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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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고도로 농축된 달달함과 사랑으로 인해 심장이 짓눌리는 느낌. 밀도 높은 진심에 익사할 것 같다.

환경주의자들은 지구에 못해도 5억은 살고 있겠지만, 한아는 지구에서 하나뿐이다. 지구에서 하나뿐인 한아를 만나기 위해 전 재산과 자유여행권을 버리고 2만 광년을 날아온 경민. 다음생에도 사랑할 거라는, 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지키지 못하는 약속을 정말로 실현하는 사람들.

패스트 패션에 반대하며 지구를 사랑하는 옷가게를 운영하고, 비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도에서 사라질 예정인 몰디브와 베네치아 중에서 여행지를 고민하는 등장인물들이 당시의 내겐 꽤나 새로웠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던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행동의 변화를 이끈다. 이 책을 읽고 환경주의자가 되기를 결심했다. 채식을 시작했고,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텀블러와 손수건을 들고 다니며, 배달음식을 완전히 끊었다. 나를 포함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였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평생을 단단한 신념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한아를 보며, 그가 참 반짝인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신념에 가득 차서 말 할 때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좋아했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삶의 목표 중 하나. 아마 한아가 내 주변에 있는 실존 인물이었다면 내 롤모델이 됐을 것이다.

앞으로 약 8만년은 더 우주를 여행할 그들을 위해 행운을 빌어주고 싶다. 망원경으로만 바라봤던 행성들에 직접 방문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겠지. 얼음 무당벌레들도 만나고, 지구와 비슷한 행성에도 가 보고, 광합성인들의 행성에도 방문하며. 끝나지 않을 그들의 이야기를 응원한다.

"그거 알아? 내가 너한테 반하는 바람에, 우리 별 전체가 네 꿈을 꿨던 거?" - P101

"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 P118

"말 그대로 스타라니까. 중력이 없으면 스타겠어요? 벗어날 수 있었으면 나도 다르게 살았지." - P119

"네가 내 여행이잖아. 잊지 마." - P137

알고 보니 우주의 고래형 지능체들은 지구의 고래들을 매우 걱정해서, 그들을 돕기 위해 무슨 단체인가를 만들었다고 한다. - P151

강한 집단 무의식 때문에 경민이 한아를 사랑하면, 그 별 전체가 한아를 사랑한다고 했다. 한아 역시 어째선지 우주를 건너오는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 P154

경민은 한아만큼 한아의 신념을 사랑했다. 한아의 안에도 빛나는 암석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 P172

그렇게 푹 자고 깨어나면, 따뜻한 바다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수영을 하고, 그늘에서 몸을 말렸다. 어깨에 입맞출 때 짭짤한 소금기가 느껴졌다. 커다란 오렌지 사탕 같은 태양이 지는 시간에 입안에 남은 소금기에 끌려 데킬라를 희석시킨 칵테일을 마시러 갔다. 밤늦게 돌아가며 키스하면, 연인의 입술 사이에 우주가 있었다. - P181

돌아오고도 한참 동안,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 꺼내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는 건 좋았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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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윤이형 외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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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이라는 키워드만을 가지고도 이렇게 저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다니, 작가들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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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윤이형 외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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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 전시회이다. 꼭 가고 싶던 전시였고 3번 정도 시도했으나 결국은 못 갔다.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 7명의 작가들이 ‘광장’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쓴 단편 소설을 모은 소설집 『광장』을 전시장에서 살 수 있다고 한다. 김초엽 작가도 참여했다길래 꼭 사고 싶었는데, 다행히 인터넷으로도 구할 수 있었다. 포장을 뜯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표지 디자인이 참 예쁘다는 것이었다.

최인훈의 『광장』은 고등학생 때 수능을 위해 배웠고, 대학 신입생 때 독서토론 도서로 읽고 토론했다. 또한 2학년 때 문학 교양 수업에서 배우기도 했다. 여러 번 읽고, 토론하고, 서평을 쓰고, 텍스트 하나하나를 뜯어가며 배우고 시험공부를 했기에 내겐 너무나 익숙한 소설이다. 이런 말을 해놓고 밝히기는 조금 그렇지만 사실 난 『광장』이라는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작중 여성 캐릭터의 취급이 이별 또는 죽음으로써 남자주인공에게 변화의 계기를 주는 사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각기 다른 작가들의 단편을 읽으며 최인훈의 『광장』 이야기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광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읽었다. 기대는 반 이상 충족된 것 같다. ‘광장’이라는 키워드만을 가지고도 이렇게 저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다니, 작가들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좋았던 단편은 역시 김초엽 작가의 소설이다. 애초에 책을 사게 된 계기 중 하나도 김초엽 작가였기 때문에, 책을 받자마자 김초엽 작가의 「광장」을 가장 먼저 읽었다. 결과는 역시 대만족이었다. 이외에도 윤이형, 김혜진, 이장욱 작가의 이야기도 내 취향으로 마음에 쏙 들었다. 끝부분의 해설도 모든 작가의 소설을 두 페이지 이상의 분량으로 적어 놓았고, 마지막의 출간의 말까지 읽고 나니 이 전시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정성을 쏟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가지 못한 전시가 평생 아른거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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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SF #1
정소연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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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드러나듯 SF에 충실하다. SF 소설과 영화를 리뷰하고, SF 작가를 인터뷰하고, SF 소설을 실었다. 좋아하는 작가들이 여럿 참여한 소설도, 좋아하는 작가를 인터뷰한 것도, 칼럼도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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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SF #1
정소연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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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최고 관심사는 SF이다. 김초엽, 정세랑, 듀나 등 SF작가들의 이름을 검색하던 차에 이 셋의 이름이 모두 실린 책을 발견했다. 바로 『오늘의 SF』 창간호였다.

『오늘의 SF』는 일종의 무크지이다. ‘무크지’란 ‘잡지’를 뜻하는 ‘매거진’(magazine)과 ‘책’을 뜻하는 ‘북’(book)이 합쳐진 말이다. 『오늘의 SF』의 구성은 에세이, 비평, 단편소설, 인터뷰, 칼럼, 리뷰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이 실려 있는 잡지와 같다. 하지만 대부분 상대적으로 얇고 표지가 큰 일반적인 잡지와는 달리 300 페이지가 넘는 일반적인 책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책을 받았을 때 특히 놀랐던 점은 원서처럼 가벼운 것과 검은 면과 흰 면이 있다는 것이다. 중학생 때 국어 교과서에서 책에 대해 소개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대다수의 한국인은 흰 종이를 선호하기 때문에 책을 만들 때 종이에 탄산칼슘을 섞어 종이를 하얗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책이 무거워진다. 허나 『오늘의 SF』는 외국의 원서처럼 가볍기 때문에 들고 다니며 읽기에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책에는 검은 바탕에 흰 글씨가 적힌 페이지가 있는데, 소설이 실린 부분이다. 비문학은 흰 면, 문학은 검은 면에 글을 실었다고 한다.

『오늘의 SF』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SF에 충실하다. SF 소설과 영화를 리뷰하고, SF 작가를 인터뷰하고, SF 소설을 실었다. 거기다 장애인권, 페미니즘 등 SF라는 장르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런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 이야기한다.

좋아하는 작가들이 여럿 참여한 소설도, 좋아하는 작가를 인터뷰한 것도, 칼럼도 재밌게 읽었다. 다만 내가 알지 못하는 작가, 감독을 소개하거나 읽어본 적 없는 책에 대해 말하는 글을 읽을 때는 쉽게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 글들은 따로 표시해 놓았다. 후에 다시 읽는다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영원한 밤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바로 반대편에 영원한 낮이 있었다니.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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