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 -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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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은 내 안의 있는 세계를 확장시키는 일이다. ❞


신문사에서 미술 담당 기자로 10년 넘게 일하던 커리어에 잠시 제동을 걸어두고 뉴욕으로 떠난 저자. 여행이 설렘을 가지고 잠시 부유하는 것이라면, 불과 1년이라도 그것이 삶이 되면 뿌리 내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행에서의 이국적임은 큰 매력이지만, 삶 속에 스며든 이국적임은 낯설고 불편한 것, 그리고 나와 그곳의 사람들을 나누는 진한 선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뉴욕의 일 년 살이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단지 외국에서 사는 것에 대한 환상과 동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은 아니다. 동양인 여성으로서 뉴욕의 삶은 인종차별은 기본값이었고 뉴요커들의 텃세는 덤으로 얹혀졌다. 그림이 가격으로 줄 세워지는 뉴욕 아트 비즈니스 세계와 그곳의 화려한 사람들 틈에서 공허함과 이질감도 느꼈다.


그럼에도 모든 익숙함을 단절한 채 먼 이국의 땅에서 홀로 산 1년은, 그녀의 말대로 자신의 내면의 다른 세계를 열어 주었다. 생산 강박을 내려놓고 현재를 즐기는 마음으로 살다보니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비혼으로 홀로 살아갈 저자의 삶의 태도를 정립하는 시간도 갖게 했다.


1년의 뉴욕생활에 대한 일기 혹은 에세이 형식으로 진행되는 글에 종종 미술기자로서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맛난 향신료처럼 첨가된다. 뉴욕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에드워드 호퍼 외에도 알브레히트 뒤러, 차일드 하삼, 게르하르트 리히터, 존 슬롯, 호러스 피핀 그리고 괴테와 샬럿 브론테까지 유명하거나 아직은 생소한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균형있게 책에 담겼다. 그리고 그녀가 소개하거나 방문했던 뉴욕의 매력적인 고서점, 독립서점, 예술서적 전문 책방은 탐서주의자로서 가장 부러웠던 부분이었다.


​📕아거시 서점 /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서점
​📕미스터리어스 북숍 / 추리소설 전문 서점
📕리졸리 서점 / 예술서적 전문 책방
📕보니슬로트닉쿡북스 / 요리책 전문 헌책방


이 책의 귀결이 여행의 의미에 대한 탐구인 것은 필연적이다. 우린 왜 여행을 떠나야 하는가에 대해서 저자는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기 위함이라 말한다. 육체적인 성장은 10대 후반이면 끝나지만, 한 사람의 내면의 성장은 나이의 한계가 없다. 성장의 동력을 제공하느냐 마느냐는 철저히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


__________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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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감정과 위작 - 박수근·이중섭·김환기 작품의 위작 사례로 본 감정의 세계
송향선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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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기의 기묘한 접점에서 탄생한 위작은 영화나 다큐의 소재로 꾸준히 활용되어 왔다. 예술의 성역 안에서 펼쳐지는 큰돈 걸린 사기극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박수근, 이중섭, 천경자, 이우환, 김환기 등 유명한 작가의 위작 사건이 있었고 그때마다 신문에 대서특필되며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따라서, 《미술품 감정과 위작​​》은 제목에 위작이 들어간 것만으로 미술 애호가의 호기심을 건드린다. 다만 이 책은 ‘위작 사건’ 중심이 아니라 ‘미술품 감정’에 무게를 실었다. 즉, ‘어떤 사건이 있었는가’보다는 ‘그것이 왜 위작일 수밖에 없는지’를 1) 안목 감정과 2) 작품 이력을 토대로 설명하는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위작 사례가 가장 많다는 소위 스타 작가 3인(박수근, 이중섭, 김환기)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뤘으며, 독자도 책을 읽으며 감정에 함께 참여하는 느낌을 주고자, 의도적으로 진작과 위작을 병렬 배치했다.





🎨마티에르란 무엇일까?


이 책은 위작 감정이라는 큰 목적에서 쓰였기에 화가의 개인사나 작품에 대한 해설보다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회화의 기술적인 측면’이 부각된다.


프랑스어 마티에르(matière)란 재료나 질감이란 뜻에서 진화하여 물감, 캔버스, 필촉, 화구 따위가 만들어내는 느낌, 즉 작가 특유의 개성적인 화풍을 가리키는 미술 용어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위작은 화가 특유의 마티에르를 따라 하려고 기발한 방법을 총동원한다고 한다. 박수근 작품의 경우 안료를 여러 번 반복해서 칠한 후 붓으로 문질러서 생기는 오돌토돌한 조형미의 마티에르가 특징적이다. 위작의 경우 오랜 시간 형성된 화풍을 급하게 따라 하려다 보니, 오돌토돌한 마티에르를 표현하려 붓을 세워 눈송이처럼 콕콕 찍듯이 그리거나 화폭을 일부러 구기는 경우도 있었다.


이중섭의 경우 그의 대표작 소의 위작이 많은데, 얼핏 보기엔 굵고 거친 필치로 그려 단순해 보이지만, 수많은 데생 연습으로 이뤄낸 결과물이라 따라 그리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위작과 진작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이중섭의 경우 간결한 필치로 거침없이 그려냈지만, 소의 움직임이나 살과 뼈의 구조까지 통달한 듯 비율과 동작이 완벽하다. 위작들은 소의 해부학적인 지식이 없이 따라 그렸기에 비율이 깨져있고 고개의 각도나 발 동작도 어색하다.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위작이 진작을 오히려 위로 떠받쳐 더 돋보이게 한다. 따라 그리려는 어설픈 노력에서 진작이 가진 독창성(originality)을 더 부각시키는 것이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모두 그것이 생물이든 물건이든, 사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뛰어난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재능’뿐만 아니라 ‘관찰력’, ‘사물의 본질에 대한 이해’또한 대단히 중요한 능력임을 깨닫게 해준다.


작가의 마티에르나 서명을 확인하는 것은 눈으로 감정하는 ‘안목 감정’에 해당한다. 안목 감정과 더불어 작품의 출처 및 소장 경위를 파악하는 것도 감정의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이것은 작품에 후천적으로 생긴 이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진작의 경우 대부분 전시회 출품이나 구매 이력이 기록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이를 살펴보는 것은 일종의 그림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위작은 화가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원작이 가진 역사까지 위조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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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인생수업 -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동섭 지음 / 아트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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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책은 꾸준히 출판된다.
그가 동생 테오와 주변 지인에게 보낸 수백 통의 편지 안에는
빈센트의 삶의 모습, 예술에 대한 고뇌와 열망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런 기록들은 우리에게 그의 삶과 작품을 다양하고 또 깊게 해석할 수 있는 지속적인 자양분이 되어준다.


이 책은 빈센트가 받은 후대의 예술적 영광을 걷어내고 그가 살았던 당시로 돌아가서 사랑에 서툴고 경제적으론 무능력하며 가족의 문제아로 살았던 '인간 빈센트'에 집중한다.


저자가 서두에 밝혔듯이, 이 책은 빈센트 반 고흐 작품에 대한 해설서가 아닌 그의 삶을 인문학 재료로 삼아 우리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그야말로 '반 고흐 인생수업'이다.



​﹅​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가난한 화가의 실패한 러브 스토리
-평생을 동생에게 생활비를 받아쓴 무능력한 형
-부모의 바람을 채워주지 못하고 가족의 문제아로 낙인찍인 맏아들


✒️어둡고 처절했고 가난했던 인간 빈센트의 삶에서 우린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가난한 화가가 예술의 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가 결국은 사후에 인정받는다는 이야기는 이젠 약간 클리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빈센트의 인생에 겸허한 마음이 들었다.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자괴감과
동생에게 돈을 받아 생활한다는 부끄러움,
동료 화가들조차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소외감과 절망감을
그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냈다.
그런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오롯이 느끼는 것도 대단한 용기이다.


모든 부분에서 가난했던 빈센트는 아름답지 않았던 그의 인생에서
자신의 몸과 영혼을 모두 쏟아 넣어 불멸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어느 누구의 처절한 인생도 어떠한 클리셰의 범주에 넣을 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이 책의 초점은 빈센트의 인생에 있지 않다.
책의 말미엔 화살표가 우리의 인생으로 틀어진다.


✒️우린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작가는 빈센트의 인생을 재료로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게 만들고
중요한 질문 하나를 독자의 마음 하나하나에 심어둔다.
원하지 않는 삶을 살 때, 행복은 많은 월급, 큰 집, 좋은 차, 수많은 물건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원하는 삶을 살 때는 가난하더라도 힘들더라도 희망을 쥐고 웃으며 살 수 있다.


죽기 전까지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화가였지만, 빈센트는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작품이 인정을 받을 거라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을 후회 없이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확신을 빈센트는 자신의 전 생애를 태우며 증명했다. ​



❝​⠀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억누를 수는 없으니 터뜨리기보다는 태어버리는 게 나아. 안에 있는 것은 밖으로 나가게 마련이야. 가령 나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구원이고, 그림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테니까.❞

-1887년 여름 또는 가을 빈센트가 여동생 빌에게 쓴 편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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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22.11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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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이번 월간 샘터도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읽는 종종
내 기억도 함께 더듬게 된다.


☘️☘️
몇 년 전 아일랜드로 여행을 갔을 때,
그 유명한 아이리시 커피는 먹지 못했다.
오히려 더블린 카페에서 현지인들이 흔하게 먹는 커피는 물을 덜 탄,
진한 아메리카노에 소스컵에 나오는 약간의 우유를 부어 먹는 것이었다.


아메리카노도 아닌, 라테도 아닌, 참 생소한 커피였다.
미국에서 먹기 시작해서 이름 붙여진 ‘아메리카노’ 만큼이나
이탈리아 사람들이 기겁할 만한 ‘화이트 아메리카노’는
아마 🫖 영국의 홍차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싶다.
진하게 내린 커피에 우유와 설탕을 넣는 것이
밀크티 레시피와 정확히 겹쳐지기 때문이다.
여행의 끝 무렵엔 이 독특한 커피 맛에 중독되어서
커피에 우유가 함께 나오지 않으면 달라고 요청할 정도가 되었다.


어느 기사에서 기후 온난화로 2050년에는
커피 재배지가 절반으로 축소되어 📉
전세계 커피부족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체감되는 공포감은 여느 공포영화보다 훨씬 더 했다.
커피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있을까.
미래에 어떤 대체 음료가 나오더라도 커피 만큼 상황에 잘 녹아드는
음료를 찾기는 힘들 것 같다.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 때도,
한없이 여유로운 시간에도 커피는 튀지 않고 잘 어울려준다.


아버지 뒤를 이어 속초에서 동아서점을 운영하는 서점 주인이 쓴
서점과 커피에 대한 단상이 흥미롭다.


🔖
“커피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향긋하고 감미로운 커피와 검고 쓰고 진한 커피,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커피와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마시는 커피, 여유를 구하고 만끽하는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와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 틈틈이 몸에 주입하는 커피. 커피에 어둡고 쓰고 진한 얼굴이 있는 것처럼 서점에도 그런 얼굴이 드리운다.”


오늘은 주말이니 여유의 커피를 마셔야겠다.
검고 쓰고, 몸에 주입하는 커피는 평일로 미뤄두고.
그리고 추억에 취한김에 아일랜드 식으로
진하게 내린 커피에 우유를 조금 타서 마셔봐야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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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불평등 - 프레임에 갇힌 여자들
캐서린 매코맥 지음, 하지은 옮김 / 아트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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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걸스로 알려진 익명의 여성 미술가-활동가들은 1989년 런던 테이트 미술관 벽에 아래의 문구가 담긴 포스터를 붙였다.


❝ 여성 미술가와 유색인종 미술가의 시각을 배제한다면, 당신은 그림의 반도 못 보고 있는 것이다. ❞


하지만 불행하게도 3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2020년 1월 기준, 내셔널갤러리의 2300점에 달하는 소장품 중 여성이 제작한 작품은 21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통계치로 본다면, 우리가 보는 예술 작품의 대부분은 ‘백인 남성’이 그렸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닐 것이다.





혹자는 위대한 여성 예술가가 없었을 뿐 아니냐는 주장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성이 예술계에서 제도적으로 차별받고 배제되었다는 사례와 증거는 무수히 많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여자의 재능은 왜 죄가 되었나》와 같은 두 책은 여성 예술가들의 제도적 차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미술관에 걸린 작품 중 여성이 그린 그림은 별로 없지만, 여성을 그린 건 많고 심지어 누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저자가 비판하는 건 나체를 그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나체를 어떻게 그렸냐는 ‘👀시선의 차이’를 꼬집는 것이다. 남성의 누드는 정치적인 힘과 영웅주의를 표현한 것인 반면, 여성의 누드는 ‘성적 대상화’에 그치기 때문이다.





시선의 불평등은 예술이란 성역 안에서 멋스러운 프레임에 갇힌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를 1) 비너스, 2) 어머니, 3) 처녀, 4) 괴물의 네 가지 주제로 나눠 전개한다. 예술에 대한 이러한 비판을 ‘검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검열이 아니라 예술을 보는 주체적인 시선을 되찾자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납득 가능하게 설명한다.


• 그림이 가지는 명성을 유지한 채로 그림이 표현한 성적인 내용, 왜곡된 여성상에 대한 인정을 왜 하지 못하는가?
• 두 가지 시선은 나뉘어지고 공존해도 되지 않는가?


결론적으로 저자가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여성들이 ‘여성들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경험했던 것을, 즉 온전하고(왜곡되지 않은) 솔직한 여성의 모습을 다양한 예술의 형태로 이야기하고 이것들이 문화의 주류로 편입되어 다양한 시각으로 함께 비교 평가할 수 있는 예술의 장이 마련됐으면 하는 것이다. 예술은 하나의 시선이 아니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가장 큰 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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