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 - 포스트모던 시각으로 본 초현실주의와 프로이트
할 포스터 지음, 전영백과 현대미술연구팀 옮김 / 아트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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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초현실주의는 모더니즘적인 미술사 속에서 두 번의 실패를 맛보았다. 한 번은 입체주의를 축으로 하는 추상주의 중심의 미술사 속에서 억눌림을 당했고, 또 한 번은 다다와 러시아 구성주의를 강조하며 새롭게 등장한 네오 아방가르드 미술사 속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실패했다.

 

형식주의자들이 보기에 초현실주의자들은 부적절한 시각자료를 다뤘고, 엉뚱하게도 미술에 문학을 끌어들였으며, 형태에 관한 의무를 소홀히 했고, 미술 장르의 고유 법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또한 유년기와 구식 형태에 관심을 보이는 모순적인 아방가르드 상을 만들어내는 등 도대체가 모더니스트라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입체주의를 중심으로 미술사를 서술했던 형식주의 모더니즘 모델은 소위 모던 미술의 자율성 즉 사회적 실천과 분리된 채 오로지 시각 경험에만 기초하는 미술을 내세웠다. 형식주의 모델에 반대하며 나타난 네오 아방가르드 미술사는 다다와 구성주의 두 운동을 부각시켰다. 두 운동이 형식주의가 강조한 모던 미술의 자율성에 가장 반대되는 것을 추구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다는 형식적 관습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면서 독립적인 미술 분야를 파괴시키려고 노력했고, 구성주의는 미술 분야를 혁명 사회의 유물론적 실천에 발맞추어 변형시켜보려고 노력한 운동이었다. 이렇게 해서 네오 아방가르드 미술사의 재편성 과정 속에서도 초현실주의는 패배했다.

 

... 네오 아방가르드들은 초현실주의자들을 테크닉 면에서 뒤떨어지고, 주관주의적인 철학을 가진, 위선적인 엘리트주의자들이었다고 평가했다.

 

 

아방가르드 미술은 제도 기관을 전시공간에 한정하고 미술을 전통매체에 국한하는 옛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60년대와 70년대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다룬 화가들은 미술작품이 불러일으키는 현상학적 태도와 미술의 제도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 그 결과 한편에서는 미디어 이미지와 제도적 기구를 비판하는 데에 관심을 갖는 화가들이 생겨났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주체의 성이 결정되는 과정과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데에 관심을 갖는 화가들이 생겼다.

 

 

특히 포스트 모던 미술이 재현 문제를 비판할 때에는 거의 언제나 초현실주의를 참조한다. 1980년대 재현 문제 비판은 자주 알레고리의 차용, 특히 미디어 이미지의 알레고리 차용 문제를 가지고 전개되곤 했다. sexuality을 가지고 정체성identity을 뒤흔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뮬라크르simulacre를 가지고 실재reality를 뒤흔드는 것 역시 초현실주의자들이 시도했던 것 중 하나다. 따라서 재현 문제의 비판에 관여한 사람들은 곧 초현실주의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초현실주의는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문화론, 인류학과 같은 모더니티의 주요 담론의 집합점이다.

 

... 라캉 이외에 발터 벤야민과 에른스트 블로흐 같은 이론가들에게서도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생산양식과 사회관계가 불균등하게 발전한다는 마르크스의 생각을 기반으로 구식 물건과 다른 시대의 것을 활용하는 문화정책을 제시했다. 그것은 옛 이미지와 옛 감정 구조를 현재에 재각인시켜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이었다.

 

... 그들은 선물 교환과 축제의 잡단적인 행위가 양면성을 가진다는 모스의 설명을 바탕으로 상품 교환의 등가성과 부르주아 이기주의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을 발전시켰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삶과 죽음, 실재와 상상, 과거와 미래, 소통 가능과 불가능, 고상함과 미천함을 더 이상 모순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는 특이한 지점이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 그들은 한편으로는 이 지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지점이 자신을 관통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래서 양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이유는 현실과 상상, 과거와 미래가 겹쳐지는 지점은 언캐니의 경험 속에만 존재하는데, 그 경험은 죽음을 담보로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2장 초현실주의가 추구한 아름다움


중세시대의 경이, 고딕 시대의 경이, 초현실주의의 경이, 이 세 가지 종류의 경이 그 어디에서도 도대체 경이라고 하는 것이 외적인 사건인지 아니면 내적인 사건인지, 또 경이를 일으키는 것이 초월적인 요인에 의한 것인지, 세속적인 요인에 의한 것인지, 혹은 심리적인 요인에 의한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그렇지만, 초현실주의 경이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현실의 '부정'이며, 현실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철학적 전통의 "부정"이다. 1924년, 아라공은 "현실은 모순의 명백한 부재다"라며, 갈등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구조물로서의 현실을 제시한다. 그러고는 "경이는 실재에서의 모순의 분출"이라고 썼다.

브르통과 마찬가지로 아라공은 일생 동안 경이를 사랑과 관련시켰다.



사진은 기호가 된 자연인 베일에 가려진 에로틱한 것, 그리고 운동중 정지된 자연이라 할 수 있는 정지된 폭발, 이 두 가지를 모두 자동적으로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사진이 초현실주의 미학의 조건 그 자체를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 베일에 가려진 에로틱한 것 또는 충격 때문에 발작을 일으킨 것처럼 뒤흔들려 글로 표상된 실재는 하나의 사진적 효과이다. ... 그 언캐니는 궁극적으로 생명이 없는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강박증, 석회암, 석영, 크리스탈 결정체와 같은 무기물 상태의 죽음으로 되돌아가려는 강박증에서 발견되는 언캐니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폭발하는 상태가 멈춰버린 것, 혹은 충격으로 인해 발작을 일으킨 실재는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 결과물 자체보다, 그 결과물이 우리 심리세계에 끼친 의미이다. 사진촬영에 의해 만들어진 정지 상태의 주체는 심리세계 내에서 죽음을 예고해주는 언캐니한 이미지라는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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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침묵 법정 스님 전집 9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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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인간생활이 만들어낸 소음 때문에 가장 청결하고 그윽해야 할 인간의 뜰이 날로 시들어간다.

 

차를 마실 때 한 입에 꿀꺽 삼켜버리면 아무리 좋은 차라도 그 맛을 알 수 없다. 한 모금씩 입안에 머금었다가 삼키고 나면 그때부터 향취와 맛이 우러난다. 경전을 읽는 태도도 이와 마찬가지다.

 

뜻을 담은 말은 침묵을 배경으로 발음될 수 있고, 말 끝에 오는 침묵은 새로운 뜻을 담은 말을 잉태한다. 음과 음 사이에 침묵이 깔리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음악이 이루어질 수 없듯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이 말과 침묵의 의미를 거듭 다져서 온갖 소음에 매몰되어 시들어가는 인간의 뜰을 다시 소생시키기를 빈다.

 

 

 

괴로움의 원인은 인간의 욕망과 애착에 있다는 것. 모으고 쌓은 것은 모두 괴로움인데, 재산도 지나치게 많이 쌓으면 그것이 괴로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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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열전 1 (양장본) -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유홍준 지음 / 역사비평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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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처음부터 이름으로 마음을 삼겠는가. 기예가 극에 다다르면 이름은 저절로 오래 가니 총을 쏘는 것과 바둑이 이것이다.

 

옹으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지 않게 하고 공경이 되게 했다면 비록 한때의 부귀는 극할 수 있었겠으나 그 이름이 능히 이와 같이 이렇게 반드시 전해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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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 - 문학과 문화학의 교차점
최문규 외 지음 / 책세상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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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은 인간에게 나타나는 기억이나 망각의 심리적 현상과 서사의 관련성에 주목한다. 우선 개인의 기억, 망각 현상과 거기에서 작용하는 욕망의 역동성이 어떻게 서사의 과정에 개입하는지를 프로이트의 기억론을 중심으로 고찰할 것이다. 나아가 기억과 욕망의 역동성에 초점을 맞춘 정신분석 서사론에 대해 논의하고 이어서 막스 프리슈의 소설 읽기를 시도할 것이다.

 

개인의 기억과 망각은 한 민족이 전설과 신화들을 통해 보존하고 있는 초창기에 대한 기억이나 망각과 상당한 유사성을 갖는다. 문화를 고통의 위협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채택한 수단으로 본다면 그것은 결국 불쾌를 피하고자 하는 인간 개인의 내적 성향에 의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 심리와 서사의 차원에서 기억과 망각에 대한 논의는 문화 형성 과정의 한 동인에 대한 연구가 되며 그것은 또한 문학과 문화학의 교차점을 확인하는 작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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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과 형세 - 발터 벤야민의 미학 서강학술총서 35
최문규 지음 / 서강대학교출판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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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 기억은 “아주 작은 것에서의 변형”과 “있었던 것에서의 무한한 변형”으로 각기 정의되지만 양자의 공통점은 바로 변형의 힘에 있다.


(분리와 결합, 산종과 구성 같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적으로 지닌 형세 개념은 천문학에서 차용된것으로서 ...) 흩어져 있는 조각들이 순간적으로 어떤 형태를 이루는 상황에 대한 비유적인 예로서 < 베를린의 유년시절 >에서는 “다채로운 색깔의 창문들”, “비눗방울의 색채 놀이”에 빠져드는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때 흥미로운 점은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과 의식을 지닌 ‘나’라는 주체가 각각의 풍경과 책 속에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열린 글의 형태인 에세이는 합리성과 진지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운과 유희”에 의존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유가 무조건 행운에 맡겨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끝없는 성찰의 즐거운 고통, 즉 파괴하다가 구성하는 혹은 역으로 구성하다가 파괴하는 변증법적 상상력의 과정을 끊임없이 밟아나가는 일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대상을 어떤 체계적이고 논증적인 틀 속에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중심과 주변에 대한 분명한 구분 없이, 대상을 근시적이고 원시적 차원에서 동시적으로 다각도로 들여다보는 성찰 행위는 아도르노의 심미적 사유에서도 매우 중시되는 방법 아닌 방법이다.


결과가 아니라 그것들의 형세가 이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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