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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감정과 위작 - 박수근·이중섭·김환기 작품의 위작 사례로 본 감정의 세계
송향선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예술과 사기의 기묘한 접점에서 탄생한 위작은 영화나 다큐의 소재로 꾸준히 활용되어 왔다. 예술의 성역 안에서 펼쳐지는 큰돈 걸린 사기극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박수근, 이중섭, 천경자, 이우환, 김환기 등 유명한 작가의 위작 사건이 있었고 그때마다 신문에 대서특필되며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따라서, 《미술품 감정과 위작》은 제목에 위작이 들어간 것만으로 미술 애호가의 호기심을 건드린다. 다만 이 책은 ‘위작 사건’ 중심이 아니라 ‘미술품 감정’에 무게를 실었다. 즉, ‘어떤 사건이 있었는가’보다는 ‘그것이 왜 위작일 수밖에 없는지’를 1) 안목 감정과 2) 작품 이력을 토대로 설명하는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위작 사례가 가장 많다는 소위 스타 작가 3인(박수근, 이중섭, 김환기)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뤘으며, 독자도 책을 읽으며 감정에 함께 참여하는 느낌을 주고자, 의도적으로 진작과 위작을 병렬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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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에르란 무엇일까?
이 책은 위작 감정이라는 큰 목적에서 쓰였기에 화가의 개인사나 작품에 대한 해설보다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회화의 기술적인 측면’이 부각된다.
프랑스어 마티에르(matière)란 재료나 질감이란 뜻에서 진화하여 물감, 캔버스, 필촉, 화구 따위가 만들어내는 느낌, 즉 작가 특유의 개성적인 화풍을 가리키는 미술 용어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위작은 화가 특유의 마티에르를 따라 하려고 기발한 방법을 총동원한다고 한다. 박수근 작품의 경우 안료를 여러 번 반복해서 칠한 후 붓으로 문질러서 생기는 오돌토돌한 조형미의 마티에르가 특징적이다. 위작의 경우 오랜 시간 형성된 화풍을 급하게 따라 하려다 보니, 오돌토돌한 마티에르를 표현하려 붓을 세워 눈송이처럼 콕콕 찍듯이 그리거나 화폭을 일부러 구기는 경우도 있었다.
이중섭의 경우 그의 대표작 소의 위작이 많은데, 얼핏 보기엔 굵고 거친 필치로 그려 단순해 보이지만, 수많은 데생 연습으로 이뤄낸 결과물이라 따라 그리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위작과 진작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이중섭의 경우 간결한 필치로 거침없이 그려냈지만, 소의 움직임이나 살과 뼈의 구조까지 통달한 듯 비율과 동작이 완벽하다. 위작들은 소의 해부학적인 지식이 없이 따라 그렸기에 비율이 깨져있고 고개의 각도나 발 동작도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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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위작이 진작을 오히려 위로 떠받쳐 더 돋보이게 한다. 따라 그리려는 어설픈 노력에서 진작이 가진 독창성(originality)을 더 부각시키는 것이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모두 그것이 생물이든 물건이든, 사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뛰어난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재능’뿐만 아니라 ‘관찰력’, ‘사물의 본질에 대한 이해’또한 대단히 중요한 능력임을 깨닫게 해준다.
작가의 마티에르나 서명을 확인하는 것은 눈으로 감정하는 ‘안목 감정’에 해당한다. 안목 감정과 더불어 작품의 출처 및 소장 경위를 파악하는 것도 감정의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이것은 작품에 후천적으로 생긴 이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진작의 경우 대부분 전시회 출품이나 구매 이력이 기록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이를 살펴보는 것은 일종의 그림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위작은 화가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원작이 가진 역사까지 위조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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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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