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작
이은소 지음 / 새움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이고 마음의 병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결국 몸의 병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무리 좋은 약이며 첨단 의료 장비를 쓴다해도 자신의 마음속 근심, 걱정을 떨쳐낼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의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어도 마음의 병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행복할리가 없다. 하지만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내 마음에 병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아직도 조금은 낯설고 거리가 있는 것이 정신의학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이야기 하면 되돌아오는 사람들의 묘한 시선에 차마 얘기하지 못하고 끙끙 앓으며 병을 키우는 사례도 허다하다. 그러니 과거 조선시대의 사정이야 말해 무엇할까. 



그래, 그 심의. 병자의 마음을 고치는 의원. 의원이 병자를 돌보는 데 가장 우선시할 건 병자의 마음이고, 병을 낫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병자의 마음을 고치는 거지.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며 매년 1천여 편의 작품이 투고되는 국내 최고의 이야기 공모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의 2016년 우수상 수상작이다. ‘상상하고 쓰는 병’에 걸린 저자는 자신의 불치병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길 바라는 타고난 글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드라마나 소설은 항상 인기가 좋다. 그래서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조선시대의 정신과의사라는 소재는 처음부터 신선하게 다가온다. 지금처럼 발달되지 않은 의학기술과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사회에서 ‘심병’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주인공인 유세풍은 앞길이 창창한 의관이었지만 자신의 침술이 잘못되어 병자를 죽이게 했다는 자책감에 더이상 침을 놓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시골 의원으로 가게 되며 계지한을 만나 심의로 거듭나게 되고, 그가 치료하는 많은 심병 환자들과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성장해나가는 세풍과 과부에서 여의원이 된 은우, 입은 걸걸하지만 어진 계의원과 저마다 힘든 과거와 사연을 가진 시골의원 가족들이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며 신분과 재산에 상관없이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훈훈한 의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재미와 감동 두가지 모두 놓치지 않는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 의원에 오는 아낙들이 왜 너를 찾아서 수다를 떨겠냐? 너 그네들이 한참 이야기하고 의원을 나갈 때 얼굴 봤냐? 올 때랑 달라. 십년 막힌 똥구녕을 뚫고 가는 얼굴이야. 너 때문이야. 네가 관심을 갖고 들어 주잖아. 네가 한 거, 그게 치료야. 그래서 현령 부인도, 아씨도 낫게 한 거야.

 

 

세풍을 찾아 오는 병자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기구하다.  오줌싸개 서자, 치매 걸린 화냥년, 우울증 수절과부, 알코올 중독 광대, 귀신 들린 병신, 결벽증 소녀, 히스테리 비구니, 불감증 고시생까지 참으로 다양하기도 하다. 하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사회적 약자이고 천하다고 칭해지는 자들이다.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나라가 아닌 계의원이다. 돈도 받지 않고 진료를 보고 약을 주는 이곳은 그래서 언제나 병자들로 인산인해다. 세풍은 한때 입신양면을 꿈꾸던 사람이었지만 계의원에서 심의로 일하며 많은 병자들을 만나고 모든 병의 근원이 마음에 있으며, 심의는 기술만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자의 마음에 관심을 두고 돌보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으며 변하고 성장하게 된다.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서도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참고 참다 병이 나는 많은 병자들에게 조용히 그들의 마음속 말들을 들어주고 당당하게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하라고 이야기 한다. 



세풍에게 훌훌 털어놓고 나니 눈물이 흘렀다. 자주 흘리던 눈물이었는데 그 순간의 눈물은 전과 달랐다. 그 눈물에 온 마음과 온 몸이 젖는 듯하였다. 메말라 버린 땅에 단비가 스며드는 듯하였다. 은우는 그때 제 마음이 나았다고 생각했다.


 

 

엄연히 신분제도가 존재하고 차별을 당연시 여기던 조선시대의 심병을 앓고 있는 병자들의 사연은 우릴 분노하게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때의 차별과 약자에 대한 차가운 시선과 부당한 처우들이 지금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우리를 섬뜩하게 만든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 여성에 대한 차별,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폭행등 지금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한 것 없는 지금의 사회가 씁쓸하기도 하다. 유세풍이 시대를 앞서가는 심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었듯 우리 사회에도 좋은 의사분들은 많다. 하지만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아직도 차갑기만 하다. 간단한 치료만으로도 나아질 수 있는 병을 혼자 끙끙 앓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편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좀 더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이 생각하고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 소설이지만 사실 그 무엇보다 재밌고 유쾌한 캐릭터들과 대비되는 그들의 가슴 아픈 사연, 그리고 그것을 서로 포용하며 이겨내고 행복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따뜻함이 있어 다양한 생각과 감상을 가질 수 있었던 책이었다. 게다가 단순한 허구가 아닌 동의보감, 황제내경, 한의학 대사전등 실제 한의학 지식에 기반을 둔 증상과 처방은 사실성을 높여 주고 역사적 사실과 실존 인물들도 함께 등장해 훨씬 생동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차별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 부당함을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이겨내고 자신의 권리를 선택하고 행복을 찾을 자격은 그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 당연한 그 사실을 긴 시간 차별과 편견이라는 굴레 속에서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게 된다. 



세풍은 광현과 작별하며 생각했다. 병자를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 병자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단 한 사람. 그가 바로 의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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