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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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 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나쓰메 소세키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한말이다.

사람이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정신적 상처를 지니고 살겠지만, 그 상처가 삶에 영향을 주고 심리적으로 불안을 일으키게 된다면 이를 트라우마라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고등학교 때 절친했던 친구들에서 버림받으며, 그 정신적 상처로 인해 노이로제와 우울증에 시달리며 죽음에 문턱에 까지 이른다.

16년 뒤 여자 친구를 만나 자신을 버렸던 친구들을 만나보라는 권유를 듣고, 친구들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게 되는데, 그 과정을 통해 다자키 쓰쿠루는 아무런 색채도 특징도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였음을, “시로”를 위해 그가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버림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진실을 알아가게 된다.

 

고독함과 외로움, 소외라고 하는 현대인들의 내면을 잔잔한 문체로 잘 그려내는 하루키는 다자키 쓰쿠루의 내면을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써 상처받은 인간의 내면과 그 극복을 통한 삶과의 화해를 묘사해 나가는 데, 그의 전작들처럼 시공간을 넘나든다든지, 극적인 반전이라던 지하는 요소는 부족하지만, 그런 면들이 오히려 현실에 가까운 소설을 만들어 낸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곳곳에 지뢰처럼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던져 놓은 이야기들, 친구 하이다의 등장과 하이다의 아버지의 사람의 빛과 죽음이야기, 프란츠 리스트의 음악 “순례의 해”, 시로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과 실제 범인의 의혹 등은 하루키의 전작들처럼 어떤 반전을 예비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의혹으로 끝날 뿐 결론은 없다.

그것들이 전작들처럼의 반전을 기대한 이에게는 실망을 안겨준 것 같고, 나 같은 비현실적 반전보다는 잔잔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호평을 얻기도 하는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떠올라서 책상 앞에 앉아 이 소설의 맨 처음 몇 행을 쓰고는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인물이 나올지, 어느 정도 길어질지, 아무것도 모른 채 반년 가깝게 이 이야기를 묵묵히 써 왔습니다.” 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처럼 어떤 것을 계획하고 쓴 것이라고 보다는 쓰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지 않았나 하는 데, 그래도 이런 소설을 써 낼 수 있다는 것은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색채와 순례라는 제목이 들어간 마치 무슨 서사시의 부제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은 자아와 이드, 초자아등 사람의 무의식을 꿈을 통해 분석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데, 어쨌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꾸루가 순례를 통해 색채를 찾은 소설로, 자신의 정신적 상처의 원인이 무엇이든 그것을 대면하고 극복할 때 껍질을 벗듯 한 단계 성숙한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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