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돼가? 무엇이든 -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이경미 첫 번째 에세이
이경미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가 자는 동안, 읽는데 웃는 소리가 들릴까봐 입을 틀어막고 웃었다.
웃다가 눈물이 날뻔 한 게 몇 번이었던가..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여서 그런지 읽으면서 자꾸 장면이 연상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폭소
자학개그의 달인
아... 자학이라는 단어는 좀 심하다.
작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짠하고 작가 손을 잡아주거나 안아주고 싶은데,(기겁하고 도망가시겠지. ㅋㅋ) 얼굴은 웃음을 참지 못하는 내가 떠오른다.

나에게 영화감독의 삶도 선입견과 거품이 껴있었구나 싶었다.
문소리 감독의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를 볼 때도 여배우에 대한 감동파괴, 이미지관리 포기가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의 생활도 정말 만만치 않구나 싶었다.
이해영 감독과의 대화에도 나오듯 돈이 되어야 하는 일이어야 하는 것이다.
감독도 작가도. 얼마나 고단한 생활인인가.
머리를 짜낸다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게 아닌데, 아침부터 밤까지 이야기를 만들고 고치고 협의하고 수정하고... 그 노동을 몇 년 동안 한 작품만 하고 있다면 중간 중간 치밀어 오르는 자괴감과 의구심, 주변 사람들에 대한 눈치, 가족들의 말없는 지원에 대한 미안함 등.. 그 복잡한 심경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쓰 홍당무(2008)는 손익분기점을 넘은 53만이 최종 스코어
비밀은 없다(2016)는 이전 작품보다 반수에 약간 못 미치는 25만 ㅠㅠ
8년 동안 도닦는 심정으로 만들어 쨔잔 하고 선보인 영화가 개봉 초반에 영화평론가들의 혹평에 산산조각 내듯 깨져 흥행의 참패까지 겪었을 때 심신이 지쳐 무엇이든 그만두고 싶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재능이 없나, 나는 왜 뭐든지 잘 안 되는 걸까, 지금까지 날 지지해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볼 면목이 없다 등등
대체로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감독은 누구에게든 잘 되어가냐고 묻고
특히 스스로에게 괜찮냐고 묻고
운동하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지인들과 술 마시는^^; 등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거기에서 헤엄쳐서 당당히 나왔다.
어떻게 이런 재치있는 말솜씨를 지금까지 묵혀두고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출판사 지인이 알아봐주시고 작가의 혼잣말 같은 메모, 일기를 이렇게 책으로 내주셔서 두 분께 고맙다.

나 힘들었소. 하고 세상만사 산전수전 공중전 겪은 이야기를 정말 눈물 나게 쓰는 건 재미가 없다.

글을 이렇게 가볍고 톡톡 튀게 쓸 수는 없을까?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자책하며
감독님을 따라 하게 된다.

정말 쓰레기 글을 쓰겠어!
너는 왜 이렇게 글을 잘 쓰려고 하는 거야.
다 버리라고. 왜 이렇게 할 말이 많아?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쓰레기라고 쓰다보면 정말 쓰레기가 되는 게 아닐까 ㅡㅜ
아아...
하늘이 이런 재능은 아무한테나 주는 게 아닌가보다 .

작가의 가족 얘기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은 다 필요 없는데, 오로지 아버지만 칭찬해주면 되는데 그 목마름에 꼭 갈증을 더 하게 평가절하하시는 작가의 아부지.
딸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며 구속하고 통제하려 했지만 결국 자녀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라는 진리를 확인만 하신 아부지.

집을 나가신다며 엄포를 놓고 틀니와 부분가발을 놓고 나가신 철저하지 않으신 어머니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딸을 위해 매일 같이 편안하게 자라는 문자를 보내시는 어머니
늦은 결혼을 하는 딸래미가 웨딩드레스 대신 도우미 복장 같은 원피스를 입겠다고 하자 9일 기도에 들어가신 어머니

작가의 진솔한 가족얘기에 뭉클하면서도 미소가 지어졌다.
앞으로 다음 작품 기대해도 되는 거죠?
기다릴게요.

책 마지막에 흑소는 압권이었어요
작가님은 웃픈 상황이 왜 이렇게 많아요?
일부러 그러시는 거죠? 책 쓰시려구
앞으로 무엇이든 잘 되길 진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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