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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글쓰기 - 글과 생각이 깊어지는 웹 2.0시대의 글쓰기 매뉴얼
김봉석 지음 / 바다출판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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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다.” p12


저자 김봉석은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나와 한겨레, 씨네21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현재는 만화 없는 만화 웹진 「에이코믹스」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사학과와 만화라니 얼핏 잘 연결이 되는 조합은 아니지만 뜨거운 가슴을 가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세상을 재창조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세상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p24


학창 시절 문학 동아리에서 비평 공부를 했고, 기자 생활을 거친 그에게 글쓰기란 물과 고기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반석처럼 기초가 탄탄한 글쓰기를 위한 기본을 제시한다.


‘보편타당한 진리를 찾기 위한’ 철학이 가장 먼저 온다. 글쓰기란 결국 남을 설득하기 위함이고 그러기 위해선 본인만의 확고한 세계관이 있어야 하며 이 세계관의 구축에 필요한 게 철학이니 일견 타당하게 보인다.


그다음으로 경제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거칠게 설명하자면 돈을 쥔 이에게 권력이 흘러가는 경제 체제임으로 돈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서야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정치·사회적 사건을 이해하기 어렵다.


마지막은 역사다. E.H. 카가 역설했듯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역사가가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과거를 이해하고 다뤄야 한다’면 현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역사에 대한 기초적 이해와 독자적 관점은 필수 불가결하다.


이처럼 글쓰기의 기본을 강조한 저자는 방법론 총론으로 들어간다. 자기만의 세계관 확립, 일기와 편지 같은 일상 글쓰기와 풍부한 지식을 쌓기 위한 다독을 권한다. 다들 알 만한 내용이지만 핵심을 찌르는 설명과 다양한 예시를 통해 지루함을 덜어 낸다.


“사춘기처럼 감성이 아주 예민할 때 무엇인가를 접하고 받았던 충격의 거대함만을 떠올린다면 무엇이나 부족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세파에 찌들어 점점 예민한 감성과 기민한 통찰력을 잃어가는 자신이다.” p59


이와 같이 성인 독자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경험으로 논리에 힘을 보태며 구체적 방법론 각론으로 넘어간다. 각론은 문학부터 시사까지 각 분야 비평을 망라하는데 구체적 사항은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비평 입문서라도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필요하다 싶은 구석은 다 짚고 넘어간다. 또 저자 본인만의 생각이 아니라 다양한 작품의 이야기와 구조를 빌려 와 분석하고 각 장 마지막에는 직접 작성하고 각종 매체에 기고한 비평문 예시까지 담겨 있어 비평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를 더했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부터 필요한 교양 쌓기, 기초 체력 다지기, 비평 각론까지 책의 구성과 흐름까지 좋아 앉은 자리에서 술술 읽힌다. 개인적으로 책이 잘됐는지 보는 기준 한 가지가 바로 ‘제대로 된 인용을 하는가’인데 학술 서적만큼 자세하진 않아도 대략은 알아 볼 수 있게 해 놓았고 책 말머리에는 작가 추천 도서까지 마련돼 있다. 원한다면 더 자세한 책으로 넘어갈 수 있는 발판 같은 책이라 상당히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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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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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KTX 여승무원 정규직 전환 문제’를 놓고 한 대학생은 이렇게 외쳤다. 처음부터 비정규직이라고 알았고, 어려운 시험 쳐서 들어가지도 않았으면서 언감생심 정규직을 넘보느냐는 준엄한 일침이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피 끓는 시절의 대학생이라면’, ‘진보 코스프레’라도 하려는 시기가 아니냐는 말과 함께 그 당위성을 설파한다. 또 ‘현재 이십대가 처한 상황이나 KTX 여승무원들의 처지나 피차 마찬가지’이지 않느냐며 자신의 안락한 미래를 위해 파업에 대해 ‘동병상련’의 입장에 서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내세운다.

이렇게 1장에서 생긴 문제의식, ‘왜 20대는 괴물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 분석이 책의 나머지 장을 채운다. 자기계발서의 함정에 빠져 ‘스펙 쌓기’로 대변되는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짓에 놀아나고, 수능점수를 신성시하다 ‘대학서열에 대한 무모한 집착’에 빠지게 됐다는 주장이 뒤를 잇는다. 이런 논리는 일부 타당하지만 다양한 각도에서 비판을 면할 길이 없어 보인다.

자기계발서의 함정, 즉 개인의 실패는 노력 부족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헛된 믿음’이 주류가 된 가운데 이에 저항하는 목소리는 왜 미미하냐고 저자는 묻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율은 이미 사회적으로 고정되다시피 했고 가까운 미래에 바뀌기도 요원한데 아무리 애쓴들 어차피 정규직에 입성하지 못할 -일부 의자뺏기 게임의 성공자 이외에는- 모두 들고 일어나야 하지 않을지 궁금할 수도 있다. 하지만 『88만원 세대』에서도 지적되었다시피 이는 간단한 게임 이론 –그중에서도 죄수 이론- 으로 설명가능하다. 즉, 현재의 이십대 모두가 들고 일어서는 것이 최선이지만 일부라도 배신하는 순간 그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므로 다들 최선이 아님을 알면서도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택하게 된다는 말이다.

수능점수로 대표되는 ‘학력위계주의’에 대한 맹신이 유독 이십대에서 지나치다는 3장의 논지에도 의문이 든다. 이런 주장이 가능하려면 이전까지는 학력위계주의가 없었거나 적어도 덜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한데, 한국전쟁 이후 그런 현상이 한번이라도 목도된 적이 있었는지 반문해 보면 자연스레 모순이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아직 ‘서울대 신드롬’이라 불리는 학벌주의에서 제대로 벗어나 본 적이 없으며 이전 세대에서 그런 경향이 더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았다는 측면을 고려해 보면, 대학 진학률이 높아진 만큼 대학 사이의 경쟁 밀도가 심해진 것을 가지고 이십 대가 ‘학력위계주의’에 빠졌다는 고발은 원인과 결과를 착각한 게 아닌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경쟁 심화 현상은 왜 유발되었을까?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제한되게나마 이에 대한 답변을 제시한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리 없기’ 때문에 현재 행복한 것이라고 한다. 이를 뒤집어 보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내일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불행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지금은 불행하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한국의 젊은이들은 노력을 멈추지 않으며 다 같이 아프리카의 ‘스프링폭스’가 되어 절벽으로 달려간다. 일본의 사회 문제가 한국에서 10년 후 되풀이된다는 속설을 믿는다면 ‘일본의 아이들은 왜 필요한지 알려주지 않으면 히라가나조차 배우려 들지 않는다’고 탄식한 『하류지향』이 쓰인지 10년이 지난 2017년쯤에는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노력과 성과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부조리에 다들 눈을 뜰 것이라 본다.

또 하나의 문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십대를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 자체다. 이는 담론 형성에는 유리한 측면이 있으나 스스로를 현실에서 괴리시키는 약점 또한 존재한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도 ‘젊은이론은 젊은이의 이름을 빌려 쏟아 낸 사회 비판이 아니었을까?’ 라는 말을 통해 이를 통렬하게 지적하는데, 고민해 볼 지점이다.

세대론을 설파하는 책이 으레 그렇듯 이 책 또한 결론내기에서는 한 발짝 물러나는 스탠스를 취하는 점도 아쉽다.

‘사실 어떤 현상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논할 때 “그래서 대안이 뭔데?”라고 묻는 건 문제제기 자체를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p194


저자는 직접적으로 이런 논지를 펴며 해결책 제시는 회피한 채 과열된 자기계발과 희망 없는 희망론에 대한 경계를 주문한다. 물론 이런 복잡한 사회문제를 학자가 분석만 잘하면 되지 정치인의 역할인 해결책 제시까지 하라는 것은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는 막무가내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틀릴지언정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처럼 ‘기성세대가 양보하라’, ‘20대에 창업하라’는 식으로 무언가 내놓기는 해야 독자들도 속 시원히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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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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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유숙자 옮김 / 민음사 2002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옆 나라에 사는 우리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대작가이다. ‘전통적인 일본의 아름다움 속에서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창조’한 것으로 유명하다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하는 편이 이해가 빠를지 모르겠다. 13년에 걸쳐 한촌 에치고유자와에 머물며 작품을 써내려간 가와바타에게 설국雪國의 자연 경관과 계절 변화는 한없는 영감을 주었으리라. 휴양 덕택인지 《설국》의 문장은 도처에서 총총히 빛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는 첫 문장은 워낙 유명해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다.


“처마 끝 작은 고드름이 앙증맞게 빛나고 있었다.” p46
“개울을 따라 이윽고 너른 벌판으로 나오자, 신기하게 깎아지른 정상으로부터 완만하고 아름다운 사선이 멀리 산기슭까지 뻗어내린 능선 위에 달이 떠올랐다.” p76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문장 또한 봄바람처럼 기분 좋게 독자의 마음속에 스며든다.

탐미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는 평가를 받는 《설국》답게 주인공 시마무라는 예술가적 삶에 경도된 인물로, 속세의 일에는 고고한 선비처럼 무심하다. 그런 시마무라가 요양 차 지내는 산촌 여관에서 게이샤 고마코와 만나고, 이들 사이에 마을 처녀 요코가 낀 사랑의 삼각관계가 주요 스토리다.

발랄한 고마코과 정숙한 요코는 제각기 저만의 매력으로 반짝인다. 시마무라가 둘 다에게 빠졌다고 한들 크게 탓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시마무라의 감정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고마코와는 오래된 친구처럼 천천히 감정을 불사르는 데 비해 요코와의 관계는 강렬하며 순간적인 정열과 같이 그려진다.

고마코와의 첫 만남에서 그는 그녀가 깨끗하다고 적는다. 때묻지 않는 동기童妓의 순진무구함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을까. 그러나 그녀의 순진은 몇 번에 걸친 만남 속에서 흐려지고, ‘현실’의 평온과 안정만 남는다. 속세에 허무를 느끼는 시마무라에게 이는 오히려 싫증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반대로 요코는 첫 만남부터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에 ‘서늘하게 찌르는 듯한 처녀의 아름다움’이라 표현할 만큼 그에게 예술적 감상을 느끼게 한 듯하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안타까움 또한 애절한 감정을 더 끓어오르게 했으리라. 한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유키오와 함께 등장하는 첫 장면은 불안한 엔딩을 예고한다.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헛수고, 무상, 허무를 시마무라는 계속해서 언급한다. 가와바타는 예술은 현실 또는 실생활과 무관하기 때문에 비로소 온전히 예술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본 것으로 생각된다. 시마무라는 고마코가 옹색한 촌구석에 있으면서도 일기를 쓰고 소설을 읽으며 샤미센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데서 매력을 느끼고, 이미 죽고 없는 유키오의 무덤을 매일 찾는 요코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동한다. 그가 일본인에 의한 서양무용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현실과 지극히 유리된 ‘서양에서 공연된 서양무용’에 대한 비평만 한다는 점에서 ‘헛수고여야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는 더욱 두드러진다.

작품 내내 감지되는 죽음의 기운은 일본 특유의 미의식인 ‘모노노아와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전적 의미는 ‘자연과 인생에서 나타나는 순간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깊고 애절한 이해’ (1) 라는 뜻인데,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들이 스러져 가는 것을 지켜봄으로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 변화를 예술적 감각으로 승화시킨 것을 말하는 듯하다.


‘억새군요’ 하고 시마무라는 한번 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고는,
‘그렇다면 산에 핀 건 억새로군요, 싸리꽃인 줄 알았습니다’
시 마무라가 기차에서 내리자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이 산의 흰 꽃이었다. 경사가 가파른 산 중턱에서 정상 가까이 사방 가득 흐드러지게 피어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산 위에 쏟아져 내리는 가을 햇살을 방불케 해, 아아, 하고 감동에 젖었던 것이다. 그걸 흰 싸리로 알았다. p80


여기서 가장 큰 차이는 억새는 다년생 식물이며 싸리꽃은 한해살이 식물이다. 무의식중에서도 시마무라의 미적 감각은 죽음을 향해있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이는 엔딩에서 나오는 요코의 죽음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요코가 떨어진 2층 관람석에서 나무기둥이 두세 개 무너져내려 요코의 얼굴 위에서 타올랐다. 요코는 그 찌르듯 아름다운 눈을 감고 있었다. 턱을 내밀어 목선이 길었다. 창백한 얼굴 위로 불빛이 흔들리며 지나갔다.’ p151


아름다운 요코를 향해 끓어오르던 시마무라의 감정은 모노노아와레로 완성된다. 몸으로 이어진 고마코와의 현실적인 삶에 비해 손에 닿지 않는 예술의 세계에 존재하던 요코의 죽음이야 말로 시마무라의 감정을 최고로 고조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요코의 죽음으로 끝이 나는 엔딩은 그 후 시마무라의 감정이 어떠했을까는 침묵하고 있으며, 이러한 절제된 표현이 작품의 예술미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가와바타는 현실이란 인간의 짧은 생은 찰나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남는 건 예술만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 내에서 ‘헛수고’로 치환된 예술과 인생의 관계를 《설국》을 통해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문학 인생에 더 이상의 성취는 없으리라 믿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찰나에 불과한 생에 미련을 가질 필요도 없을 터, 가와바타는 1972년 가스 자살로 삶에 마침표를 찍는다.


1. 사진 통계와 함께 읽는 일본 일본인 일본문화, 2011년 9월 5일, 정형, 다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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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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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쯤 어떤 ‘사건’이 있었다. 도쿄 내 목조건물 2층에 살던 남자가 방에 잡지를 대량으로 쌓아두다가 바닥에 구멍을 내버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기인奇人이 있느냐고 웃어넘길 일이지만 저자 오카자키 씨에게는 남 이야기가 아니다. 몇 권인지 모를 장서를 쌓아둔 그에게는 언제쯤 다가올지도 모르는 현실의 이야기. 장서가들끼리 만나 서로 상대 이야기인줄 알았다는 농담은 그래서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한다는 이야기가 “책은 생각보다 무겁다. 2층에 너무 많이 쌓아두면 바닥을 뚫고 나가는 수가 있으니 주의하시길.” 이라니 책 줄일 생각보다 ‘2층에’는 쌓지 말라는 충고가 지극히 희극적이다.

장서가에게 책을 떠나보내는 것은 괴로울 터이다. 저자는 그것을 “제 손으로 키운 송아지를 떠나보내는 낙농가의 심정”이라고 표현하는데, 얼치기 독서가인 나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으니 그와 같은 장서가에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집에 있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오거나 서점에서 다시 사오는 일’이나 ‘같은 책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또 사는 지경’라면 분명 바닥을 뚫을 정도가 아니라도 정리의 필요성이 있기 마련이다.

정리의 필요성을 강조하려는지 모르지만 중반은 장서가들의 이야기로 담담하게 채워진다. 비평가 다니자와 에이치의 장서의 역사로 시작해 책이 불타버린 불행한 이들로 넘어가더니, 급기야 사람이 아닌 ‘책이 사는 집’을 세운 네기시 데쓰야 씨 연대기까지 나온다. 책 정리의 필요성을 그리도 꼼꼼하게 주장하던 저자가 네기시 씨의 개인 도서관 건축 이야기를 어린 시절부터 세우게 된 계기, 건축가 물색, 준공에 마지막으로 반성할 부분까지 시시콜콜하게 다루는 걸 보니 아무래도 본인 또한 비슷한 계획을 세운 적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건물을 세울 정도의 경제력은 역부족이라 그래서인지 몰라도 저자의 시도는 다른 방향으로 발휘된다. 트렁크 룸을 빌려서 책을 보관하다 끝내 헌책방을 열고야 만 도미나가 쇼이치 씨는 그렇다 치고 집 한편이 기울 정도로 책을 수집하다 자취(북스캔)으로 돌아선 시미즈 데쓰오 씨가 등장한다. 하지만 본인 입으로 ‘컴퓨터는 먹고 살기 위한 도구’라고 단언하며 구글 지도 프린트도 못해 손으로 그린다는 저자가 그런 융통성을 과연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그 근거로 ‘남자는 수집하는 동물’이라 ‘수렵 시대의 DNA’에 ‘왕국을 통솔하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며 수집욕을 정당화한다.


“수집을 통해 수집된 물건으로부터 자신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고 생각의 방향성을 얻는 일이 종종 있다. 사람은 스스로 목적을 알 수 없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물건을 수집하기 시작하지만, 수집한 물건은 언젠가 언어가 되고 문맥이 되어 사람을 지혜로운 길로 이끈다. 자신도 분명히 알 수 없는 어떤 호기심이 지혜의 결정체가 되어 간다.” 170p


이 대목에 이르면 ‘남자의 수집욕’에 대해 앞에서 구구절절 하던 설명이 이 한마디로 정리되면서 가족의 잔소리에는 이렇게 대항하라는 친절한 충고까지 잊지 않는다.

그렇지만 저자 자신은 지나친 장서욕이 좋지 않다는 사실 자체는 이해하고 있어 ‘적당한 장서량은 500권’라고 슬며시 고백하며 ‘올바른 독서가’의 자세를 역설한 요시다 겐이치 씨를 인용한다. 500권도 그냥 500권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엄선되고 적절히 순환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인다. 뒤에 따라 나오는 도서관 이용법과 함께 새겨들을만한 이야기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장서가의 달곰씁쓸한 회고록에만 있지 않다. 일본문학에 관심 있어도 들어보지 못했을 작가들의 이름이 덤불 속 보석처럼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온다. 그 중에는 번역되지 않았을 법한 이름도 제법 있어 일본문학에 관심 있는 이라면 한번쯤 훑어봐도 후회 없을 책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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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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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놓치곤 한다. 지금 하는 일을 왜하고 있는지, 무슨 가치가 있는지를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대뜸 코웃음부터 치지 않을까. “지금 당장 이걸 하지 않으면 나중에 어쩌려고 그래요. 인생 참 모르시네.” 하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입시, 토익, 취업, 결혼, 육아, 주거, 은퇴, 노후. 영원히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와 같이 행위에만 집중할 뿐 이면의 의미를 탐구하려는 노력에는 나태하다.

“어떤 위치에 있건, 어떤 운명이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 저자가 우리에게 설명하는 ‘자존’의 의미이다. 어차피 우리 모두가 다른 어린 시절과 환경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고, 또 미래를 살아간다. 다른 이들의 옆모습을 끝없이 곁눈질해가며 알량한 판단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당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기준점’을 찾으라는 충고는 그래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진부한 말도 결승점이 각각 다른 방향에 있다는 당연한 사실과 결합되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어떻게 알고 기준점을 세워야 할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저자가 제시하는 길 하나는 ‘고전’이다.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의 풍화를 이겨낸 고전은 “다수의 인간이라는 종이 느끼는 근본적인 무엇을 건드린 것”이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더 단단해’진다. 결과적으로 고전 숙독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해있는 자신의 본질에 대한 고민에도 도움이 된다.

너무 앞서가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 ‘기우杞憂’라는 고사성어가 있는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 몸둘 곳이 없음을 걱정한 나머지 침식을 전폐하였다 (두산백과)”는 뜻이다. 하늘이 무너질까봐 두려워했다니 이 무슨 쓸데없는 걱정인가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하고 있는 고민 중 10년 후에 다시 돌이켜 봐도 걱정할만했다고 인정할만한 게 과연 얼마나 될까. ‘처음 먹는 것처럼’ 밥을 먹고, ‘공이 우주인 것처럼’ 공놀이한다는 개 이야기는 그래서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영화 《아저씨》 주인공 차태식의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는 대사는 어쩌면 ‘현재’에 발붙이고 살면서 끊임없이 ‘미래’만 바라보는 우리를 향한 촌철살인이 아닐까.

앞서 말한 ‘자존’이 바로서야 권위와의 적당한 거리도 찾아낼 수 있다. 스스로가 누군지 확신이 없으면 타인과의 관계 설정이 힘들기 마련이고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이어지기 쉽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선생님에 대한 절대적인 권위 아래 학습한 세대가 우리 사회의 중추가 되어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권위에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굽어지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하지만 창의성을 강조하고 단순 작업 대부분이 컴퓨터로 대체된다는 시대에 이 같은 태도는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권위가 위험한 까닭은 소통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서 하지 못하는 일을 팀을 구성하고 회사를 세워 진행한다. 거기에 권위라는 단단한 벽이 서로 사이에 존재한다면 말을 포장하는데 치중해 내용을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 독재자 위안스카이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어 그만을 위한 신문을 발행했다는 웃지 못 할 일화는 권위에 의한 불통이 발생시키는 병폐를 잘 보여준다. 권위의식을 잠시 내려놓은 채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배려’하며 ‘할 말을 제대로 전하는’ 소통은 언제 어디서나 중요하다.

저자가 내세우는 여덟 단어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은 얼핏 보기엔 별 관계가 없는 듯 보이지만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내 안의 중심을 잡고 살자’가 그것이다. 지금 자기 인생에 대해 일말의 불안감이 느껴진다면 이 책으로 스스로를 다잡아 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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