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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장소 - 작은 카페, 서점, 동네 술집까지 삶을 떠받치는 어울림의 장소를 복원하기
레이 올든버그 지음, 김보영 옮김 / 풀빛 / 2019년 7월
평점 :

이 책의 제목인 제 3의 장소라는 단어는 나에겐 생소하다. 이 책에서 설명하기로는 제 1의 장소는 집, 제 2의 장소는 일터, 그리고 제 3의 장소는 술집이나 커피숍과 같이 긴장을 풀수 있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즐길 수 있는, 매일같이 드나들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을 말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미국을 예로 들었는데, 미국의 도시개발 과정을 보면 구획별 단일 용도 규정이 있어 주거 시설로 지정된 곳에는 상업시설과 같은 다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아, 근처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시설들이 없고, 어디를 가든 차를 타야 한다. 다시 말해, 집 근처에 좋은 친구들과 편안하게 쉬거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제 3의 장소가 되는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나 미국의 교외 주거단지는 사생활을 지나칠 정도로 보호하고, 사람들끼리 모일 수 있는 공공시설이 없다. 이런 곳에 거주하는 돈 많은 중산층들은 그 곳의 환경이 안전하고 질서정연하기는 하지만 변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숨이 막히는 생활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제 3의 장소의 특징은 비공식적이라는 것인데, 제 1의 장소는 가족, 제 2의 장소는 일이라는 목적으로 모인 공식적인 장소이지만, 제 3의 장소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을 포괄한다. 이 곳은 정치적, 그리고 지적 토론의 장 역할을 하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만큼 정치, 철학, 지리학, 심리학 등 다양한 소재가 화제에 오르내릴 수 있다. 과거 많은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연대가 카페 덕분에 출현했고, 노동자들은 카페에서 공통 문제에 관해 토론하고 집단적인 힘을 실현하기도 했다. 제 3의 장소의 또 다른 역할은 사무실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유럽과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자기 사무실을 유지할 돈이 없는 사업가들이 음식점이나 펍 등을 사무실처럼 이용하며, 심지어 명함에 음식점 주소를 적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하는 주인과 종업원조차도 그런 손님에게 메모나 우편을 전달해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비공식적 공공 장소는 많은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는 도시 생활에서도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권태로운 삶의 피난처이자 순수한 사교의 장소이고, 집과 일터외에 사회적 응집과 충족감을 만들어내는 장소이다. 만약 비공식적 공공생활이 없다면 사람들은 일과 가족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 하고, 가족과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 과하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높은 이혼율과 약물 의존 문제가 이런 장소의 부재로 인해 스트레스가 가중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삶을 떠받칠 제 3의 장소가 필요하다. 과거 파리 좌안에서 많은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모였듯, 우리도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와 즐거움을 위해 비공식적 장소가 필요하다. 한국은 도심에 카페와 술집같은 많은 상업 시설들이 있긴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제 3의 장소인 프랑스의 카페, 영국의 펍, 독일의 라거 비어 가든처럼 좀 더 오픈되고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스스럼없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은 없는 듯 하다. 그런 장소를 만들 수 있는 도시계획과 더불어 그런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시민 의식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