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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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시각과 어른의 시각은 다르다. 단지 보이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어린시절과는 달리 어른이 되면 눈에 보이는 것일지라도 믿지 않고 의심하고 다른 이면을 생각하게 된다. 어린시절 읽었던 지루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고전들이 어른이 되어 읽었을 땐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상황, 같은 사건일지라도 아이가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어른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래서 어린시절엔 언제나 호기심으로 가득하고 어른들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내며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복합적으로 얽히고 설킨 어른들의 세계가 어린시절엔 참으로 궁금하고 흥미로웠지만, 어른이 되고보니 참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란걸 어른이 되고서야 느끼게 된다. 어린시절 한낱 재미로 했던 장난과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미처 예상하지 못한채 어른이 되어 감당할 수 없을 일들이 되어 돌아온다면 더더욱.. 



살다보면 고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아무리 기도하고 애를 쓰고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것도 있다. 그런 것들이 우리를 규정한다.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초크맨>은 원고 공개 2주 만에 26개국에 판권이 계약되며 에이전시 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판매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최대 화제작으로 떠오르며 총 39개국에 계약된 대단한 저력의 책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초크맨>이 저자인 C.J.튜더의 데뷔작이란 것이다. 데뷔작부터 말그대로 초히트를 친 저자는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하며 단편소설을 써서 게재해 오다 딸이 생일선물로 받은 분필로 차고에 그려둔 일련의 그림들을 보며 영감을 얻어 <초크맨>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은 처음부터 섬뜩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숲에서 토막 난 시체가 발견된다. 하지만 머리가 없다. 시체의 머리는 끝내 찾아내지 못한채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어진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에디가 사는 앤더베리 마을은 참 작다. 건너 건너면 모두가 연결되는 그런 마을이다. 1986년 12살이던 에디에겐 개브,호포,미키,니키라는 패거리 친구들이 있고 다같이 함께 간 축제에서 에디의 눈 앞에서 놀이기구가 고장나며 예쁜 외모에 눈길을 끌던 댄싱퀸이 눈 앞에서 피범벅이 된다. 새로 부임하게 될 핼로런 선생님과 함께 댄싱걸을 구하며 영웅 취급을 받지만 사실 에디는 핼로런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도망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건도 서서히 잊혀지기 시작하고 에디와 친구들은 개브의 생일파티에서 의문의 선물로 받은 분필로 서로만의 암호을 정해 기호와 초크맨을 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초크맨을 그리기 시작한뒤로 사건과 의문의 죽음이 이어진다. 에디는 초크맨 암호에 따라 놀이터에 갔다 미키의 형인 션으로부터 모욕적인 폭력을 당한다. 하지만 션은 강에 빠져 죽게 되고 그곳에도 초크맨은 그려져 있었다. 니키의 아빠인 마틴 목사가 교회에서 의문의 폭행을 당했을 때도 초크맨이 그려져 있었고 댄싱걸 일라이저가 토막난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도 초크맨의 암호를 알고 있는 에디와 친구들이 표시를 따라가 가장 먼저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2016년 현재의 에디는 교사이고 개브와 호포는 아직 앤더베리 마을에 함께 살고 있지만 션의 죽음 이후로 멀어진 미키는 마을을 떠났다. 하지만 어느날 분필이 든 편지를 모든 친구들이 받게 되고 에디는 떠났던 미키로부터 함께 초크맨의 이야기를 글로 쓸 것을 제안 받는다. 미키는 일라이저를 죽인 범인이 누군지 안다고 이야기하고 에디와 헤어지지만 미키 역시 자신의 형처럼 강에 빠져 죽은채 발견된다. 긴 시간이 흘렀어도 자신을 둘러싼 초크맨과 의문의 죽음들이 에디를 계속 괴롭히게 되고 결국 에디는 초크맨이 누군지 알아내고 밝히지 않으면 이 일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일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오랫동안 나는 그 사건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어. 피했어. 격리시켰어. 그러다 이제 그 모든 공포와 죄책감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제대로 처리할 때가 됐다는 결론을 내렸어.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교차되며 이어지는 이야기는 스릴러 같은 극적인 긴장감과 함께 한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하며 겪는 인식의 변화와 그를 통해 서서히 이야기가 풀어지는 성장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많은 등징인물들이 에디의 주변에 있고 어린시절 겪었던 상황과 사건들이 어른이 되어 다시 마주했을 때 새로운 이면을 발견하며 의문들이 해소되어 가는 과정이 굉장히 잔인한 묘사와 섬뜩한 표현들로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진다. 사실 스릴러나 추리 소설은 읽다보면 어느정도 누가 범인이겠다 싶은 촉이 발동한다. 하지만 초크맨엔 범인일 것 같은 인물들이 너무나 많다. 의심스러운 특징과 상황들로 나름 범인을 추리하며 읽어나갔지만 난 결국 범인을 맞추지 못했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사실은 별 것 아니며 의외로 생각지 못했던 인물과 사소한 상황들이 사건의 중심으로 훅 치고 들어와 반전의 묘미를 주기도 했다. 12살 어린 아이들의 장난에서 시작된 일들이 결국엔 눈덩이처럼 커져버리고 거짓말과 비밀들로 켜켜이 덮혀 살인이라는 감당 못할 상황으로 번진다. 어린시절 그냥 넘겨버리고 지나쳤던 일들이 어른이 된 에디의 눈엔 절대 사소하지 않은 일이었음을 깨달으며 진실에 다가가는 그 과정에서 아이가 느끼는 단순한 공포을 넘어서 더 잔혹한 현실을 인지하는 순간 초크맨의 비밀은 하나씩 풀어진다. 단순한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 아닌, 인간이 느끼는 극강의 공포와 섬뜩한 비밀들이 끝까지 긴장감을 주고 자칫 비현실적으로 느껴질지 모를만한 사건들도 저자만의 예리함과 구성으로 훨씬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어 이야기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엇보다 단순히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짐작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하고, 비록 절대적인 악은 없을지라도 누군가는 선의로, 누군가는 두려움에 저지른 작은 악행들일지라도 결국엔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잔인한 살인사건으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뒷덜미의 털이 쭈뼛해질 만큼 공포스럽고 섬뜩한 표현들이 많아 사실 처음엔 밤에 혼자 거실에서 책을 읽다 너무 무서워 그뒤론 사람 많고 밝은 카페에서 오전에 읽어나가게 만든 만큼, 지금 무더위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서늘한 재미를 안겨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모든 게 한순간에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게 한순간에 날아가버릴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그걸 들고 왔는지 모른다. 뭐라도 붙잡고 싶어서. 그걸 안전하게 지키고 싶어서. 아무튼 속으로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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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정답은 아니야 - 세상의 충고에 주눅 들지 않고 나답게 살기 아우름 31
박현희 지음 / 샘터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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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엄마나 할머니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내말만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매번 나의 잘못된 선택에는 어른들의 저런 코멘트가 붙곤 했다. 옛어른들 말씀 틀린거 하나 없다는 말에 여지없이 수긍할 수 밖에 없었던건 아직 어리고 미숙한 나를 생각하면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선조들의 지혜와 경험이 담긴 속담과 격언을 국어 시간에 하나하나 배우고 그 뜻을 외우며 실생활에 써먹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훨씬 더 현실적인 유행어나 명언들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속담이나 옛 어른들의 조언은 꼰대들의 고지식한 이야기라 치부하며 크게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어린시절 배운 속담의 뜻은 하나 변한 것 없이 진리처럼 머리속에 각인되어 있기에 그것을 비틀거나 의문을 가질 생각조차 없는 나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상식들이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적용되면서 만고불변의 진리인 양 여겨지는 것을 문제 삼고 싶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또 누군가 해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 일을 해내야 항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하며 건네는 충고들이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폭력이나 억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저자는 고등학교 사회 교사로 무엇이 교육의 본질인지, 진정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며 살고 있다. 아마 그 의심이 싹이되어 누구나 상식이라 생각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익숙한 속담에서부터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에게 건네는 충고까지 저자는 재미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 비록 선의의 말일지라도 상대방에겐 상처가 되고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상기시키며 조목조목 따져본다. 



부지런함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나는 부지런함은 항상 옳고, 게으름은 항상 틀리다는 생각이 잘못된 거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삶의 속도를 자신에게 맞게 조절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잠시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시간을 갖자.

상식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선 속담과 충고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빈 수레가 요란하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등 굉장히 친숙한 속담속에 담긴 교훈들은 모두 우리에게 좋은 의미만을 담고 있을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이 진리인양 고착되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눈앞에 놓인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는 신중함이 필요하지만 그 신중함이 돌다리를 건너는데 오랜 망설임을 가져오고 용기를 잃어 결국 건너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빈 수레의 요란함을 비난하기 전에 그 속사정이 무엇인지 들어보려는 노력은 해본적 있는가? 될성부른 나무가 되기위해 떡잎때부터 강요받는 교육들이 수많은 떡잎이 나무가 되지 못하게 막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충고는 적절한 시기에 공부하기 위한 수많은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다반사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누구나 쉽게 일상적으로 하는 충고지만 최선을 다해도 이룰 수 없는 일들이 더 많다.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사정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도 헤아려 줄 필요가 있다. 


너무나 견고하게 쌓아진 성을 극소수의 사람들이 한번에 무너뜨릴 순 없다. 오랜 시간 축적된 세월의 흐름과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 위풍당당한 성은 감히 손을 대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 성은 그런 연유로 수많은 사람들간의 출입을 가로막고 소통을 단절시킬지도 모른다. 그 성에 조그만 균열 하나, 흠집 하나 내기에도 벅찬데 어찌 그 성을 없애버릴 수 있을까. 그러나 저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이라는 성벽에 미세하게나마 작은 균열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비록 작은 돌가루 하나 떨어뜨리지 못할지라도 그 성에 새겨진 저자의 작은 자국 하나에 누군가는 호기심을 가지고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내가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상식이라는 것에 지혜와 교훈이 담긴 것은 사실이지만 급변하는 시대에 1분 1초의 짧은 시간도 모두 다르게 흘러가고 한사람 한사람의 개성을 중시하면서도 어째서 이런 상식들은 모두에게 공통되게 적용시키는건지에 대한 의문을 왜 한번도 품지 않았던 걸까. 각자의 상황, 각자의 문제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이해되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진리처럼 고정되어 누군가에겐 상처를 남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가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남에게 상처를 줘놓고 무심하게 예능을 다큐멘터리로 받지 말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나의 다큐멘터리가 당신의 예능이 되는 게 정말 싫다. 아무 때나 예능을 찍지 마라. 그것도 당신만 재밌는 예능. 곧 채널이 돌아가고 아무도 당신의 예능을 보아주지 않는 때가 올 거다.


 
*  샘터 네이버 공식 포스트  http://post.naver.com/isamt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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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의 겨울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5
토베 얀손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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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처음 접해보는 일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여태껏 겪어보지 못했던 기록적인 폭염을 견디기 힘든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오롯이 홀로 견뎌내야 한다면 어떨까. 두려움과 외로움 가득찬, 그리고 혹독하고 매서운 한겨울을 나야 한다면 말이다. 지금 같아선 시원한 눈 내리는 겨울이 그립기까지 하지만 무민이 홀로 나야하는 겨울은 우리가 상상하고 바라는 겨울처럼 아름답고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아무리 기다려도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겨울을 과연 무민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잿빛 어둠이 온 골짜기를 뒤덮고 있었다. 하지만 골짜기는 이제 더는 초록빛이 아니었고, 새하얬다. 무엇 하나 움직이도 않았다. 생동감 있는 소리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모났던 것은 모두 동글동글해졌다.

 

무민을 탄생시킨 핀란드의 국민 작가인 토베 얀손의 무민 연작소설의 다섯번째 이야기인 <무민의 겨울>은 그가 무민 연재에 심리적 압박을 받던 시기에 집필한 작품으로 그 영향을 받아 전작보다 조금은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민의 명성은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무민이 어떤 캐릭터인지, 어떤 이야기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당연히 이전의 소설들을 읽어보지 못했고 그래서 무민의 성격이나 배경등도 알지 못한다. 마냥 귀엽고 밝고 엉뚱할 것 같은 무민의 이미지와 어린이 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이력은 어린이를 위한 눈 덮힌 무민 마을에서 일어나는 한바탕 소동기처럼 유쾌하게 다가오지만, 무민의 겨울은 나의 상상처럼 단지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담고 있진 않다. 북유럽의 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춥고 어두우니까. 



덜컥 겁이 난 무민은 달빛이 닿지 않는 따뜻한 어둠 속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끔찍하게도 혼자 내팽개쳐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민들은 해마다 11월이면 전나무 잎을 잔뜩 먹고 겨울잠을 잔다. 다음해 4월 봄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는 무민들은 그래서 겨울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새해가 시작되고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음에도 무민이 혼자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가족들은 일어날 생각이 없고 무민의 집은 어둠과 적막으로 가득차 있다. 친구인 스너프킨은 남쪽으로 떠났고 멈춰진 시계와 먼지 쌓인 가족들의 물건은 무민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밖으로 나간 무민이 처음 마주한 겨울의 눈과 매서운 추위는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무민은 혼자 그 겨울을 헤쳐나가야 한다. 탈의실에서 만난 투티키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민에게 혼자 헤쳐가야 한다 말하고 엉뚱한 미이는 새로운 경험 앞에 무민의 어려움은 안중에도 없다. 스키를 타고 나타난 헤물렌은 무민을 힘들게 하고 추위를 피하고 먹거리를 위해 무민의 집에 들이닥친 많은 친구들도 누구하나 무민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위로해 주려 하지 않는다. 분명 함께 있지만 무민은 외롭고 혼자나 다름없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화도 내고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낯설기만 했던 겨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무민은 서서히 성장하고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봄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봄이 왔지만 무민이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다. 이제 봄은 무민을 낯설고 적대적인 세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의 시기라기보다 무민이 극복하고 받아들인 새로운 경험이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처음 무민을 접한 나에겐 무민이 여리고 나약한 존재라고 느껴졌다. 물론 적막한 집에 홀로 깨어나 처음으로 겪어보는 계절과 상황에 두려움이 생기지 않을 순 없겠지만 무민은 기대고 의지할 누군가를 계속 찾고 또 자신의 물음에 명쾌하게 대답하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줄 존재를 끊임없이 바라지만 누구 하나 그렇게 해주지 않는다. 그중 투티키는 무민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긴 하지만 한번도 먼저 해답을 주거나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진 않는다. 다른 친구들도 모두 무민에게 무언가를 바라거나 자신의 이야기만을 할 뿐 무민의 상황을 이해하고 헤아려 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무민은 스스로 가족들을 보살피려 하고 친구들을 챙기며 낯설었던 겨울이라는 계절에 적응하고 마지막엔 눈보라와 하나가 되는 경지까지 이르며 겨울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다. 처음엔 나약하고 신경질적이고 금방 화를 냈다 또 금방 후회하는 영락없는 아이 같았던 무민이 나의 가족, 이웃, 친구들을 책임감 있게 챙기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기도 했다. 마냥 아기 같던 우리 아이들이 어느새 훌쩍 자라 때론 의젓한 모습을 보이고 해내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뒤엎고 훌륭하게 어떤 일을 해냈을 때 엄마로서 뿌듯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무민 가족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났을 때, 무민은 자신이 겪은 많은 일들을 미주알 고주알 무민마마에게 이야기하고 감기에 걸렸다며 응석부리는 아기 같은 무민이지만 친구인 스노크메이든에게는 의젓한 말을 건네는 무민에게 겨울은 더이상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차츰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겨울이란 따뜻한 봄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으니까. 



스노크메이든이 말했다.
“유리 덮개를 덮어 주자. 추운 밤에도 끄떡없게.”
무민이 말했다.
“덮지 않는 게 좋겠어. 알아서 헤쳐 나가도록 내버려 두자. 어려움을 조금 겪고 나면 훨씬 잘 자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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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 자화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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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부터 난 신을 믿지 않았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맹목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존재인 신의 실체를 만난적이 없기에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허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믿음이 생길리 없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가끔 마음을 비워내고 싶거나 어딘가에 털어내고 싶을때 가끔 절을 찾긴 하지만 절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진 않다. 종교에 기댄다고 해서 내 삶의 고통이나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희망이나 기대도 가지지 않는다. 어차피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해야 하고 그 결과 역시 내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책임을 떠넘기거나 원망하고 싶지 않다. 사실 그건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편한 방법이지만 살아가다 보면 그런 방식의 삶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고, 스스로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다. 



모든 사람은 같은 협곡에서 나오고, 같은 어머니와 같은 유래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같은 심연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마다의 시도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향하여 노력한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허나 자신이 지닌 의미에 대한 해명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데미안>은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다. 1919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창작에 임한 헤르만 헤세는 사실 처음 <데미안>을 출간했을 때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책을 출간했다. 그 당시에 이미 대문호로 불리던 헤세는 작가로서 자신의 소설이 작품성만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 헤세의 작품임이 확인되고 다시 헤세의 이름으로 발간되었다고 한다. 작가들이 필명으로 전혀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는 경우는 많다. 특히 이미 유명한 작가라면 네임밸류만으로도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화제가 되고 좋은 평가를 받곤 한다. 헤세라는 이름 없이도 충분히 작품성을 인정 받은 <데미안>은 그런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그당시 전쟁으로 인해 지친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절망적인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며 암울한 상황을 타개할 가능성을 던져주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거야. 그런데도 그 사람이 누군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건 자기를 지배하는 힘을 그 누군가에게 내주어버렸기 때문이야.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싱클레어는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는 평화롭고 따뜻한 세계만을 경험한 그는 어느날 또래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도둑질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게되고 그로인해 프란츠 크라머에게 빌미가 잡혀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싱클레어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따뜻한 세계 이면의 또다른 사회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싱클레어는 크라머로 인해 매일을 두려움과 고뇌에 빠져 지내게 된다. 그러던 중 전학생 막스 데미안을 통해 크라머의 손에서 벗어나게 되고 데미안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던 삶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지만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베아트리체라는 여인을 통해 다시 모범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되고 꿈속에서 본 여인을 그림으로 그려 데미안에게 보낸다. 데미안에게 받은 편지에 써있던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 라는 내용을 통해 아프락사스에 대해 알게 되고 아프락사스를 통해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나 스승과 제자처럼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피스토리우스와도 멀어지게 되고 그로인해 그림에 몰두하게 된 싱클레어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신비로운 사람 그림을 그리며 그 인물에 심취하게 된다. 그러던 중 데미안을 우연히 다시 만나고 그의 집에서 데미안의 어머니와 만나게 되는데 자신이 꿈에서 본, 사랑했던 여인이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임을 알게 된다. 그 집을 드나들며 에바부인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1차 대전으로 인해 그들과 헤어지게 된다. 데미안은 전쟁에 나가고 싱클레어 역시 전쟁에 나가 부상을 입게 된다. 부상 당한 병사를 치료하는 곳에서 그의 눈앞에 데미안이 나타나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계속 되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발견하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깨달은 인간에게 부여된 의무는 단 한 가지 그것 말고는 아무런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찾고, 자신의 내면을 견고히 하며, 그 길이 어디를 향하든지 조심스럽게 자신의 길을 더듬어 나이가는 일. 그 이외의 다른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선과 악이 존재할까? 해가 뜨면 달이 지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사라지듯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그 이면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님에도 우리들은 단지 눈에 보이고 자신이 속한 그 세계만이 전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싱클레어가 자신이 속한 따뜻한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는 일련의 과정속에 데미안이란 존재는 절대적이다. 처음 데미안을 본 순간부터 그는 데미안에 끌리게 되고 그를 통해 점점 자신의 진짜 내면을 알아가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모습으로 변하며 끝을 맺는데 사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데미안은 죽었다는 건가? 싱클레어의 상상으로 끝나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찬찬히 다시 읽어나가고 생각하다 보니 결국 데미안이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싱클레어 자신이었고 그의 참된 자아가 데미안이라는 인물로 표현되어 그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싱클레어는 절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 시대에 신이란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종교에 대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잣대가 아닌 선과 악이 공존하는 아프락사스라는 신을 말하며 신보다 인간을 중요시한다. 신에게 의지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은 자신이 이끌어 가야 하고 자아를 찾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새가 힘겹게 알을 까고 나오듯 자신만의 세계를 찾기 위한 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이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만들어둔 세계에 갇혀 영원히 종교든, 신이든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다. 싱클레어가 긴 시간을 돌아 자신만의 자아를 찾을 수 있었듯, 우리 역시 스스로 치열하게 고뇌하고 부딪히며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가야 한다.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삶의 모순을 이겨낼 수 있는 힘 역시 스스로에게 있다. 부모로 부터 물려 받은 환경과 신앙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데미안을 읽으며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모든 교파와 모든 구제론은 이미 오래 전에 죽어 버려 쓸모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가 유일하게 의무로 또한 운명으로 느꼈던 것은 다만 각자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완전히 자기의 내부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의지에 뒤따르며 불확실한 미래가 초래하게 될지도 모르는 온갖 일들에 대해서 스스로 준비를 갖추고 있음을 느끼도록, 순수하게 살아간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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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작
이은소 지음 / 새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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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이고 마음의 병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결국 몸의 병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무리 좋은 약이며 첨단 의료 장비를 쓴다해도 자신의 마음속 근심, 걱정을 떨쳐낼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의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어도 마음의 병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행복할리가 없다. 하지만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내 마음에 병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아직도 조금은 낯설고 거리가 있는 것이 정신의학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 하면 되돌아오는 사람들의 묘한 시선에 차마 얘기하지 못하고 끙끙 앓으며 병을 키우는 사례도 허다하다. 그러니 과거 조선시대의 사정이야 말해 무엇할까. 



그래, 그 심의. 병자의 마음을 고치는 의원. 의원이 병자를 돌보는 데 가장 우선시할 건 병자의 마음이고, 병을 낫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병자의 마음을 고치는 거지.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며 매년 1천여 편의 작품이 투고되는 국내 최고의 이야기 공모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의 2016년 우수상 수상작이다. ‘상상하고 쓰는 병’에 걸린 저자는 자신의 불치병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길 바라는 타고난 글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드라마나 소설은 항상 인기가 좋다. 그래서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조선시대의 정신과의사라는 소재는 처음부터 신선하게 다가온다. 지금처럼 발달되지 않은 의학기술과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사회에서 ‘심병’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주인공인 유세풍은 앞길이 창창한 의관이었지만 자신의 침술이 잘못되어 병자를 죽이게 했다는 자책감에 더이상 침을 놓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시골 의원으로 가게 되며 계지한을 만나 심의로 거듭나게 되고, 그가 치료하는 많은 심병 환자들과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성장해나가는 세풍과 과부에서 여의원이 된 은우, 입은 걸걸하지만 어진 계의원과 저마다 힘든 과거와 사연을 가진 시골의원 가족들이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며 신분과 재산에 상관없이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훈훈한 의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재미와 감동 두가지 모두 놓치지 않는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 의원에 오는 아낙들이 왜 너를 찾아서 수다를 떨겠냐? 너 그네들이 한참 이야기하고 의원을 나갈 때 얼굴 봤냐? 올 때랑 달라. 십년 막힌 똥구녕을 뚫고 가는 얼굴이야. 너 때문이야. 네가 관심을 갖고 들어 주잖아. 네가 한 거, 그게 치료야. 그래서 현령 부인도, 아씨도 낫게 한 거야.

 

 

세풍을 찾아 오는 병자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기구하다.  오줌싸개 서자, 치매 걸린 화냥년, 우울증 수절과부, 알코올 중독 광대, 귀신 들린 병신, 결벽증 소녀, 히스테리 비구니, 불감증 고시생까지 참으로 다양하기도 하다. 하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사회적 약자이고 천하다고 칭해지는 자들이다.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나라가 아닌 계의원이다. 돈도 받지 않고 진료를 보고 약을 주는 이곳은 그래서 언제나 병자들로 인산인해다. 세풍은 한때 입신양면을 꿈꾸던 사람이었지만 계의원에서 심의로 일하며 많은 병자들을 만나고 모든 병의 근원이 마음에 있으며, 심의는 기술만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자의 마음에 관심을 두고 돌보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으며 변하고 성장하게 된다.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서도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참고 참다 병이 나는 많은 병자들에게 조용히 그들의 마음속 말들을 들어주고 당당하게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하라고 이야기 한다. 



세풍에게 훌훌 털어놓고 나니 눈물이 흘렀다. 자주 흘리던 눈물이었는데 그 순간의 눈물은 전과 달랐다. 그 눈물에 온 마음과 온 몸이 젖는 듯하였다. 메말라 버린 땅에 단비가 스며드는 듯하였다. 은우는 그때 제 마음이 나았다고 생각했다.


 

 

엄연히 신분제도가 존재하고 차별을 당연시 여기던 조선시대의 심병을 앓고 있는 병자들의 사연은 우릴 분노하게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때의 차별과 약자에 대한 차가운 시선과 부당한 처우들이 지금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우리를 섬뜩하게 만든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 여성에 대한 차별,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폭행등 지금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한 것 없는 지금의 사회가 씁쓸하기도 하다. 유세풍이 시대를 앞서가는 심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었듯 우리 사회에도 좋은 의사분들은 많다. 하지만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아직도 차갑기만 하다. 간단한 치료만으로도 나아질 수 있는 병을 혼자 끙끙 앓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편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좀 더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이 생각하고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 소설이지만 사실 그 무엇보다 재밌고 유쾌한 캐릭터들과 대비되는 그들의 가슴 아픈 사연, 그리고 그것을 서로 포용하며 이겨내고 행복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따뜻함이 있어 다양한 생각과 감상을 가질 수 있었던 책이었다. 게다가 단순한 허구가 아닌 동의보감, 황제내경, 한의학 대사전등 실제 한의학 지식에 기반을 둔 증상과 처방은 사실성을 높여 주고 역사적 사실과 실존 인물들도 함께 등장해 훨씬 생동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차별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 부당함을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이겨내고 자신의 권리를 선택하고 행복을 찾을 자격은 그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 당연한 그 사실을 긴 시간 차별과 편견이라는 굴레 속에서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게 된다. 



세풍은 광현과 작별하며 생각했다. 병자를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 병자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단 한 사람. 그가 바로 의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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