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와 올리브나무 - 세계화가 불러들인 기회와 위험 Nous 6
토머스 L. 프리드먼 지음, 장경덕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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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온지가 10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주요 소재가 1998년 즈음이다.
우리나라의 IMF금융위기 시절이다. 그래서 전망도 그 수준에 맞춰져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 책을 읽었을까..
이책을 알게된 계기는 우연한 기회에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 책에 대한 소개가 있는데 나는 기본지식이 없어서 찾아보았다.

예전 같으면 다양하고 해박한 지식에 감탄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는 누구나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토마스 프리드만이 일부 소개한 인터넷때문이다.
거기에는 수많은 정보가 있기에 지식의 다양성이나 해박함은 크게 의미가 없다.
그래서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성공하는 리더나 조직의 속성에 대해서 강의에서 소개한 것을 언급하면..변화작응속도, 신지식의 확보, 유연성, 개방적 사고, 깨어 있는 것,
강약점의 인지, 네트워킹 능력 등이다.
다 좋은 말이다. 어쩌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사례분석의 함정이나 패러독스 일 수도 있다.

책을 덮었을때 이 책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러시아 농부의 소원이다.
이 스토리의 기원은 고르바초프가 미 국무장관 베이커에게 조크로 들려준 말이다.

농부가 밭을 갈다가 램프를 발견했는데 램프를 문지르니 요정이 나타났다.
그래서 농부는 요정에게 말햤다.
"나는 소가 3마리 뿐인데 이웃 이고르는 10마리나 갖고 있어"
요정이 답하길 "그럼 소를 20마리 갖고 싶다는 말이죠?"
농부는 아니라고 하고 말했다.
"이웃 이고르네 소 중에서 7마리를 죽여줘!"

이는 우리 저변에 퍼져있는 하향평준화요구와 맞물려 많이 오버랩된다. 우리 국민에게 흐르는 정서는 자본주의적인지 공산주의적인지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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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장자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37
김정빈 글, 김덕호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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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사상은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가 중후반에 들어서는 사람에게 인생을 어느정도 살아보고

다시한번 되새기는 입장에서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사상이다.

 

장자는 도덕경보다도 우화형식으로 되어있어서 훨씬 더 재미있다. 그리고 번역한 분들 사이에 차이도 별로 크지 않다.

 

일반적으로 장자는 내편, 외편, 잡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중 내편이 장자의 핵심사상을 담은 것이라 하고, 나머지는 거기에 파생된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국내에 소개된 장자의 여러 번역서들도 대부분 내편만 소개하고 장자라 명하여 책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내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계함이라는 무당이 나오는 응제왕편이다. 만화장자에도 내용은 그대로 소개되어 있다. 다만 전달하는 메시지가 다소 약함이 아쉽다.

소개대상이 청소년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편 내용 중 다소 빠진 것이 있어서 차라리 내편을 가지고 전체 지면을 할애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지만, 역시 만화 장자도 독자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잘 작성된 책이라는 점에서는 동의를 한다.

 

이런 고전들은 사실 한 번 보고 끝날 일이 아니다.

그때 그때 느끼는 감이 다르다. 그래서 두고 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이번에는 외편에서 나오는 내용으로

"쇠 갈고리를 훔친자는 목을 베이지만, 나라를 훔친자는 제후가 된다.

그런 제후에게 인의가 있다면 그것은 곧 인의가 도둑질이 아닌가?"는 말이

나의 귓전을 때린다.

 

그리고, 역사는 정의로운 것이 아니고 살아남은자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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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 2006년 개정판 SNUP 동서양의 고전 20
김학주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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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주 교수의 중용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가진 입장으로는 보기에 편하다.

중용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나, 원문 및 한자, 설명 등이 지나치게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다.

그야말로 중용이다.

 

중용은 여러차례 다른 책으로 보아왔지만

이번에 이책을 보면서 눈에 들어온 것은 아래와 같다.

 

중용 20장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이다.

 

人一能之己百之,人十能之己千之。

果能此道矣,雖愚必明,雖柔必強。

남이 한번해서 그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면, 자기는 그것을 백번하고,

남이 열번해서 그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면, 자기는 그것을 천번한다.

과연 이러한 도를 실천할 수 있다면

비록 어리석다 하더라도 반드시 총명해질 것이며,

비록 여리고 약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

 

머리가 안돌아 간다거나 나쁘다고 절망할 필요가 없다.

매사에 이와같이 대한다면 몸이 자신의 천성을 넘어 설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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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42
김면수 지음, 정상혁 그림, 손영운 기획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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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철학자이지만 보통 철학자와는 다르다.

독특한 삶을 살았으며, 저서 또한 철학서인지 문학작품인지 경계가 불분명하다.

오히려 문학작품에 가깝다고 느끼는 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사실상 내가 보기에는 

청소년이 읽고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쩌면 성인도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래도, 만화로 제작을 하여 다른 책보다는 이해하기가 수월한 편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그 진정한 의미는

인간이 신의 환상을 쫓지 말고 인간 자체에 되돌아가 초인을 추구하면 될 것이다.

초인이란 독일어로 위버멘쉬, 영어로 수퍼맨, 오버맨이라고 하는데...

사실상 초인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오히려 위버멘쉬라고 하면 그 의미가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학자들은 그렇게 부르고 싶다니 이상하다.

이전에 백승영 교수도 위버멘쉬가 더 적절하다고 한 적이 있다.

사실 초인이나 장자에서 나오는 지인의 의미를 폭넓게 적용하면 될 것을 애매한 독일어를 적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제10장 위버멘쉬 마지막에 적절히 정리를 해 두었다.

1. 각자 스스로 기꺼이 몰락하면서 자기 자신을 극복해 나갈 것

2. 그리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지의 삶에 충실할 것

3. 힘에의 의지, 그 자체가 될 것

4. 편협한 이성을 넘어 육체와 정신을 더 높은 단계로 고양하는 신체를 가질 것

5. 절대적 도덕, 즉 선과 악을 넘어서는 가치를 스스로 평가할 것

6. 앞에서 말한 자기 극복의 과정을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놀이하듯 즐길 것

7. 결국 이 모든 차라투스트라의 충고는 '삶에 대한 사랑'임을 명심할 것


니체가 얘기하는 낙타가 사자가 되고 사자가 어린아이가 되는 변신의 과정에서 

어린아이에 대해 고민을 해볼 수 있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초인일 수 있는지 그 의미를 되 새길 필요가 있다.

어린아이는 실로 성인에게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한다.

아마도 어린아이는 허상을 쫒지도 않을 것이고, 거기에 의미도 두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자연스러운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인간...거기에서 진리를 찾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린아이에 대하여 느끼는 의미는 각자가 다를 것이다.


이 책은 자아의 정체성에 대해 혼돈을 느끼는 성인이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적합하다고 느껴진다.

자기의 주체적인 삶을 사는 확실은 답은 아니지만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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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품격 -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이기주 지음 / 황소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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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를 읽고 말의 품격을 보았다.
말은 말로서 품격이 있는 것이아니라 자신의 품성이 녹아있어서 말의 이상의 의미를 주는 것 같다.

어쩌면 말은 현란한 레토릭보다는 담백하면서도 간결한데서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그래서 어쩌면 말을 잘하는 기술은 따로 배울 필요가없다.
그 이전에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면 말은 저절로 그 인격에 따라간다.

국어를 잘 못 구사하는 사람이 외국어를 잘 할 수 없다.
그것은 언어라는 것은 상위수준으로가면 결국 하나로 합쳐지기 때문이다. 말 이전에 인격이나 컨텐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용이라는 말이 있다.
모자라는 사람은 모자라기 때문에 중용의 덕을 실천하지 못하고
잘난사람은 잘난 꼴값하느라 중용의 덕을 놓치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겸손해지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이것이 마찬가지로 말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조금 알면 잘난체 하고 싶어진다.
이는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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