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리아 : 내일의 바람 사계절 1318 문고 120
이토 미쿠 지음, 고향옥 옮김, 시시도 기요타카 사진 / 사계절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아포리아. 그리스어로 '길이 없는 것', '통로가 없는 것'이란 의미이다. 이 책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 24년이 지나 2035년 다시 일본에 지진이라는 재앙이 닥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진의 규모는 진도 9.0으로 지진과 함께 덮친 대형 쓰나미는 도쿄 도심을 파괴했다. 이 때 무너진 집에 갖힌 이치야와 엄마. 엄마는 무너진 잔해에 깔려 찾을수가 없었고 이치야는 엄마를 구하고자 하지만, 근처를 지나 대피하던 길이던 택시 기사 가타기리가 엄마를 구하려던 이치야의 손을 낚아채 밖으로 대피시킨다. 그리고 바로 덮친 쓰나미를 피해 근처 건물로 피신한다. 목숨은 구했지만 어머니를 자신이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이치야. 그리고 그렇게 만든 건 자신을 구한 가타기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엄마를, 우리 엄마를 내버려 두고 왔어. 버린 거라고. 

도와 달라는 엄마를 당신이 죽였어. 그래, 죽인거야. -P37


이치야는 중학교 2학년이 되자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는 지진이 일어나기 전, 석 달 동안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방에 틀어박혀 모든 걸 차단하고 있었다. 삶에 대한 의지도 크지 않았다. 


왜, 어째서, 왜 나만

그렇다, 왜 자신만 살아 있는 건가. 살고 싶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단지 방에 틀어박혀 지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도망쳤다. 왜? 어째서? 왜? 왜 도망쳤지? 왜 뛰었지?

모르겠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살기 위해 몸이 움직였다.

.

아무리 강하게, 강하게 바라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살고 싶었지만 살지 못한 사람이 있다....-P88


대피한 곳에서 이치야는 다양한 사람들은 만난다. 차 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은 가타기리. 지진에서 혼자만 발견된 루나. 어린 시절 엄마를 잃은 네 살 소타 등. 각각은 저마다의 아픔을 지니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의도치 않은 단체 생활에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 등으로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위기속에서 그들은 서로 돕는 방법을 터득하고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어린 소타마저도 힘든 상황을 견뎌내는 것을 보며, 이치야의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과 가타기리에 대한 분노도 조금씩 누그러지게 된다. 그리고 끝내는 그들을 구하기 위한 의사를 모시고 오기 위해 지진의 잔해가 쌓인 거리로 나서 대피소로 앞장 선다. 


이 책에서 이치야는 힘든 고난을 겪으며 더 강해진 모습으로 태어난다. 사람들에게 상처받는 것도, 그리고 상처주는 것도 싫어 방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던 그가, 남들은 원했지만 자신은 원하지 않았던 지진 후의 삶을 살면서 자신의 존재를, 그리고 살아 있음을 긍정하게 된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서 있을 수 있고 앞으로 향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미래를 믿게 된다. 마지막에 이치야는 어머니를 구하지 못하게 막은 가타기리를 원망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구해준 그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살아갈게요. 저도, 여기서,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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