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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레폴레 아프리카
김수진 지음 / 샘터사 / 2018년 4월
평점 :

우리에겐 빨리빨리가 미덕이다. 작은 것 하나부터 빨리 해치우고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조급증이 나고 기다림의 순간은 곤욕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빨리빨리를 외치던 하루의 끝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흘러가기만해서, 그 허무함은 배가 되어 나를 덮치곤 한다. 그런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관광명소를 한군데라도 더 둘러보고 인증사진을 남기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분명 빨리빨리는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어 준 받침이 되었었지만,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게 느리게 흘러갈 수 밖에 없는 사회라면, 충분히 주변을 돌아보며 여유를 가진채 살아갈 수 있을까. 광활한 대지의 자연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아프리카처럼 말이다.
사실 한국에도 이만큼 멋진 석양이 있었을 텐데, 언젠가 그 모습에 감동해 이 시간을 좋아하게 됐을 텐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이 좋아하는 석양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기자인 저자는 늘 낯선 땅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살다가 특파원으로 선발돼 반년간 동,남아프리카 8개국을 누비며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이 책에 담았다. 기자로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문득문득 생각나던 ‘잘 살고 있는걸까?’라는 물음의 답을 저자는 아프리카를 통해 찾고자 했던 것일까, 그렇게 미지의 세계가 자신의 삶의 일부가 된다면 조금이라도 그 답에 가까워질 수 있을것이란 생각에 저자는 아프리카로 떠나게 된다. 사실 이제 비행기를 타면 대부분의 나라에 갈 수 있고 세상이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화 시대라고 해도, 아프리카라는 나라는 아직 우리에겐 멀고도 궁금한 나라이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큰 땅과 천혜의 자연환경, 아직 원시의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부족들,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프리카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런 아프리카의 곳곳을 누비며 직접 경험했던 많은 일화들이 담긴 이 책은 유쾌하고 즐거운 아프리카에서부터 가슴 아픈 역사의 이면을 가진 아프리카까지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어 그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일반인들이 단지 여행으로 가서는 경험할 수 없을 부분들도 기자라는 이점을 살려 당국과 많은 단체들의 도움으로 접하며 단지 여행 그 이상의 깊은 아프리카의 모습을 직접 체험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상상하고 생각했던 아프리카와 지금 현재의 진짜 아프리카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아프리카 여성들과 아이들의 열악한 삶과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에게 총을 겨눌 수 밖에 없었던 가슴아픈 역사, 수많은 나라에게 지배당하며 겪은 고초는 그저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평화워보이는 아프리카의 또다른 이면을 마주하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가 직접 마주한 경이로운 아프리카의 자연과 그와 더불어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살아가는 동물들과 소박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 또한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적어도 사자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절대로 사냥을 하지 않는다. 자신과 새끼의 생존을 위해서만 사냥을 할 뿐, 배를 채우고 나면 다른 동물을 해치지 않은 동물이지 않던가. 사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을 갖추고도,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갖고 싶어서 자꾸 욕심을 내고 남의 것을 빼앗기까지 하는 인간이라는 동물도 있는데 말이다.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이라면 문명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부시맨의 모습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사진 촬영 한번에도 돈을 요구하고, 외지인에겐 말도 안돼는 바가지를 씌우기도 하는 어느새 우리와 다를바 없어진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저자 역시 이런저런 나쁜 일이나 황당한 순간을 많이 경험하지만 그럼에도 생각해보면 자신을 진심으로 도와주고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들이 더 많았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동안 지냈던 아프리카는 ‘폴레폴레’ 걷다 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그로인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덕분에 저자 역시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그래서 더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자신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자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대부분은 빨리빨리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익숙하고 편한것만을 추구하곤 한다. 하지만 살면서 한번쯤은 낯설지만 새로운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었다. 비단 아프리카가 아니더라도, 먼 나라로 떠나는 것이 아니더라도 급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내 삶의 궤도를 제대로 맞출 수 있는 시간이 인생에선 꼭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왜 이곳까지 왔을까. 대륙 끝까지 와서도 그 답은 알 수 없었다. 아니 답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내가 30년 동안 만들어 둔 내 마음속 GPS가 “아는 길로만 가면 재미없잖아. 한번 가봐”라고 말해준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