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러들지 않고 용기있게 딸 성교육 하는 법 - 성교육 전문가 손경이의 딸의 인생을 바꾸는 50가지 교육법
손경이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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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중, 여고를 나온데다 그 당시 여학생들에게 성교육이란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것들을 알려주는 정도로 밖에 운영되지 않았기에 공식적인 루트로 성에 대해 알게 되고 교육 받은 적은 거의 전무했다. 그나마 구성애 선생님이 아이들의 성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어느정도 전파하며 한때 큰 붐이 일긴 했었지만 그럼에도 성교육은, 특히 딸들에겐 단순히 순결을 유지하고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식의 자기방어적 성격을 띄고 있었다. 그런 사회적 인식속에서 자란 여학생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부모가 되었고 딸을 키우게 되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제대로 성교육을 받지 못했던 내가 딸을 가진 부모가 되었을 때 과연 내 딸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해줄 수 있을까? 성교육을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조차 가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의 전작인 아들을 위한 성교육 책을 접하게 되었을 때, 아! 나도 우리 아이들의 성교육을 기관이나 사회에만 맞겨서는 안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내심 딸에 대한 성교육 책을 내주시길 바라고 있었는데 마침 새롭게 출간한 딸을 위한 성교육 책을 내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 



딸의 성교육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해야 한다고 부모님도 인식하셔야 딸을 주체적인 여성, 당당한 여겅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딸을 ‘여성스럽게’ 키우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시대가 바뀐만큼 좋은 여성에 대한 기준도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딸들을 ‘좋은 여성’을 넘어 ‘좋은 사람’이 되도록 키워야 합니다.


 

 

30만 부모, 학생, 교사, 직장인이 인정한 17년 경력 국내 최고의 성교육 전문가인 저자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남편 사이에서 아들만큼은 ‘좋은 남자로 키우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성을 배워 아들에게 성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성교육 전문가로 활동하게 되었고 현재 방송과 각종 강연을 통해 성평등 성교육, 젠더교육을 널리 전하고 있다. 아들과 함께 성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는 닷페이스의 <엄마와 아들의 성교육 상담소> 시리즈는 300만 뷰를 자랑하며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그로인해 첫 번째 책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을 통해 성평등 시대에 걸맞는 아들 성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많은 딸을 둔 부모들로부터의 요청으로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나역시 저자의 첫 책을 접한 순간,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딸들을 위한 성교육 책이 나오기를 마음속으로 희망하였었다. 다행히 이 책이 나오게 되어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우선은 기뻤다. 성교육은 나에게도 너무나 낯선 분야이니 말이다. 


성교육이라면 남성과 여성의 몸의 구조와 같은 단순한 성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성교육이란 건전한 성 습관과 건강한 인간관계를 갖도록 도와주고 훈련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성교육은 관계에 대한 교육이라는 것이다. 특히 아들과 달리 딸을 위한 성교육의 핵심은 주체성에 있다고 한다. 자신의 몸에 대한 인식, 자신의 몸은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나의 성적 행동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에게 결정권이 있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주체성은 그 무엇보다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심어 주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의 몸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가 모두 성교육이기에 부모가 아이를 존중하는 자세로 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우리 아이의 단계에 맞는 교육과 올바른 성지식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부모들의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가 적절한 시기에 올바른 정보를 제공한다면 아이를 왜곡된 정보에서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으로 막막하다. 부모인 우리 역시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으며 자라지 못했기에, 정확한 지식과 올바른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딸의 성교육을 위해 부모가 가져야 할 핵심적인 원칙과 함께 시기별 성교육 방법과 아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성지식, 그리고 딸을 가진 부모라면 가장 걱정될 수 밖에 없는 성폭력에 대한 사실들을 차례대로 이야기 한다. 성교육은 아이들이 어느정도 크고 2차성징이 나타날 사춘기 즈음부터 해야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던 많은 부모들에게 아이가 어린시절부터 조금씩 인식시키고 알려주며 주체성의 토대를 마련해둬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막연히 꺼려지고 민망하게 느껴지던 성교육의 틀을 깨고 당당하고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 그 무엇보다 예쁘고 소중한 우리 딸들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챙길 수 있는 책임감을 길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막고, 숨기고, 하지 못하게 하려해도 아이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훨씬 더 쉽게 성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억지로 막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판단력을 어려서부터 길러주는 것이 맞는 것 아닐까라는 것을 저자는 끊임없이 이야기 한다. 



이제 더 이상 무조건 욕구를 억누르라고만 가르치는 성교육은 의미가 없습니다.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안전하고 책임 있는 성관계를 맺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그리 나이가 많지 않은, 젊은 축에 속하는 엄마인 나지만 성교육이 아직은 민망하고 어색하기만 하다. 여성인 나에게 성교육이란 순결을 지키고 몸가짐을 조심하고 임신와 출산, 낙태와 같은 단순한 지식을 교육받는 것 뿐이었다. 성적 주체성이니 젠더 감수성이니 그런 말은 일체 듣지도 못한채 자랐었다. 피임법 한번 제대로 배워 본 기억이 없었으니 지금 이 책에서 말해주는 모든 것들이 낯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나역시 여성으로 살아오며 겪었던 차별과 많은 문제들을 우리 딸들은 절대 겪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기에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여성들의 인권과 권리가 향상되고 있다고 해도 성폭력이라는 범죄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받고 있기에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는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는 그런 딸을 둔 부모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듯 성폭력에 대해 따로 챕터를 두어 세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막연히 피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었던 나지만 사실 성폭력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부모로서 꼭 알고 있어야 할 성폭력에 대한 사실들을 세세히 알게 되며 새로운 지식과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시기에 맞는 성교육 방법과 특히 중요하고도 예민한 사춘기 시기의 아이들의 심리와 생각들을 교육자로서 많이 접할 수 있었던 저자이기에 더욱 생생한 경험담과 사례들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들을 접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그 무엇보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키고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주체성을 가지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멋진 여성으로 키울 수 있다면, 성에 대해 딸을 둔 부모로서의 걱정은 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 한권으로 당장 아이들을 위한 모든 성교육 지식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시작부터 막막하게만 느껴지던 딸을 위한 성교육을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또 어떻게 아이와 교감하고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나 스스로가 좀 더 당당하게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가짐, 그리고 올바른 성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당장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혹스러우시겠지만, 오히려 잘만 활용하면 아이와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아이의 부끄럽고 창피한 경험까지 인정해 주고 안아 주면 아이는 부모님에 대해 믿음과 신뢰를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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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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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사실이라 주장하여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내 눈앞에서 일어난 일일지라도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귀신이나 외계인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는다. 한번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분명 우리가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존재나 상황들을 거짓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현실에 막혀 그런 것들에 의문을 가지고 호기심을 가지며 생각해볼 여유가 없다. 그러나 아이들의 상상과 호기심은 엉뚱하기도 하지만 너무나 순수하고 어찌보면 굉장히 진지하기도 하다. 그래서 어른들이 보기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아마 실제 현실에서 마주치는 불가사의한 상황 역시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아오야마가 도저히 도시에선 마주칠 수 없는 펭귄을 만나 깊이 있는 연구에 돌입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수수께끼를 풀어봐. 어때, 할 수 있겠니?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은 두번째다. 첫번째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였는데 강렬한 소설로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 <펭귄 하이웨이>는 일단 표지에 이번에 개봉된 애니메이션의 귀여운 펭귄과 더 귀여운 소년이 그려져 있어 얼핏 보면 아이들을 위한 귀엽고 아기자기한 내용일 것이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는데 저자의 이름을 보고 순간 매치가 안돼기도 했다. 술과 향락의 세계를 보여주던, 소위 어른의 세계를 담고 있던 전작에 깊은 인상이 남아서인지 모르겠다. <펭귄 하이웨이>는 저자가 이때까지 교토를 배경으로 작품을 써오던 것과는 다르게 이례적으로 교토가 아닌 이름 없는 교외의 주택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용한 마을에 펭귄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환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2010년 제 31회 SF대상을 수상하고 서점 대상 3위까지 올랐다니 저자의 명성과 저력을 여실히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4학년생인 아오야마는 매일 같이 연구에 매진하고 어제보다 더 훌륭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보기드문 진지한 초딩이다. 어느날 등굣길에서 우연히 공터에 모여있는 펭귄들을 마주치게 되지만 이 펭귄들은 트럭으로 운반되다 감쪽같이 사라진다. 여러가지 자기만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아오야마는 펭귄의 출현으로 펭귄 프로젝트에 돌입, 펭귄들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올 때 으레 지나가는 루트를 ‘펭귄 하이웨이’라고 부른다고 책에서 읽게 된다. 그 말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 아오야마는 이번 펭귄 출현에 대한 탐구의 제목을 ‘펭귄 하이웨이’로 정한다. 하지만 어느 날, 아오야마는 짝사랑하던 치과 누나가 펭귄을 만들어 내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콜라캔을 공중으로 던지자 콜라캔이 펭귄으로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도 누나는 미스터리한 행보를 보인다. 엄청나게 피곤해 보이며 몇일씩 잠적하기도 하고, 펭귄뿐만이 아니라 체스판에서 박쥐를 만들고 우산에서 꽃을 피우기도 한다. 누나 역시 자신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고, 아오야마에게 이 수수께끼를 풀어달라 말한다. 그러던 중 아오야마는 친구들과 지도에서 찾을 수 없는 초원과 그곳에 있는 정체불명의 ‘바다’를 발견하게 되고, ‘바다’ 연구와 펭귄 연구를 거듭할수록 모든 것이 누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하지만 아오야마는 누나의 정체를 알아갈수록 누나를 다신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자만의 연구를 진행하지만 펭귄과 바다와 재버워크들로 인해 마을은 점점 혼란과 위험에 빠지게 된다. 



나는 왜 누나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이 기뻐질까, 그리고 내가 기쁘게 생각하는 누나의 얼굴은 왜 유전자에 의해 완벽하게 만들어져서 지금 저기에 있는 걸까, 하는 것을 나는 알고 싶었다.


 

 

 

귀여운 펭귄에 더 귀여운 소년이 나오는 SF라니, 뭔가 안 어울릴듯 연결되지 않는 의문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소설이지만 왠걸,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뒷 이야기가 궁금해져 나도 모르게 앉은 그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조용했던 마을에 어떤 미지의 존재가 찾아온다는 설정은 낯설지 않지만 그게 펭귄이라니!! 전혀 낯설지 않은 존재지만 남극도 아닌 일본 교외의 마을에 펭귄이 나타난다면 누구나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타의 아이들은 한바탕 소동으로 넘길 일이지만 주인공인 아오야마는 평소 비범한 연구를 통해 다양한 지식을 끊임없이 쌓아온 애어른이기에 놓치지 않고 펭귄 연구에 돌입한다. 하지만 비록 머리에 든 건 많을지라도 애는 애다. 어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펭귄, 누나, 그리고 바다는 어찌보면 기이하고 현실에선 인정할 수 없을만한 것들이지만 아오야마와 친구들의 시선에서는 재밌고 궁금하고 호기심과 상상을 자극하는 재미있는 요소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의 연구를 얕잡아 볼 순 없다. 방대한 우주지식과 과학지식을 가진 아오야마와 친구들은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게 연구에 임하고 또 그 문제를 풀어나가니 말이다. 초등학교 4학년들이 상대성 이론에 대해 토론한다니 사기캐릭터에 위화감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누나의 가슴을 좋아하고 유방에 사로잡히는 응큼한 구석도 있고 일편단심 누나에 대한 짝사랑을 이어가는 순수하기도 한 다양한 매력을 가진 소년이기에 아오야마에게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거기에 아오야마와 대비되는 뭔가 나른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누나와 체스 소녀 하마모토, 우주박사지만 겁많은 우치다, 그리고 아오야마와 우치다를 괴롭히는 스즈키까지 SF적인 펭귄 이야기와는 별도로 현실적인 초딩생활의 모습을 그리며 소년들의 우정과 성장, 그리고 누나에 대한 아오야마의 순수한 사랑까지 모든 것이 다 어우러진 한가지 장르로는 못밖을 수 없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현실적인 이야기, 죽음이니 ‘바다’니 세상의 끝이니 이해할 수 없는 설정이 난무하지만 그럼에도 저자 특유의 유머가 녹아있고 4학년 나름 순수한 아오야마의 시선으로 그려져 있기에 거부감이나 부담없이 귀엽게 다가온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을때 가장 재밌을 것 같은 소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에 개봉되는 영화에서 어떻게 이 이야기들을 표현해 냈을지 기대가 된다. 아무래도 영화도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가설을 세우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이론을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만이, 내가 진정으로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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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1 (미니북)
조지 오웰 지음, 하소연 옮김 / 자화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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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진 자유를 당연히 여기곤 한다. 하지만 자유가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다. 특히 요즘의 우린 스스로 결정과 선택을 하는 것조차 어렵게 느낄 때가 많다. 어떨때는 그냥 주어진대로, 누군가 시킨대로 움직일때가 훨씬 편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자유를 그렇게나 갈망하면서도 그 자유가 주어졌을 땐 어찌할바를 모르는, 이중적인 모습에서 지금 우리가 가진 혼란스러운 상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어린시절 내가 그렸던 미래의 2018년은 날아다니는 자동차에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는 행복한 삶을 꿈꿨지만, 지금이 과연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바쁘게 살다 보면 좋은게 좋은거고 편한게 편한거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점점더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갈 수록, 누군가는 우리를 조종하기도, 또 거짓을 진실이라 믿게 만들기도 쉬워지지만 말이다. 



윈스턴은 마치 괴물만 사는 세계에서 자신도 방향 감각을 잃고 바다 깊은 숲속을 헤매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혼자였다. 과거는 사멸하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었다. ‘도대체 단 한 명의 인간이라도 살아남아서 내 편에 서줄 것인가? 그리고 당의 지배가 영원히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 알 수 있단 말인가?’


 

 

 

1903년 6월 25일 인도의 벵골에서 태어난 조지 오웰은 1933년 첫 소설 <파리와 런던 안팎에서>가 출간된 이후, 척박한 노동자의 삶이나 내전의 참상을 토대로 지은 소설을 발표하며 1945년 8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에 바탕을 둔 정치우화 <동물농장>이 출간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46년 스코틀랜드 주라 섬에 머물며 집필한 이 책, <1984>는 그의 최대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49년에 출판된 디스토피아 공상과학 소설이자 출판 당시보다 35년 후인 1984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암울한 미래를 제시한다. 책이 출판되던 때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때로 그로인해 이 소설은 반공산주의 혹은 반사회주의 소설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1984년 영국은 오세아니아의 하나의 주로 빅 브라더라는 최상위 지배자가 전체주의 사상을 주입하며 통치하고 있다. 텔레스크린을 통해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되고 당에 반기를 드는 사람을 식별하는 사상경찰이 존재한다. 만약 불온한 사상과 당에 대한 반감을 가진 것이 적발되면 그 사람은 말 그대로 증발된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윈스턴은 기록조작을 담당하고 있다. 빅 브라더를 칭송하고 믿는 열성적인 다른 동지들과는 달리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기억하는 진실과 조작된 과거 사이에서 갈등하고 빅 브라더의 존재와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빅 브라더가 인민의 적이라 지칭하며 증오하게 만드는 존재인 골드스타인과 대규모 비밀 군대이자 국가 전복을 꾀하는 지하 조직 형제단에 끌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은 철저히 당원들을 지배한다. 조작하고 위조된 거짓말은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된다. 개인의 성욕마저 억누르기 위해 쾌락을 제거하기도 한다. 어린시절부터 간접적인 방식으로 교묘하게 사상을 주입한다. 하지만 아무리 진실을 왜곡한다고 해도 그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전혀 느끼지 못할까? 그것이 가능한 것은 이중 사고를 통해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중사고란 두가지 상반되는 생각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으로,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속이고 있는 행위 역시 함께 인식하기에 모순된 것들을 포장하며 스스로를 통제하게 된다. 당은 끊임없이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전쟁 상태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전쟁을 통해 사회체제를 유지하고 공공의 적에 대한 증오와 철저히 억압된 본능을 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폭발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어느 누구도 들어주지 않은 진실을 중얼거리는 고독한 유령이다. 그렇지만 약간 애매모호하게 중얼거리기만 하면 이런 상태가 중단되지 않고 지속될 것이다. 진실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건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1984> 속의 사람들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모든 것을 감시당한다. 1984년에 그런 기술이 있을 수 있었을까란 생각은 뒤로하고 30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딜가나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우리의 개인정보는 기록되고 저장되며 언제든지 추적할 수 있다. 빅 브라더 같은 존재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탄핵 사태를 보면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뒤에서 조종하는 강한 세력이 있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마주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면에서 소설의 배경이 1984년이고 이 책이 실제로 쓰인 것이 1949년이란 것을 생각하면 감탄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그렇게 감시당하던 사람들은 의심을 받는 순간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증발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사람이 왜 사라졌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그 사람의 과거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워진다. 우리나라의 그즈음을 생각하면 그와 다르지 않다. 국가의 이념에 위배되는 사람들은 소리소문 없이 죽음을 당하곤 했지만 그 죽음은 철저히 위장되어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소설속에선 영어로 대변되는 구어가 아닌 신어를 계속적으로 만들며 구어를 삭제해 나간다. 여기서 언어가 대중들에게 가지는 힘을 깨달을 수 있다. 일제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우리에게 자행한 민족말살정책을 생각해보면 역사와 언어가 국민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었던 일본의 만행을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어쨋든 엄청난 시간의 갭을 넘어서 지금 우리 시대에도 충분히 대입될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이 곳곳에 담겨 있고 치밀하고 입체적인 인물 묘사에 푹 빠져 격렬하게 감정 이입을 하며 읽어나갔던 것 같다. 비록 윈스턴은 계속 저항하지만, 결국 마지막은 그가 꿈꾸던 미래를 맞이하진 못한다. 그럼에도 내가 저 시대에 살았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마 나처럼 나약한 정신으론 분명 체제에 순응하며 아무런 의심 없이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윈스턴을 비난하지도, 극악한 당의 지배세력을 증오할 수도 없었다. 그저 그런 암울한 시대에 살지 않는 것에 안도하고 위안을 받을 수 밖에.. 하지만 내가 사는 이 시대라고 크게 다를까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국민을 개돼지라 지칭하는 지배세력이 분명히 지금도 존재하고,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해 사실을 조작하는 일 역시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암울한 <1984> 속 디스토피아가 2018년 지금 우리의 시대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 그것을 써낸 조지 오웰의 통찰력에 놀라게 되고, 또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이 소름끼치고 무섭게 다가오기도 하는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란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가 허용된다면 다른 것들은 모두 자연히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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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독서사 - 우리가 사랑한 책들, 知의 현대사와 읽기의 풍경
천정환.정종현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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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지만 30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항상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은 아니다. 몇 년간은 책을 한권도 읽지 못했던 시간도 있었고, 하루에 1권 이상 미친듯이 그저 읽어나가던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읽고 또 읽다보니 어느순간 그 책을 보면 당연히 책의 내용도 생각나지만 그 책을 읽었던 그 당시의 내 모습과 상황들이 함께 떠오르곤 한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책들은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을 담고 있는 나만의 역사서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그건 음악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어쨋든 지나온 과거에만 집착하는 것은 안돼겠지만 그 시간들을 한번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책은 항상 그 시대의 상황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존재이다. 고통과 분노, 행복과 희망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과 독서의 문화를 살펴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독서 문화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독자는 점점 줄고, 나눌 파이는 작아지기 시작했다. 책 읽기는 세기말적 상황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두 저자는 국문학과 교수이다. 한국 현대 문학사와 문화를 다양하게 연구하며 다양한 성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책은 2015년 5월부터 한 신문사의 ‘광복 70년, 현대서 70년’ 기념 특집으로 연재했던 글을 고치고 묶은 것이다. 그 긴 시간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기에 저자는 책 읽기 문화를 통해 지난 70년 한국의 시간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그 시간동안 우리들에게 사랑받았던 책들을 통해 그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독서는 사회적인 동시에 개인적인 현상이고 TV 보기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책을 읽을 적당한 체력과 지적 훈련, 또 그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선택하고 읽는 행위와 그 뒤에 이어지는 인식과 행동의 변화는 당대의 문화와 정서를 알려주는 가장 집합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실질 문맹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버렸다. 단순히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닌 문서를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과 고등 교육기관 진학율을 생각하면 뭔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왜 우리가 점점 책을 읽지 않게 되었는지, 왜 한국의 독서문화는 퇴행하게 되었는지를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 보기를 저자들은 바라고 있다. 

 

책의 역사는 훨씬 오래 되었지만 이 책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책을 읽는 행위인 독서의 역사이다. 식민지 시절 국어로 배웠던 일본어를 해방과 함께 한글로 바꿔 배우며 겪었을 50년대의 혼란속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혼돈의 시간이 지속되며 독서의 문화 역시 흔들리게 된다. 삼팔선을 경계로 나뉜 것처럼 지식문화 역시 분단된 것이다. 하지만 그결과 서구 문명이 안착하며 민주주의와 함께 더 많은 자유를 원하게 되고 출판계 역시 안정과 성장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4.19 혁명과 정권의 탄압과 검열 속에 생겨난 저항의 문화는 책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60년대에 이르러서는 경제성장과 인구 팽창, 독자층의 성장이 함께 어우러져 한국 출판자본주의의 호시절을 이루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겐 익숙한 카뮈나 사르트르는 엄청난 영향력이 있는 작가이지만 그때만 해도 이런 실존찰학은 불온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었다. 70년대에 이르러 한국 출판은 더 대중화되고 더 세련돼 지며 청년문화가 당대의 중요 이슈가 되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전태일의 죽음처럼 저항의 문화가 더욱 부각된다. 그들로 인해 가난한 민중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그 당시 노동자들은 동네마다 마을문고를, 공장과 합숙소에 직장문고를 설치해 책을 빌려 읽었고 책 읽기는 절박한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탈출구였다. 뜻밖에도 저소득층의 독서율이 굉장히 높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하지만 80년대는 그 당시의 정치사처럼 어둡고, 억압이 극심해지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저항은 더욱 치열해진다. 수많은 출판인이 구속되고 책들은 압수되고 서점 주인이 입건되는 사례도 무수하여 결국 운동으로서의 출판, 저항의로서의 독서가 꽃핀다. 하지만 과도기와 같은 90년대는 독서시장은 자본의 장악력이 커지고 세계화와 정보화로 인해 상업적 대중문화에 종속되기 시작한다. 자본가가 위인으로 대접 받으며 회고록과 자서전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PC통신을 통해 연재되던 ‘퇴마록’,’드래곤 라자’ 같은 작품들이 현실에서도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한다. 위기와 불안의 시기인 2000년대엔 자기계발 서적들이 인기를 끌며 성공을 위한 책 읽기 열풍이 불지만 21세기의 우리는 책 안 읽는 국민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너무나 다양하고 간편하게 많은 정보를 얻고 다양한 플랫폼이 존재하는 지금, 책이란 팍팍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사치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자기의식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타자와 공유하거나 또는 남에게 전하는 것. 1970~90년대 한국 청년.학생 그리고 노동자의 독서는 그런 행위의 다른 이름일 수 있었다.


 

 

 

70년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익숙한 듯 하면서도 또 새로운 많은 책들을 만날 수 있다. 교과서에서 봤던 문학 작품들이 그저 단순한 소설이 아닌 그 시대의 상황과 그 책을 읽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과 어우러져 훨씬 더 그 의미를 새기기 쉽게 다가온다. 솔직히 나는 지금 책 한권에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읽는 경우는 많지 않다. 좋아하는 작가고, 재밌으면 찾아 읽지만 그 책 속에 시대의 정신이 살아 숨쉰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하는게 사실이다. 게다가 요즘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나 자기계발 책들이 각광을 받고 있기에 책 역시 잠깐의 휴식과 재미를 위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많은 사람들에게 책이란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진 존재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억압된 자신들의 자유를 위한 목소리를 담고, 저항을 위한 정신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책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본의 힘이 더해지고 점점 상업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출판 시장은 베스트셀러들이 지배하고 있고, 그런 베스트셀러는 거의 만들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우린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고 책 읽을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다. 책을 안 읽는 것이 아닌 못 읽는 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아닐까? 아이들은 입시 교육에 포위되고 어른들은 성과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사회에서 일하며 지적 활동인 독서에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모든 정보, 글을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에 점점 더 책의 위상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최근엔 동네 서점이 많이 생기고 인기도 얻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책 구매율은 점점 하락하고 있다. 이런 위기의 독서 문화를 이겨내기 위해 인문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공공기관에서도 강연이나 강좌를 활성화 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다. 나역시 시대의 흐름에 이끌려 몇 번 전자책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적은 있지만 결국은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는 만큼 모두에게 종이책만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옛날처럼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문화가 더 많이 생기고 독서 문화가 더 널리 퍼질 수 있다면 어떤 형태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시대마다 인기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책들을 전부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롭게 출간되는 책들을 읽기에도 벅차 사실 과거의 그 시대를 생생히 나타내주는 고전들을 읽는 것에 소홀하긴 했지만 고전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난 외국 문학을 많이 읽는 편이고 한국 문학은 등한시해 왔었던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통해 알게 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우리의 문학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똑같은 물을 마시고 뱀은 독을 만들고 소는 우유를 만든다’ 는 옛말이 있다. 우리가 하는 독서도 그와 다르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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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1 (미니북)
제인 오스틴 지음 / 자화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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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사람들에겐 연인, 때론 썸이며 남사친,여사친등 남녀간의 다양한 관계가 존재한다. 그것이 연인으로 발전될 수도, 또는 그냥 어영부영 끝나버릴 수도 있지만 그런것에 크게 괘념치 않는 듯 하다. 많은 관계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이어지고 끊어지며 그렇게 인연은 만들어 지니 말이다.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던 사랑은 언제나 우리 인생의 중심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미 결혼한 나에게 간질간질한 연애세포는 의미가 없고, 새로운 사랑의 설레임 또한 느낄 수 없다. 한때 울고 웃게 만들던 연애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 말고는 없지만, 그럼에도 가끔 만나게 되는 로맨스 소설은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그 중에서도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시대의 사랑 이야기지만 수백년이 지나도 우리를 설레게 하는 <오만과 편견>은 읽고 또 읽어도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걸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든 자유롭게 사랑을 시작할 수는 있어. 처음에 약간의 호감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을 싹틔울 수는 있지. 하지만 애정이 더 커지도록 하지 않고 내버려뒀는데 상대방이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오기를 바랄 수는 없어.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 중의 한명인 제인 오스틴은 영국의 국민작가라고도 할 수 있다. 목사 아버지를 두고 6남2녀중 일곱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문학 작품을 즐겨 읽던 집안 분위기 덕분에 당대의 유명한 희곡 작품뿐만 아니라 낭만주의 작품, 계몽주의 작품, 수많은 시편을 접하며 그녀의 나이 열 네살 때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해 스물한 살때 첫 장편을 완성하게 된다. <오만과 편견>은 처음 익명으로 출간하였는데 친한 사람들에게 조차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한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물론 그녀에게도 사랑의 아픔은 있었지만 사랑 없는 결혼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제인 오스틴이 문학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독신이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오만과 편견>으로 작가로서 인정을 받고 그 이후로도 많은 작품을 발표했지만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엄청난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19세기 후반부터 많은 비평가들의 힘으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명작의 반열에 들게 되고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이야기는 5명의 딸을 가진 베넷 집안의 이웃인 네더필드로 많은 재산을 가진 미혼 남자 빙리가 이사오며 시작된다. 베넷집안의 5딸은 모두 미혼이다. 돈 많은 이웃 총각에게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혈안이 된 베넷여사는 첫째인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제인과 빙리를 이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빙리의 친구인 다아시 역시 엄청난 재산과 큰키에 수려한 외모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만 오만하고 까다로운 성격으로 인해 그의 인기는 시들해진다. 베넷 집안의 둘째인 엘리자베스는 파티에서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는 다아시의 말을 우연히 듣게 되고 처음부터 그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장난기 많은 활달한 성격에 다른 자매들과 달리 교양과 지식을 갖춘 엘리자베스에게 다아시는 점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교양없는 어머니와 게으르고 장교뒤만 쫓아다니는 동생들로 인해 제인과 엘리자베스의 평판 또한 나빠지게 된다. 결국 서로 사랑하지만 멀어지게 된 제인과 빙리, 그리고 다아시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쉽게 이어지지 않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게다가 다아시에 대한 오해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다아시의 청혼을 거절한 엘리자베스는 그뒤 서서히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며 다아시에 대한 애정이 점점 커지게 된다. 서로 대립되는 세계와 가치관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에게 보이는 오만과 자만심, 그리고 그것을 더욱 뿌리깊게 만드는 편견. 그 모든 것을 초월하고 과연 둘은 같은 접점에서 마주할 수 있을까. 



이제 그녀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랑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 수밖에 없는 이 순간에, 그녀는 자기가 그 사람을 사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라는 생각만 들었다.


 

 

 

결혼이 가지는 의미가 많이 바뀌었고 우리는 사랑이냐, 경제적 풍요로움이냐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선택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지만 이 소설이 쓰인 시대는 여성이 그런 선택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소설속 엘리자베스는 어머니가 바라고 집안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청혼을 단칼에 거절한다. 그 후폭풍을 감당하긴 해야 했지만, 어쨋든 자신의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의 청혼을 그렇게 거절한 것만으로도 대담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에겐 더 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아직도 결혼 앞에서 사랑이냐 경제적 부유함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엘리자베스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지금 우리에게도 많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로맨스소설이라고 보기엔 오만과 편견은 그 속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 당시의 시대상을 그녀만의 시선으로 풍자하고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을 광장히 세밀하게 표현한다. 특히 다이시의 오만함과 엘리자베스의 그에 대한 편견이 어떻게 쌓이고 또 그것이 어떻게 풀어지고 섞여지는지의 과정속에 그 당시의 시대상이 가장 잘 담겨져 있어, 나는 비록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했지만 그 속에 함께 동화되는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무관심하지만 유머와 센스있는 베넷, 허영심이 가득한 베넷부인과 어린 동생들, 팔랑귀 빙리와 갈등을 야기하는 빙리의 동생 캐롤라인과 다아시의 이모 캐서린여사까지 정말 다양한 캐릭터들이 합쳐져 훨씬 더 이야기 속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당한 엘리자베스가 쟁취해 나가는 자신만의 사랑과 인생에 대한 가치관은 그 당시를 살아가는 보수적인 여성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겠지만 지금 우리에겐 동질감과 함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또 우리에게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이끌어나가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그녀, 엘리자베스는 멋진 여성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전 그런 말씀은 드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여사님이건 누구건 저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제 행복을 위한 길을 제 생각에 따라 선택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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