 철학자, 소설가, 교육이론가, 음악가, 극작가인 장 자크 루소는 유럽을 떠돌며 방랑의 생활을 하였고 정식 교육 또한 거의 받지 못했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에 정착해 <백과전서> 집필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저술 활동을 시작한다. 이 책은 루소가 <학문예술론>으로 명성을 얻은 후, 그 옛날 사람들이 모두 평등하게 살던 때의 삶은 어땠는지, 그 평화로운 상태는 왜, 어떻게 깨졌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본성은 악해서 자연 상태로 두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나타난다는 홉스의 성악설을 부정하는 루소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악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자신이 먹을 것은 쉽게 구할 수 있고 자유롭게 먹고 즐기며 행복한 삶을 살았기에 누구에게도 구속당하지 않았고 타인을 구속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자연 재해나 인구의 증가로 인해 먹이를 두고 다투게 되고 인간 관계가 밀접해지고 공동체가 형성되며 선과 악이 나타나고 불평등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상대방보다 더 유리한 조건과 더 많은 물건과 땅을 가지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고 힘이 있는 자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며 사유재산 제도를 통해 불평등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루소의 생각이다. 사실 지금 우리에겐 불평등한 사회나 제도가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루소의 사상은 너무나 파격적인 것이어서 많은 논란이 되었고 다른 사상가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악해진 사람들은 혼란속에서 점점 불행해지고, 그사이 힘 있는 자들은 교묘하게 자신들이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가며 불평등이 제도적으로 자리잡게 되고 그것이 국가라는 견고한 제도로 고착되며 더이상 거역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루소는 그러한 모순을 강하게 비판하고 평등하고 행복했던 자연 상태의 인간의 본성을 다시 회복하자고 주장했다. 그로인해 그 당시 다른 사상가들의 반대와 공격을 받았지만 혁명적인 그의 주장은 프랑스 혁명의 밑바탕이 되기도 했다. 



인간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 순간부터, 그리고 혼자서 두 사람 몫의 양식을 차지하는 것이 유리함을 알아차리게 되자마자, 평등은 사라지고 소유가 도입되고 노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광대한 숲은 인간의 땀으로 적셔야 할 들판으로 변했으며, 머지않아 그 들판에서는 수확과 더불어 예속과 비참이 싹트고 증가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학교에서 윤리시간에 배웠던 성악설, 성선설을 처음 들었을 땐 사춘기에 한창 반항심과 세상을 삐뚤게 보기 시작하던 시기여서인지 성악설의 주장이 훨씬 더 근거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많은 것을 겪으며 분명 우리 사회는 수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도처에 불평등이 만연하지만 그럼에도 이 사회가 유지되고 굴러가는건 그런 불평등함을 깨닫고 바꿔가려는 인식과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고착된 정치 권력의 모순과 말도 안돼는 빈부격차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지만 자연 상태의 평등하고 행복했던 과거의 사람들의 모습을 희망하고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루소의 사상은 그가 살던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이었고 프랑스 혁명을 일으킬 씨앗이 되었듯,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불평등이 최고조에 이른 지금 비록 아직도 불평등한 사회는 개선되지 않았고 사라지지도 않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세상을 살다보니 악한 사람보다는 선한 사람이 그래도 더 많았고 그로인해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을 훨씬 더 믿게 되었듯이, 우리 인간들이 본래 행복했고 평등했던 태초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고 그것을 통해 이 시대의 불평등한 구조와 모순을 되새기고 바꿔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인간 능력의 발달과 정신의 진보에 따라 성장하고 강화되며 소유권과 법률의 제정에 따라 안정되고 합법화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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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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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보이지 않는 차별과 힘겨움을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짊어지고 살아간다는 것. 어린시절 명절에 왜 엄마와 나는 쉬지 못하고 음식이며 설거지며 일해야 하는지, 그럼에도 모든 음식을 남자들이 다 먹길 기다렸다 먹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저 당연시되는 일들을 묵묵히 견뎌내는 엄마와 친척들 사이에서 나역시 조용히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되며 겪어야 하는 여성으로서의 공공연한 차별과 한계에 부딪히며 조금씩 서서히,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직접 경험하며 감내하고 버텨내야 했다. 당연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아무 의심없이 당연시 여기는 순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깨지 못한다면 영원히 그 틀속에 갖혀 살 수 밖에 없다.



안 해야 하는 말을 하는 사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오늘 삼킨 말, 다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말들을 생각한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종전의 히트를 기록한 <82년생 김지영> 저자의 신간인 이 책은 그간 저자의 작품들과 제목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여성들의 이야기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60여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특별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사실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감춰지지 않고 드러내야 할 여성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한편 한편이 짧은 단편 소설이지만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또 수많은 여성들이 지금도 겪고 있을 진짜 현실을 담고 있기에, 그 씁쓸함이 더욱 짙게 드리워진다. 여성이 사회에서 가지는 많은 역할이 있고 각자 다른 위치에 각자의 상황이 있음에도 여성이라는 기본적인 조건으로 인해 차별과 피해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딸이기에 가족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고,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해도 그냥 넘겨야 하고, 누구의 며느리이자 누구의 엄마이기에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고, 막상 용기내어 꺼낸 이야기들이 묵살 당하고, 별일 아닌듯 넘겨지게 되면 그 상처는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최근 일어났던 미투운동처럼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확산되고 여성들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속의 그녀들처럼 아직도 가려지고 버려진 사회의 이면에서 고통스러운 여성들은 너무나 많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싶었고, 그로인해 더 많은 그녀들의 상처와 아픔이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저자를 통해 다듬어진 많은 이야기들이 서로 다른 곳, 다른 나이, 다른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별개의 이야기들 같지만 사실은 여성이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큰 틀 안에서 생겨난 일이기에 그녀들이 삼켜야만 했던 고통이 같은 여성인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로, 학생으로, 직원으로, 손님으로 역할을 다하려고만 했을 뿐 자신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도 요구해본 적도 없다. 


 

 

 

 

 

충분히 알고 있다. 나 역시 겪었던 일들도 있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들어봄직한 흔한 일이기도 하다. 여성들의 고통을 알고 있음에도, 그럼에도 내가 저자의 <82년생 김지영>을 애써 피하고 읽지 않았던건, 몸소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 부당함과 마주하고 싶지 않고 또 바뀌지 않는 현실을 넌더리가 날 정도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피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저자의 책을 통해 직면하게 된 그녀들의 이야기는 같은 여성으로서 역시나 화가 나고 울컥할 수 밖에 없는 가슴 아픈 일들이다. 하지만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으며 힘겨운 날들을 보내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의 끝은 그저 슬프거나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새 우리 주변의 많은 여성들은 일상화된 차별을 당연시 여기며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끝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또 이겨내기 위해 비록 작을지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단지 나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닌 내 가족, 내 친구, 내 동료들을 위해 용기를 내고 싸워나가고 또 쟁취해 나가는 그녀들의 모습은 더이상 이때까지 우리 사회가 정의해 둔 수동적이고 연약한 여성의 모습이 아니었다. 성희롱을 당했지만 끝까지 싸우고, 불안정한 고용 환경을 당연시 여기지 않고 여성의 일을 보조업무로 제한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은밀히 일어나는 폭력과 억압에 투쟁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같은 여성임에도 방관하고 무심했던 나를 비롯해 흔한 일이라고, 왜 굳이 당신만 문제 삼냐며 끊임없이 쇠뇌하고 인정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에게 더이상 누군가 대신 말해주길 기다리지 않는 당당한 여상의 모습을 세상을 향해 드러낸다. 비록 아직은 만족할 수 있을 만한 결과가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들이 회자되다 보면 더 많은 그녀들의 아픔과 고통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처한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하는 것이 중요함에도 나는 그저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또 나의 일이 아니기에 소홀히 생각했던 지난 시간들을 이 책을 읽으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슬프고 또 마음 아프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지만 분명 알아야 하고 함께 이겨내야 할 일들이다. 더이상 피하지 말고, 사소한 일이라며 그냥 넘기지 말고 누군가 대신 나서서 말해주길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나에게도, 또 내 딸들과 이 세상의 모든 소중한 그녀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빛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지키고 누려야 할 평등하고 공평한 시간을 보낼 권리가 있고, 나는 여전히 젊고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같은 과장에게 성희롱 당하다 퇴사했다는 직원은 소진을 보자마자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때 자신이 조용히 덮고 넘어가지 않았다면 소진도 같은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자책했다. 물론 소진은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용히 덮고 넘어간 두 번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피해자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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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이 있기에 꽃은 핀다 - 단 한 번뿐인 오늘을 살고 있는 당신에게
아오야마 슌도 지음, 정혜주 옮김 / 샘터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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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많은 것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고 살기는 힘들다. 물건 하나를 버리는 것에도 자꾸만 미련이 생기고 쓰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낭비하게 되며 채우기에 급급하다 보면 우리의 삶은 유한함에도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죽으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연히 맨 몸으로 가야하기에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상기시키기 위해 가끔씩 절을 찾으면 잠시나마 마음을 비우고 힘들고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을 되돌아 보게 된다. 난 불교 신자이지만 사실 그렇게 절실하지는 못하다. 하지만 절에 가면 느낄 수 있는 마음의 고요와 불교가 추구하는 깨달음을 좋아하기에 불교에 몸 담고 계시는 스님들이 정진하며 깨우친 삶의 진리를 전파하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확실히 요동치던 마음이 잔잔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매일을 함께 살아가면서도 서로를, 자신의 인생을, 가능한한 멀리 떨어져 보는 노력을 계속해나가야 합니다. 전체 모습이 보이면 자연스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입니다. 


 

다섯살에 불교에 입문해 여든살인 지금까지 비구니로 살고 있는 저자는 살면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고통을 깨달음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한다. 오랜 시간 불교계에 몸 담으며 이런저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고통들을 저자에게 풀어놓으며 해답을 바라는 이들이 많았다. 가장 중요한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그저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한 우리에게 저자는 서로를, 자신의 인생을 한발짝 물러나 멀리서 지켜보면 자연스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 고통을 피하고 싶고 되도록이면 살면서 고통을 아예 겪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고통이 나를 힘들게 만들고 나의 인생을 더 깎아내리는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인생에서 언제나 아름다운 꽃만을 쫓을 수는 없다.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존재하는 진흙과도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없었다면, 폭풍과도 같은 고난이 없었다면 그것을 이겨내며 쌓이는 인생의 지혜 또한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고통에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나를 구원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가슴속에 묵직하게 울린다. 오랜 공부와 수련의 깨달음을 짧고 단순하지만 깊이 있게 써낸 스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고된 하루하루로 요동치던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한 믿음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빠지지 않고 진정하는 거지요. 그 가르침과 그 종교에 빠지라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진실과 거짓을,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가린 끝에 틀림없이 그곳에 안착한다는 정갈함입니다. 냉엄한 지혜가 뒷받침된 믿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최근엔 크게 힘들었던 일은 없었다. 그저 평탄하게 지나가는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이 언제까지나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하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기쁜 일이 있을 때보단 힘든일이 있으면 찾게 되는 것이 종교다. 내가 힘들때만 무게를 덜어 줄 곳을 찾게되니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고 생각되지만 어쨋든 복잡한 마음을 잠시나마 차분하게 해주고 또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절에 가면 가질 수 있다. 내 앞에 놓인 커다란 불상의 온화한 부처님의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굳이 불경이나 스님의 말씀을 듣지 않더라도 스스로 문제의 답을 떠올리게 되곤 한다. 그렇기에 저자의 이 책 역시 구구절절 위로의 말이나 각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명쾌한 답을 담고 있진 않더라도, 한발 물러서서 넓게 바라보며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다른 종교를 믿는다 해도 저자는 단지 불교의 깨달음을 강요하기 보다는 그저 본인이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덤덤하게 이야기하기에 그 누가 읽어도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또 올바른 길을 스스로 찾아내고 걸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조건에 따라 빛이 바래는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닙니다. 어떠한 조건에 있든 빛이 바래지 않는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이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이고, 그리고 깨달음을 찾고 이해한 가르침이 바로 불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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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레폴레 아프리카
김수진 지음 / 샘터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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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빨리빨리가 미덕이다. 작은 것 하나부터 빨리 해치우고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조급증이 나고 기다림의 순간은 곤욕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빨리빨리를 외치던 하루의 끝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흘러가기만해서, 그 허무함은 배가 되어 나를 덮치곤 한다. 그런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관광명소를 한군데라도 더 둘러보고 인증사진을 남기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분명 빨리빨리는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어 준 받침이 되었었지만,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게 느리게 흘러갈 수 밖에 없는 사회라면, 충분히 주변을 돌아보며 여유를 가진채 살아갈 수 있을까. 광활한 대지의 자연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아프리카처럼 말이다. 



사실 한국에도 이만큼 멋진 석양이 있었을 텐데, 언젠가 그 모습에 감동해 이 시간을 좋아하게 됐을 텐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이 좋아하는 석양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기자인 저자는 늘 낯선 땅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살다가 특파원으로 선발돼 반년간 동,남아프리카 8개국을 누비며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이 책에 담았다. 기자로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문득문득 생각나던 ‘잘 살고 있는걸까?’라는 물음의 답을 저자는 아프리카를 통해 찾고자 했던 것일까, 그렇게 미지의 세계가 자신의 삶의 일부가 된다면 조금이라도 그 답에 가까워질 수 있을것이란 생각에 저자는 아프리카로 떠나게 된다. 사실 이제 비행기를 타면 대부분의 나라에 갈 수 있고 세상이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화 시대라고 해도, 아프리카라는 나라는 아직 우리에겐 멀고도 궁금한 나라이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큰 땅과 천혜의 자연환경, 아직 원시의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부족들,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프리카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런 아프리카의 곳곳을 누비며 직접 경험했던 많은 일화들이 담긴 이 책은 유쾌하고 즐거운 아프리카에서부터 가슴 아픈 역사의 이면을 가진 아프리카까지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어 그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일반인들이 단지 여행으로 가서는 경험할 수 없을 부분들도 기자라는 이점을 살려 당국과 많은 단체들의 도움으로 접하며 단지 여행 그 이상의 깊은 아프리카의 모습을 직접 체험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상상하고 생각했던 아프리카와 지금 현재의 진짜 아프리카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아프리카 여성들과 아이들의 열악한 삶과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에게 총을 겨눌 수 밖에 없었던 가슴아픈 역사, 수많은 나라에게 지배당하며 겪은 고초는 그저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평화워보이는 아프리카의 또다른 이면을 마주하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가 직접 마주한 경이로운 아프리카의 자연과 그와 더불어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살아가는 동물들과 소박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 또한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적어도 사자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절대로 사냥을 하지 않는다. 자신과 새끼의 생존을 위해서만 사냥을 할 뿐, 배를 채우고 나면 다른 동물을 해치지 않은 동물이지 않던가. 사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을 갖추고도,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갖고 싶어서 자꾸 욕심을 내고 남의 것을 빼앗기까지 하는 인간이라는 동물도 있는데 말이다.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이라면 문명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부시맨의 모습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사진 촬영 한번에도 돈을 요구하고, 외지인에겐 말도 안돼는 바가지를 씌우기도 하는 어느새 우리와 다를바 없어진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저자 역시 이런저런 나쁜 일이나 황당한 순간을 많이 경험하지만 그럼에도 생각해보면 자신을 진심으로 도와주고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들이 더 많았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동안 지냈던 아프리카는 ‘폴레폴레’ 걷다 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그로인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덕분에 저자 역시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그래서 더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자신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자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대부분은 빨리빨리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익숙하고 편한것만을 추구하곤 한다. 하지만 살면서 한번쯤은 낯설지만 새로운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었다. 비단 아프리카가 아니더라도, 먼 나라로 떠나는 것이 아니더라도 급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내 삶의 궤도를 제대로 맞출 수 있는 시간이 인생에선 꼭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왜 이곳까지 왔을까. 대륙 끝까지 와서도 그 답은 알 수 없었다. 아니 답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내가 30년 동안 만들어 둔 내 마음속 GPS가 “아는 길로만 가면 재미없잖아. 한번 가봐”라고 말해준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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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게 서른이 된다
편채원 지음 / 자화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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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과 서른. 보이지 않는 그 경계가 어린시절엔 엄청난 간극으로 느껴졌었다. 따지고보면 인위적으로 나뉘어진 경계일 뿐임에도, 서른이라는 나이는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또 쓸데없이 큰 기대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막상 그 시간이 흐른뒤 되돌아보면, 너무나도 싱겁게 지나가버린 나의 서른살은 허무함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 같다. 서른하고도 더 나이를 먹은 지금도, 내가 어린시절 생각했던 진짜 어른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아직 나약하고 철없이 느껴질때가 있는 그저 한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모든 것이 아귀가 맞지 않았다. 
차 안과 창밖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고
아무리 달려도
우리는 그 어디에도 도착할 수 없었다. 
너와 달리,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나의 사소한 기록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그 자취를 남기고 싶다는 저자는 서른이 되면 그럴듯한 어른이 되어 있을줄 알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한채 서른을 맞이하고 또 흘려보냈다. 연애를 하며 불필요한 감정소모로 괴로워하고, 또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앞날에 좌절하는,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청춘들이 겪고 있고 또 공감할 수 있을 이야기들로 채워진 이 책은, 그저 그런 위로보다 나도 그랬기에 당신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먼저 그 시간을 보내며 겪었던 일들을 가끔은 시니컬하면서도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과 생각을 녹여낸 글로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서른이지만 모두가 똑같은 서른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각자의 사연과 시간이 더해져 맞이하게 되는 서른이라는 시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후회나 상처가 있다 하더라도 지나고 나면 그 순간 순간이 소중했고 또 의미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깨닫는 순간, 한뼘 더 성장한 어른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에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남들의 속도에 맞추지 말고 내 발걸음대로 가며 스스로를 감당해내야 한다는 것을 부딪히고 넘어지며 온몸에 상처가 난 후에 깨달았기에, 저자는 그 누군가는 조금이라도 덜 다치고 조금이라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책에 담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단념과도 같았던 각오가 무색하게도 나의 스물하나와 스물다섯은 여전히 온 힘을 다해 서른 살의 나를 떠받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까, 이미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지난날의 잔상들은 그렇게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기고 나도 모르는 새 고단한 세월을 견뎌내고 있었다. 물기 가득한 초록빛의 싱그러움 대신 가뭄에 말라비틀어진 나무처럼,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위태로운 회갈색을 띠고서.


 

 

 

 

 

아직 삼십대로서의 시간이 적지 않게 남아있지만, 시간은 갈수록 점점 빨리, 점점 더 멀리 달아나기에 명확한 이유 없는 초조함을 매번 느끼곤 한다. 내가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있고, 이젠 내가 보살펴야 할 부모님이 있다는 건 온전히 나만을 생각할 수 있었던 10대,20대 시절의 생활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때 했던 고민과 너무나 힘들게 느껴졌던 일들이 서른이 훌쩍 지난 지금의 나에겐 그것마저도 행복에 겨운 투정처럼 아련하게 기억되기에 지금 내게 닥친 너무나도 현실적인 문제들이 더욱 크고 무겁게 느껴질때가 많다. 하지만 아마 서른을 눈앞에 둔 많은 청춘들은 저마다의 고민과 아픔으로 얼른 더 큰 어른이 되고 많은 것을 이루고 살고 있을 서른의 자신을 기대하고 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서른의 무게와 중압감에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영원히 20대에 머물러 있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경우라도 서른이라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거스를 수는 없다. 막상 서른이라는 나이가 되면 크게 달라지는 것도, 바뀌는 것도 없지만 서른이라는 시간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멋모르고 힘겹게 지나온 20대 시절을 되돌아 보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진짜 자신을 찾으며 한뼘 더 성장하고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전환점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서른이라는 나이까지 오는 동안 겪었던 성장통과 같은 시간들이 지나고 마흔이라는 또 다른 경계선에선 무르익어 더 단단해진 내 삶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그런데 때로는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얼른 털고 일어나라며 재촉하지 말고, 그저 내버려두는 적당한 무관심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괜찮지 않아도 된다고. 한 대 대차게 맞고 쓰러졌으면, 그냥 그대로 잠시 누워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도 된다고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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