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독서사 - 우리가 사랑한 책들, 知의 현대사와 읽기의 풍경
천정환.정종현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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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지만 30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항상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은 아니다. 몇 년간은 책을 한권도 읽지 못했던 시간도 있었고, 하루에 1권 이상 미친듯이 그저 읽어나가던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읽고 또 읽다보니 어느순간 그 책을 보면 당연히 책의 내용도 생각나지만 그 책을 읽었던 그 당시의 내 모습과 상황들이 함께 떠오르곤 한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책들은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을 담고 있는 나만의 역사서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그건 음악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어쨋든 지나온 과거에만 집착하는 것은 안돼겠지만 그 시간들을 한번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책은 항상 그 시대의 상황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존재이다. 고통과 분노, 행복과 희망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과 독서의 문화를 살펴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독서 문화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독자는 점점 줄고, 나눌 파이는 작아지기 시작했다. 책 읽기는 세기말적 상황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두 저자는 국문학과 교수이다. 한국 현대 문학사와 문화를 다양하게 연구하며 다양한 성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책은 2015년 5월부터 한 신문사의 ‘광복 70년, 현대서 70년’ 기념 특집으로 연재했던 글을 고치고 묶은 것이다. 그 긴 시간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기에 저자는 책 읽기 문화를 통해 지난 70년 한국의 시간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그 시간동안 우리들에게 사랑받았던 책들을 통해 그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독서는 사회적인 동시에 개인적인 현상이고 TV 보기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책을 읽을 적당한 체력과 지적 훈련, 또 그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선택하고 읽는 행위와 그 뒤에 이어지는 인식과 행동의 변화는 당대의 문화와 정서를 알려주는 가장 집합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실질 문맹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버렸다. 단순히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닌 문서를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과 고등 교육기관 진학율을 생각하면 뭔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왜 우리가 점점 책을 읽지 않게 되었는지, 왜 한국의 독서문화는 퇴행하게 되었는지를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 보기를 저자들은 바라고 있다. 

 

책의 역사는 훨씬 오래 되었지만 이 책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책을 읽는 행위인 독서의 역사이다. 식민지 시절 국어로 배웠던 일본어를 해방과 함께 한글로 바꿔 배우며 겪었을 50년대의 혼란속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혼돈의 시간이 지속되며 독서의 문화 역시 흔들리게 된다. 삼팔선을 경계로 나뉜 것처럼 지식문화 역시 분단된 것이다. 하지만 그결과 서구 문명이 안착하며 민주주의와 함께 더 많은 자유를 원하게 되고 출판계 역시 안정과 성장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4.19 혁명과 정권의 탄압과 검열 속에 생겨난 저항의 문화는 책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60년대에 이르러서는 경제성장과 인구 팽창, 독자층의 성장이 함께 어우러져 한국 출판자본주의의 호시절을 이루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겐 익숙한 카뮈나 사르트르는 엄청난 영향력이 있는 작가이지만 그때만 해도 이런 실존찰학은 불온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었다. 70년대에 이르러 한국 출판은 더 대중화되고 더 세련돼 지며 청년문화가 당대의 중요 이슈가 되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전태일의 죽음처럼 저항의 문화가 더욱 부각된다. 그들로 인해 가난한 민중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그 당시 노동자들은 동네마다 마을문고를, 공장과 합숙소에 직장문고를 설치해 책을 빌려 읽었고 책 읽기는 절박한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탈출구였다. 뜻밖에도 저소득층의 독서율이 굉장히 높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하지만 80년대는 그 당시의 정치사처럼 어둡고, 억압이 극심해지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저항은 더욱 치열해진다. 수많은 출판인이 구속되고 책들은 압수되고 서점 주인이 입건되는 사례도 무수하여 결국 운동으로서의 출판, 저항의로서의 독서가 꽃핀다. 하지만 과도기와 같은 90년대는 독서시장은 자본의 장악력이 커지고 세계화와 정보화로 인해 상업적 대중문화에 종속되기 시작한다. 자본가가 위인으로 대접 받으며 회고록과 자서전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PC통신을 통해 연재되던 ‘퇴마록’,’드래곤 라자’ 같은 작품들이 현실에서도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한다. 위기와 불안의 시기인 2000년대엔 자기계발 서적들이 인기를 끌며 성공을 위한 책 읽기 열풍이 불지만 21세기의 우리는 책 안 읽는 국민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너무나 다양하고 간편하게 많은 정보를 얻고 다양한 플랫폼이 존재하는 지금, 책이란 팍팍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사치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자기의식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타자와 공유하거나 또는 남에게 전하는 것. 1970~90년대 한국 청년.학생 그리고 노동자의 독서는 그런 행위의 다른 이름일 수 있었다.


 

 

 

70년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익숙한 듯 하면서도 또 새로운 많은 책들을 만날 수 있다. 교과서에서 봤던 문학 작품들이 그저 단순한 소설이 아닌 그 시대의 상황과 그 책을 읽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과 어우러져 훨씬 더 그 의미를 새기기 쉽게 다가온다. 솔직히 나는 지금 책 한권에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읽는 경우는 많지 않다. 좋아하는 작가고, 재밌으면 찾아 읽지만 그 책 속에 시대의 정신이 살아 숨쉰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하는게 사실이다. 게다가 요즘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나 자기계발 책들이 각광을 받고 있기에 책 역시 잠깐의 휴식과 재미를 위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많은 사람들에게 책이란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진 존재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억압된 자신들의 자유를 위한 목소리를 담고, 저항을 위한 정신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책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본의 힘이 더해지고 점점 상업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출판 시장은 베스트셀러들이 지배하고 있고, 그런 베스트셀러는 거의 만들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우린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고 책 읽을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다. 책을 안 읽는 것이 아닌 못 읽는 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아닐까? 아이들은 입시 교육에 포위되고 어른들은 성과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사회에서 일하며 지적 활동인 독서에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모든 정보, 글을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에 점점 더 책의 위상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최근엔 동네 서점이 많이 생기고 인기도 얻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책 구매율은 점점 하락하고 있다. 이런 위기의 독서 문화를 이겨내기 위해 인문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공공기관에서도 강연이나 강좌를 활성화 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다. 나역시 시대의 흐름에 이끌려 몇 번 전자책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적은 있지만 결국은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는 만큼 모두에게 종이책만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옛날처럼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문화가 더 많이 생기고 독서 문화가 더 널리 퍼질 수 있다면 어떤 형태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시대마다 인기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책들을 전부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롭게 출간되는 책들을 읽기에도 벅차 사실 과거의 그 시대를 생생히 나타내주는 고전들을 읽는 것에 소홀하긴 했지만 고전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난 외국 문학을 많이 읽는 편이고 한국 문학은 등한시해 왔었던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통해 알게 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우리의 문학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똑같은 물을 마시고 뱀은 독을 만들고 소는 우유를 만든다’ 는 옛말이 있다. 우리가 하는 독서도 그와 다르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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