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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플라이트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평점 :
제목, 표지도 의미심장하다.
소설 속 미스 플라이트 에피소드
사소한 실수 하나로 하루 종일 미스 플라이트로 불려야한다는 규칙이 있다면?
조직의 규칙을 지키는지 감시하는 규칙이 또 있다면?
우리가 알려는 진실은 누구에게는 고통이고 어떤 이에게는 생명과 같은 동아줄일까?
진실에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거대한 실체와 그 괴물 같은 크고 변함 없는 조직 앞에서의 무력감
마치 깜깜한 방에서 더듬더듬 진실을 찾다가 불을 켜고 보니 거대한 벽을 마주한 것 같다.
주인공 유나는 승무원으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십여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아버지는 딸이 죽고 나서야 어떤 삶을 살았는지 퍼즐 조각 맞추듯 유나 친구들에게 딸에 대해 듣는다.
아버지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로 유나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군 비리, 직장 내 노조, 군대 안의 일상적인 폭력, 밥벌이 앞에서 초라해질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비애, 친구를 가장한 동료들
실타래로 이루어진 관계인 우리는 연결되어 있고 그 누구든 가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유나, 혜진처럼 희생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모호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소설을 읽으면서 공지영 작가가 떠올랐다.
공지영 작가는 어린 시절 유복했기에 대학 시절 자진해서 공장에 들어갔다.
소설 속 유나는 모든 것이 넘쳐 흘렀기에 결핍을 몰랐고, 군대문화 속에서 자랐기에 자유와 민주주의로 상징되는 광주에 그토록 가고 싶어 했다.
우리가 중력 없이 살아갈 순 없지만,
중력 이론을 모른다고 죽진 않는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돈이 움직이는 원리를 모르고는 살아남기 힘들다.
돈은 힘이 세서 우정, 생명, 자존심, 인간다운 존엄성을 종종 아니 자주 이긴다.
유나가 꿈꾸는 중력 체험은 체험장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영훈이 바랐던 평등한 사회는 자본주의 안에서 발 붙이기 어렵다는 것을
모두 늦게 깨달았다.
이 책과 이혁진 장편소설 <누운 배>,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서 느껴지는 우리 사회는 개인이 윤리와 양심을 지키기 어려운 직업환경에 놓여 있다.
그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거대한 직장에서 부속품처럼 일하다 빠져나오게 된다.
소설 속 한국 사회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집단주의, 학연 지연 맺는 연고주의, 서열, 학벌 중심
눈치, 정, 경계 침범, 체면 문화
실수나 실패가 허용되지 않음
관용이 적음
신뢰감 낮음
책에서 유나가 자신의 남자친구 주한이 군대 다녀오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군대를 다녀오는 것도 사회 속 남성들의 서열화를 굳히고 군 안에서의 폭력이 일상에서의 폭력에 둔감하게 한다.
중력을 거슬러 물에 뜨고자 했던 유나는
애써 웃는 가면을 쓰고
혼자 안간힘을 쓰며 중력을 벗어나려 했다.
원래 운동신경이 별로 없는 자신을, 중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기보다 어떻게 해서든 이상과 현실을 몇 센티라도 가까워지게 하려고.
외로웠겠다..
유나 옆에 누군가 있었다면, 아니
웃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줬더라면, 애쓰지 않기를 바란다고 얘기해줬더라면...
현실에서는 유나 같은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