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의 영화 - 공선옥 소설집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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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 한국 여성들의 초상집에서 함께 울어주기
우리 어머니들의 아픔과 상실 애도하기

소설은
'남의 초상집에 가서 함께 울어주는 일'
이라고 공선옥 작가는 말한다.

공선옥 작가의 ‘은주의 영화’ 서문에 나오는 글

‘산다는 것은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하고 그 기억이 희미해지고, 또 그런 속에서도 몇 가지는
체로 거른 듯이 잊히지 않아
이렇듯 글로 쓰이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공작가는 우리나라 50대 이상의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여러 단편 소설들을 통해 보여준다.

한 남성 정신분석가가 말했듯
그 시대에는 여성들이 그리
눈에 띄지도 않았단다.
그 시대에는
여자는 나서도 안되고 남자보다 앞서 걸어도 안되고 잘나도 안되고
부엌데기로 한시도 쉴틈 없이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 돌보고
남자 밑에 있어야 했다.
(물론 얼마 전에도 영부인이
문대통령보다 앞서 걸었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보았다.)

어떻게 힘 없는 여성끼리
서로 착취하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여러 단편 중에
'순수한 사람'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약자인 여성이 자기보다 더 약한 여성에게
어떻게 하는지..
여성들끼리의 연대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선 여성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득하다.

단편집 제목이 된 '은주의 영화'는 아프다.
광주 5.18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한번 읽어서는 다 이해가 되지 않고
두번 읽어야 할것같다.
인물들의 아픔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을 묘사하시는 건
권여선 작가의 '레몬'에서 태림의 독백,
박초이 작가의 '남주의 남자들' 책에서
'이름만 남은 봄날'이 비슷했다.

두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소설은
'오후 다섯시의 흰 달'
어린 아들과 아내를 잃고 딸 하나를 키워
시집 보낸 후 홀로 된 아버지의 일상,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모셔 올까,
흰 달처럼 잠깐 품었던 희망이
사라졌을 때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의
아버지 버전이랄까?
물론 줄거리는 전혀 다르다.
손으로 하는 양육이 사람을 소진시키기도,
살리기도 한다.
너때문에 못산다 하는 건 사실
너때문에 산다는 말

'염소 가족'은 몇 남매가 있었던
우리 부모 세대에서
가족이란 어떤 그림인지 보여준다.
주인공이 찾는 건 진짜 염소일까?
자신의 가족일까?
예전에 분석 선생님께서 형제자매가
여럿이면 동물들처럼 서로 경쟁하며
살 수밖에 없다고 하셨던 게 기억났다.
생존이니 어쩔 수 없다.
요즘처럼 자녀가 한둘에서 많아봤자
셋넷하고는 차원이 다른 치열함

막내 여동생이
마지막으로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식사했던 장면을 매번 그리는 것처럼.
우리의 무의식에는
'가족은 행복한 것'이라는
출산 장려 포스터의 이미지 같이
어때야한다는 가족신화가 있다.
현실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그림
그는 과연 염소 가족을 찾을 수 있을까?

'설운 사나이' 를 읽으며 뜨끔했다.
나는 소설 속 학교 선생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서.
미용실을 하는, 책과는 거리가 멀었던
여주인공에게 마음의 양식인 책을
가져다주는 남자 선생
현실감이 없는 그에게 불쑥 화가 올라왔다.
설운 사나이는 인생이 서러워 우는데,
많이 안다는, 책을 읽었다는 그는 왜
혼자서만 무지하고 천하태평일까?
나도 그런 건 아닐까..
대비가 명확해 나는 어느 쪽인가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나는 고상보다는 서러움을 택하리.

'읍내의 개'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든 단편인 것 같다. 짐작만..
그 시대엔 개 같은 인간들이 많았다며.
작가의 마치는 글을 읽으면
누르고 눌렀지만 짧은 문장 안에
뜨거운 화가 느껴진다.
그 시대는 그랬다며,
사람들이 죽어나는 시대인데,
여성이 개같은 남성들에게 물리고 뜯기는게
무슨 대수인가 하는 '은주의 영화' 속
아버지의 어조처럼
작가도 그 시대의 여성들도 전혀
보호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시대를 보면
(불과 20,30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얼마나 기가 차고 얼마나 안도할까.
시대를 잘못 만났다는 맘이 들지 않으실까.
딸을 키워낸다는 게 한결 수월해진 세상,
역시 약자이긴 하지만
의식적으로는 공평해 보이는 세상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을 위해
서럽게 울어주자.

그 시대를 살아주어,
이렇게 살아남아
내 어머니가 되어주어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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