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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유숙자 옮김 / 민음사 2002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옆 나라에 사는 우리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대작가이다. ‘전통적인 일본의 아름다움 속에서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창조’한 것으로 유명하다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하는 편이 이해가 빠를지 모르겠다. 13년에 걸쳐 한촌 에치고유자와에 머물며 작품을 써내려간 가와바타에게 설국雪國의 자연 경관과 계절 변화는 한없는 영감을 주었으리라. 휴양 덕택인지 《설국》의 문장은 도처에서 총총히 빛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는 첫 문장은 워낙 유명해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다.
“처마 끝 작은 고드름이 앙증맞게 빛나고 있었다.” p46
“개울을 따라 이윽고 너른 벌판으로 나오자, 신기하게 깎아지른 정상으로부터 완만하고 아름다운 사선이 멀리 산기슭까지 뻗어내린 능선 위에 달이 떠올랐다.” p76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문장 또한 봄바람처럼 기분 좋게 독자의 마음속에 스며든다.
탐미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는 평가를 받는 《설국》답게 주인공 시마무라는 예술가적 삶에 경도된 인물로, 속세의 일에는 고고한 선비처럼 무심하다. 그런 시마무라가 요양 차 지내는 산촌 여관에서 게이샤 고마코와 만나고, 이들 사이에 마을 처녀 요코가 낀 사랑의 삼각관계가 주요 스토리다.
발랄한 고마코과 정숙한 요코는 제각기 저만의 매력으로 반짝인다. 시마무라가 둘 다에게 빠졌다고 한들 크게 탓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시마무라의 감정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고마코와는 오래된 친구처럼 천천히 감정을 불사르는 데 비해 요코와의 관계는 강렬하며 순간적인 정열과 같이 그려진다.
고마코와의 첫 만남에서 그는 그녀가 깨끗하다고 적는다. 때묻지 않는 동기童妓의 순진무구함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을까. 그러나 그녀의 순진은 몇 번에 걸친 만남 속에서 흐려지고, ‘현실’의 평온과 안정만 남는다. 속세에 허무를 느끼는 시마무라에게 이는 오히려 싫증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반대로 요코는 첫 만남부터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에 ‘서늘하게 찌르는 듯한 처녀의 아름다움’이라 표현할 만큼 그에게 예술적 감상을 느끼게 한 듯하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안타까움 또한 애절한 감정을 더 끓어오르게 했으리라. 한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유키오와 함께 등장하는 첫 장면은 불안한 엔딩을 예고한다.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헛수고, 무상, 허무를 시마무라는 계속해서 언급한다. 가와바타는 예술은 현실 또는 실생활과 무관하기 때문에 비로소 온전히 예술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본 것으로 생각된다. 시마무라는 고마코가 옹색한 촌구석에 있으면서도 일기를 쓰고 소설을 읽으며 샤미센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데서 매력을 느끼고, 이미 죽고 없는 유키오의 무덤을 매일 찾는 요코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동한다. 그가 일본인에 의한 서양무용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현실과 지극히 유리된 ‘서양에서 공연된 서양무용’에 대한 비평만 한다는 점에서 ‘헛수고여야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는 더욱 두드러진다.
작품 내내 감지되는 죽음의 기운은 일본 특유의 미의식인 ‘모노노아와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전적 의미는 ‘자연과 인생에서 나타나는 순간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깊고 애절한 이해’ (1) 라는 뜻인데,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들이 스러져 가는 것을 지켜봄으로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 변화를 예술적 감각으로 승화시킨 것을 말하는 듯하다.
‘억새군요’ 하고 시마무라는 한번 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고는,
‘그렇다면 산에 핀 건 억새로군요, 싸리꽃인 줄 알았습니다’
시
마무라가 기차에서 내리자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이 산의 흰 꽃이었다. 경사가 가파른 산 중턱에서 정상 가까이 사방 가득
흐드러지게 피어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산 위에 쏟아져 내리는 가을 햇살을 방불케 해, 아아, 하고 감동에 젖었던 것이다.
그걸 흰 싸리로 알았다. p80
여기서 가장 큰 차이는 억새는 다년생 식물이며 싸리꽃은 한해살이 식물이다. 무의식중에서도 시마무라의 미적 감각은 죽음을 향해있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이는 엔딩에서 나오는 요코의 죽음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요코가 떨어진 2층 관람석에서 나무기둥이 두세 개 무너져내려 요코의 얼굴 위에서 타올랐다. 요코는 그 찌르듯 아름다운 눈을 감고 있었다. 턱을 내밀어 목선이 길었다. 창백한 얼굴 위로 불빛이 흔들리며 지나갔다.’ p151
아름다운 요코를 향해 끓어오르던 시마무라의 감정은 모노노아와레로 완성된다. 몸으로 이어진 고마코와의 현실적인 삶에 비해 손에 닿지 않는 예술의 세계에 존재하던 요코의 죽음이야 말로 시마무라의 감정을 최고로 고조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요코의 죽음으로 끝이 나는 엔딩은 그 후 시마무라의 감정이 어떠했을까는 침묵하고 있으며, 이러한 절제된 표현이 작품의 예술미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가와바타는 현실이란 인간의 짧은 생은 찰나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남는 건 예술만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 내에서 ‘헛수고’로 치환된 예술과 인생의 관계를 《설국》을 통해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문학 인생에 더 이상의 성취는 없으리라 믿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찰나에 불과한 생에 미련을 가질 필요도 없을 터, 가와바타는 1972년 가스 자살로 삶에 마침표를 찍는다.
1. 사진 통계와 함께 읽는 일본 일본인 일본문화, 2011년 9월 5일, 정형, 다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