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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정답은 아니야 - 세상의 충고에 주눅 들지 않고 나답게 살기 ㅣ 아우름 31
박현희 지음 / 샘터사 / 2018년 6월
평점 :
어린시절 엄마나 할머니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내말만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매번 나의 잘못된 선택에는 어른들의 저런 코멘트가 붙곤 했다. 옛어른들 말씀 틀린거 하나 없다는 말에 여지없이 수긍할 수 밖에 없었던건 아직 어리고 미숙한 나를 생각하면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선조들의 지혜와 경험이 담긴 속담과 격언을 국어 시간에 하나하나 배우고 그 뜻을 외우며 실생활에 써먹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훨씬 더 현실적인 유행어나 명언들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속담이나 옛 어른들의 조언은 꼰대들의 고지식한 이야기라 치부하며 크게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어린시절 배운 속담의 뜻은 하나 변한 것 없이 진리처럼 머리속에 각인되어 있기에 그것을 비틀거나 의문을 가질 생각조차 없는 나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상식들이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적용되면서 만고불변의 진리인 양 여겨지는 것을 문제 삼고 싶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또 누군가 해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 일을 해내야 항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하며 건네는 충고들이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폭력이나 억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저자는 고등학교 사회 교사로 무엇이 교육의 본질인지, 진정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며 살고 있다. 아마 그 의심이 싹이되어 누구나 상식이라 생각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익숙한 속담에서부터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에게 건네는 충고까지 저자는 재미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 비록 선의의 말일지라도 상대방에겐 상처가 되고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상기시키며 조목조목 따져본다.
부지런함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나는 부지런함은 항상 옳고, 게으름은 항상 틀리다는 생각이 잘못된 거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삶의 속도를 자신에게 맞게 조절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잠시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시간을 갖자.
상식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선 속담과 충고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빈 수레가 요란하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등 굉장히 친숙한 속담속에 담긴 교훈들은 모두 우리에게 좋은 의미만을 담고 있을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이 진리인양 고착되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눈앞에 놓인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는 신중함이 필요하지만 그 신중함이 돌다리를 건너는데 오랜 망설임을 가져오고 용기를 잃어 결국 건너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빈 수레의 요란함을 비난하기 전에 그 속사정이 무엇인지 들어보려는 노력은 해본적 있는가? 될성부른 나무가 되기위해 떡잎때부터 강요받는 교육들이 수많은 떡잎이 나무가 되지 못하게 막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충고는 적절한 시기에 공부하기 위한 수많은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다반사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누구나 쉽게 일상적으로 하는 충고지만 최선을 다해도 이룰 수 없는 일들이 더 많다.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사정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도 헤아려 줄 필요가 있다.
너무나 견고하게 쌓아진 성을 극소수의 사람들이 한번에 무너뜨릴 순 없다. 오랜 시간 축적된 세월의 흐름과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 위풍당당한 성은 감히 손을 대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 성은 그런 연유로 수많은 사람들간의 출입을 가로막고 소통을 단절시킬지도 모른다. 그 성에 조그만 균열 하나, 흠집 하나 내기에도 벅찬데 어찌 그 성을 없애버릴 수 있을까. 그러나 저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이라는 성벽에 미세하게나마 작은 균열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비록 작은 돌가루 하나 떨어뜨리지 못할지라도 그 성에 새겨진 저자의 작은 자국 하나에 누군가는 호기심을 가지고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내가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상식이라는 것에 지혜와 교훈이 담긴 것은 사실이지만 급변하는 시대에 1분 1초의 짧은 시간도 모두 다르게 흘러가고 한사람 한사람의 개성을 중시하면서도 어째서 이런 상식들은 모두에게 공통되게 적용시키는건지에 대한 의문을 왜 한번도 품지 않았던 걸까. 각자의 상황, 각자의 문제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이해되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진리처럼 고정되어 누군가에겐 상처를 남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가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남에게 상처를 줘놓고 무심하게 예능을 다큐멘터리로 받지 말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나의 다큐멘터리가 당신의 예능이 되는 게 정말 싫다. 아무 때나 예능을 찍지 마라. 그것도 당신만 재밌는 예능. 곧 채널이 돌아가고 아무도 당신의 예능을 보아주지 않는 때가 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