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의 겨울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5
토베 얀손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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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처음 접해보는 일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여태껏 겪어보지 못했던 기록적인 폭염을 견디기 힘든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오롯이 홀로 견뎌내야 한다면 어떨까. 두려움과 외로움 가득찬, 그리고 혹독하고 매서운 한겨울을 나야 한다면 말이다. 지금 같아선 시원한 눈 내리는 겨울이 그립기까지 하지만 무민이 홀로 나야하는 겨울은 우리가 상상하고 바라는 겨울처럼 아름답고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아무리 기다려도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겨울을 과연 무민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잿빛 어둠이 온 골짜기를 뒤덮고 있었다. 하지만 골짜기는 이제 더는 초록빛이 아니었고, 새하얬다. 무엇 하나 움직이도 않았다. 생동감 있는 소리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모났던 것은 모두 동글동글해졌다.

 

무민을 탄생시킨 핀란드의 국민 작가인 토베 얀손의 무민 연작소설의 다섯번째 이야기인 <무민의 겨울>은 그가 무민 연재에 심리적 압박을 받던 시기에 집필한 작품으로 그 영향을 받아 전작보다 조금은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민의 명성은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무민이 어떤 캐릭터인지, 어떤 이야기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당연히 이전의 소설들을 읽어보지 못했고 그래서 무민의 성격이나 배경등도 알지 못한다. 마냥 귀엽고 밝고 엉뚱할 것 같은 무민의 이미지와 어린이 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이력은 어린이를 위한 눈 덮힌 무민 마을에서 일어나는 한바탕 소동기처럼 유쾌하게 다가오지만, 무민의 겨울은 나의 상상처럼 단지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담고 있진 않다. 북유럽의 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춥고 어두우니까. 



덜컥 겁이 난 무민은 달빛이 닿지 않는 따뜻한 어둠 속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끔찍하게도 혼자 내팽개쳐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민들은 해마다 11월이면 전나무 잎을 잔뜩 먹고 겨울잠을 잔다. 다음해 4월 봄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는 무민들은 그래서 겨울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새해가 시작되고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음에도 무민이 혼자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가족들은 일어날 생각이 없고 무민의 집은 어둠과 적막으로 가득차 있다. 친구인 스너프킨은 남쪽으로 떠났고 멈춰진 시계와 먼지 쌓인 가족들의 물건은 무민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밖으로 나간 무민이 처음 마주한 겨울의 눈과 매서운 추위는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무민은 혼자 그 겨울을 헤쳐나가야 한다. 탈의실에서 만난 투티키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민에게 혼자 헤쳐가야 한다 말하고 엉뚱한 미이는 새로운 경험 앞에 무민의 어려움은 안중에도 없다. 스키를 타고 나타난 헤물렌은 무민을 힘들게 하고 추위를 피하고 먹거리를 위해 무민의 집에 들이닥친 많은 친구들도 누구하나 무민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위로해 주려 하지 않는다. 분명 함께 있지만 무민은 외롭고 혼자나 다름없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화도 내고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낯설기만 했던 겨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무민은 서서히 성장하고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봄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봄이 왔지만 무민이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다. 이제 봄은 무민을 낯설고 적대적인 세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의 시기라기보다 무민이 극복하고 받아들인 새로운 경험이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처음 무민을 접한 나에겐 무민이 여리고 나약한 존재라고 느껴졌다. 물론 적막한 집에 홀로 깨어나 처음으로 겪어보는 계절과 상황에 두려움이 생기지 않을 순 없겠지만 무민은 기대고 의지할 누군가를 계속 찾고 또 자신의 물음에 명쾌하게 대답하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줄 존재를 끊임없이 바라지만 누구 하나 그렇게 해주지 않는다. 그중 투티키는 무민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긴 하지만 한번도 먼저 해답을 주거나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진 않는다. 다른 친구들도 모두 무민에게 무언가를 바라거나 자신의 이야기만을 할 뿐 무민의 상황을 이해하고 헤아려 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무민은 스스로 가족들을 보살피려 하고 친구들을 챙기며 낯설었던 겨울이라는 계절에 적응하고 마지막엔 눈보라와 하나가 되는 경지까지 이르며 겨울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다. 처음엔 나약하고 신경질적이고 금방 화를 냈다 또 금방 후회하는 영락없는 아이 같았던 무민이 나의 가족, 이웃, 친구들을 책임감 있게 챙기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기도 했다. 마냥 아기 같던 우리 아이들이 어느새 훌쩍 자라 때론 의젓한 모습을 보이고 해내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뒤엎고 훌륭하게 어떤 일을 해냈을 때 엄마로서 뿌듯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무민 가족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났을 때, 무민은 자신이 겪은 많은 일들을 미주알 고주알 무민마마에게 이야기하고 감기에 걸렸다며 응석부리는 아기 같은 무민이지만 친구인 스노크메이든에게는 의젓한 말을 건네는 무민에게 겨울은 더이상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차츰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겨울이란 따뜻한 봄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으니까. 



스노크메이든이 말했다.
“유리 덮개를 덮어 주자. 추운 밤에도 끄떡없게.”
무민이 말했다.
“덮지 않는 게 좋겠어. 알아서 헤쳐 나가도록 내버려 두자. 어려움을 조금 겪고 나면 훨씬 잘 자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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