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된 생각들 - 어느 날, 그림 속에서 피터가 말을 걸었다
전현선 글.그림 / 열림원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rologue

대화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대화는 결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두 개의 절벽 사이에 튼튼한 다리를 놓아준다.


비밀스럽고도 진실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끄, 개정2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반성완.백낙청 옮김 / 창비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르네상스 >

 

26 지금까지 보아온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심미주의적, 관능주의적 르네상스 개념의 특징들 중 어떤 것은 전혀 르네상스에 적용되지 않으며, 어떤 것은 르네상스와 중세 말기에 똑같이 해당하는 것들이다.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는 순전히 역사의 경계에 의해서보다도 오히려 지리적, 국민적 경계에 의해 갈리는 듯하다. 예를 들면 삐사넬로와 판에이크 형제 같이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중 어느 쪽에 속하는지가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대체로 남쪽 이딸리아에서 일어난 현상은 르네상스에, 유럽 북쪽 지역에서 일어난 현상은 중세에 속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인물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장면들이 하나의 통일체로 보이며 이 인물과 장면이 넓은 공간에서 묘사되는 삐사넬로의 이딸리아 예술은 르네상스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인물들이 자유롭지 못하고 어딘가 어색하며 겨우겨우 끼워맞춰놓은 듯한 인상을 주는 장면들이 좁은 공간에서 미니아뛰르 (중세 사본의 채색 삽화) 기법으로 묘사되는 전통적인 네덜란드 예술은 중세적이라 할 수 있다.

 

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술 스펙터클 문화정치 경성대문화총서 34
핼 포스터 지음, 조주연 옮김 / 경성대학교출판부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포스트 구조주의 이론들에 입각하여 저항적 포스트모더니즘의 구축에 동참했으나, 이후 포스트구조주의 계통의 포스트모더니즘이 표면상의 양식적, 정치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신보수주의 계통의 반동적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적으로 동일한 현상이 아닐까 하는 질문으로 나아갔다. … 최종적으로는 <<실재의 귀환>>에서 완결되었다(3. <기호의 수난>). 포스트구조주의에서 연원한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신보수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마찬가지로 후기 자본주의 아래서 훨씬 심화된 자본의 동력학, 즉 물화 및 파편화 과정의 동일한 산물로서, 주체와 재현, 언어와 역사적 서사성을 붕괴시키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신화파괴차용과 몽타주탈신화화공공연한 비난상징을 정화, 대상을 바꾸는, 기호를 탈구상징계

알레고리적 충동인용, 지시, 상투형

 

바르트가 1971년에 기표의 과학이라고 밝힌 것을 보드리야르는 1972년에  기표에 대한 물신숭배-약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약호에 대한 열광-라고 진단했다.

 

많은 미술가들이 역사적인 미술과 현대 미술 양자로부터 닥치는 대로 빌려 댄다. … 이런 미술가는 과거를 환대하면서 자신은 현재의 절박함 너머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딜레탕트고, 망상을 품고 있기 때문에 얼간이며, 역사적 계기-우리의 문제적 현재-를 잃었기 때문에 어영부영 맴도는 떠돌이일 뿐이다.

 

현대 미술은 역사적인 형식들에 관여했는데, 이는 종종 그런 형식들을 해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우리가 목격하는 새로운 미술은 역사적 형식들을 맥락에서 벗어나 물화된 형태로 취하는 경향이 있다. 패러디의 형태로든 아니면 곧이곧대로든, 이러한 인용은 새로운 미술의 중요성을, 심지어는 새로운 미술의 전통적인 지위를 간청한다. … “역사로의 복귀로 보이지만, 실상 그것은 심하게 비역사적인 과업이며, 그 결과는 흔히 허위의식으로서의 미적 즐거움이거나 혹은 그 반대이곤 하다.

역사의 맥락이 무시되고, 역사의 연속이 부인되며, 상충하는 미술 형식들과 생산 양식들이 혼성모방으로 잘못 해소된다. 과거의 특수성도 현재의 필연성도 주의 깊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 하지만 미술 형식이 특수하다는 사실은 거의 자명하다. 미술 형식의 의미는 그것이 속한 시대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그래서 순수한 이항이 불가능하다. 다른 시대들을 우리 시대의 거울이라고 보는 것은 역사를 나르시시즘으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다른 양식들을 우리 시대에도 쓸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역사를 꿈으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다원주의자의 꿈이다. 그는 미술관 속을 헤매는 몽유병자와 같다.

역사적 또는 사회적 한계들을 모르는 것은 그러한 한계들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훨씬 더한 종속 상태에 놓이게 된다.


< 표현주의의 오류 >

이와 같은 즉물주의는 표현주의의 성심리학적 수사를 조롱한다. 하지만 여기 그치지 않고 이 즉물주의는 한 항-정신이라는 영원한 삶”-이 다른 항-신체라는 죽은 문자”-을 억누르는 대립항들에 기초한 형이상학적 질서를 간접적으로 폭로하기도 한다. 이 질서는 표현을 미술의 진리로서, 미술의 진정성을 보증하는 것으로서 증진하고, 표현주의에 내면의 삶에서 우러나온 미술이라는 특권을 준다. < 친구들을 잡아먹기 >에서 이 형이상학적 질서는 반전된다. 내면의 삶은 신체 부위들로 환원되고, “ex-pression”은 오류

 


이런 화상에서는 동일시가 소외와 함께 일어난다. “액체처럼 흐물흐물해진 개인은 관례들의 완전한 피상성을 체화하려는 열정에 불탄다.” 이는 셔먼의 <분홍 가운>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시리즈에서 셔먼은 그녀의 고유한 자아를 노출하려 하는 것 같지만, 실상 노출되는 것은 편안한 고백 투의 자세로 노출된 자아 유형이다. 사적인 상태에서도 여성은 내부의 응시, 고백투의 발언에 의해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고백과 양심을 우대하는 우리 사회-토크쇼에서부터 대화치료까지-가 지닌 훈육적 본성도 확인이 된다.) 여성의 종속은 여성을 기호로, 물신으로, 가장된 모습으로 조작하는 탓이기도 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 해체되는 것은 자연적인 여성이기보다 표현적인 인공물-인공물로서의 표현-이다.


리처드 프린스에게는 이런 시뮬레이션에-의한-통제가 기정 사실이다. 따라서 그는 여행--여가 광고, 나이트클럽과 영화 디스플레이를 다시 사진으로 찍는 작업을 해왔는데, 그런 광고나 디스플레이를 엄청나게 왜곡하는 방식을 취했다. … 숨어 있는 조작들을 폭로하려는 것이 아니라(이건 훈계조고, 더구나 조작들은 너무나 뻔하기도 하다), 그 행위 속의 유혹을 포착하려는 것, 그런 이미지들에 사로잡혀 있는 그 자신의 매혹을 음미하려는 것-비록 그런 이미지들이 암시된 욕망을 통해 그를 조종한다고 해도-이다. 그렇다면 프린스의 과업은 잘못된이미지에 대한 비판이기보다 시뮬레이션-재현(“좋은사본과 나쁜” “사본”)이라는 오래된 질서를 소멸시키는 수열적인 세계-에 대한 탐색이다. 이 스펙터클의 사회에서는, 자아가 어디에나 반영되어 있는 동시에 반영되어 있지 않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의 위치는 성과 계급과 인종에 의해서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그리고 프린스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여기 안에서일어나는 주체-효과가 아닌 저기 바깥의스펙터클이란 없다는 것, 즉 자아의 투사와 스펙터클의 구축은 동일한 공정이라는 것이다.


제임스 케이스비어는 이 시뮬레이트된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숙고한다. 그가 직접 만든 타블로를 찍은 그의 사진은 마땅한 지시체가 없다. 객관적인 사본도 아니고 주관적인 상관물도 아닌 이 사진들은 재현(억압된 사건들의?)이 실재를 강탈한 환상과 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술사의 기초개념
하인리히 뵐플린 지음, 박지형 옮김 / 시공사 / 1994년 6월
평점 :
품절


조형적이고 외곽선을 강조하는 시각은 물체들을 고립시키는 데 반해 회화적으로 보는 눈은 그것들을 결합시킨다. 전자의 경우는 개별적인 구체적 대상을 견고하고 가촉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데 집착하며 후자의 경우는 보이는 전체를 부유하는 가상으로 파악하려 한다.


2. 평면적인 것에서 깊은 것으로의 발전: 고전적 미술은 전체 형태를 이루는 각 부분들을 표현할 때, 동일한 층에 평면적으로 표현하지만 바로크는 튀어나오고 들어간 관계를 강조한다. 평평함은 선의 요소이며, 평평하게 늘어놓는 것은 가장 확대된 시야의 형태이다. 윤곽선이 점점 의미를 상실하자 평평함의 의미도 상실되고 눈은 사물을 근본적으로 들어가고 나온 관계로 결합한다.


5. 대상에 대한 절대적 명료성과 상대적 명료성: ... 즉 그 차이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대로 전체적으로 수용하여 비조각적으로 재현하는 것 사이의 차이이다. ... 단지 소재의 명료성 그 자체가 더 이상 재현의 지상목표가 아니게끔 되었던 것이다. 이제 형태를 눈앞에 완벽하게 드러나게끔 하는 대신 중요한 특징만을 전달하는 것으로 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구성, 광선, 색채가 단지 형태를 명료하게 하깅 ㅟ한 보조적 수단이기를 멈추고 그 자체로 독립하여 발전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예르모 델 토로의 창작 노트
길예르모 델 토로.마크 스콧 지크리 지음, 이시은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종종 자기와 다른 것들로부터 단절된 채, 타자성을 위협적이라고 느끼고 거부하기 일쑤다. 그러나 기예르모의 예술은 우리에게 집이나 극장 좌석에 안락하게 앉아, 혐오스럽고 거부당한 것들을 공감과 연민을 가지고 되돌아보도록 권한다. 다양한 인간(과 심지어 비인간)의 경험을 아우름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정의를 확장해보라는 것이다.

<판의 미로>의 경우에 기예르모는 설화, 요정 이야기, 고전적인 아동 문학에서 추려낸 구성의 모티프를 반추하고 있다. 아이들이 통과의례를 견뎌냄으로써 이상하고 낯선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모티프가 환기시키는 일부 이미지, 예컨대 다시 살아나는 맨드레이크 뿌리

 

 

그러자 그는 내가 바로 지금 구세계에 대해 느끼는 바를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헬보이 2>의 주제와도 유사하죠. “우리는 지혜 대신 교만을 얻었고, 지성 대신 잔인함을 얻어, 세계를 잔인하고 차디찬 곳으로 만들었다.”

 

 

기예르모는 노트를 적으면서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용기를 갖고 원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하라고 되새긴다. 그런 일환으로 전작 <헬보이>에서 양서인간 에이브 사피엔 역을 맡은 존스가 <판의 미로>를 위해 <엑스맨><맨인블랙> 시리즈의 영화 출연을 고사했을 때, 기예르모는 의기양양하게 이렇게 썼다. “2007…… 올해는 나의 해다. 기예르모 델 토로.”

판은 대퇴골로 만든 플루트를 갖고 있다 아름다움과 그로테스크함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완전한 하나가 된다. … 나는 두 가지를 믿는다. 신과 시간. 둘 다 무한

 

 

우리는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고, 같은 영화를 두 번 볼 수도 없다. 기억할 만한 TRUEBISMO #1

 

 

유럽의 요정 이야기에서 금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에서 나는 유혹의 탁자 위에 음식이 아닌 금을 올려놓으려 했다. 두 가지 중 어느 쪽이 관객이 이해하기에 더 쉬울 것인가? (??)

 

 

내가 음식과 금이라는 두 가지 생각을 떠올린 것은 그 연회의 모든 것을 붉게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금이 단일한 색상을 띠듯이, 모든 음식도 젤라틴과 포도 등으로 붉게 만들어 색상을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트릭과 생각을 늘어놓기보다는 서두르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어떤 일을 진행시켜나가는 느낌이에요.

나는 노트가 더 많아질수록 점점 더 현실적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디자인 감각은 좀 무뎌졌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과거의 노트보다 이런 노트들이 더 좋아요. 이것들은 완전하거든요. 무언가를 찾고 있지 않아요. 이 노트들은 그저 어떤 식으로든 내 안을 들여다보는 나인 거죠.

 

 

폭군의 지배는 죽음으로써 끝나지만, 순교자의 지배는 죽음으로써 시작된다.” 나는 이거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적인 대립이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이름을 후대에 남기는 데 집착하는 남자와 그런 데 신경 쓰지 않는 소녀의 대립인 거죠. 물론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소녀고요.

 

 

전에 겪어보지 못한 장소나 방식 등 새로운 일에 직면할 때 약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정상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하려면 무언가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