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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좀 만들어 줄래요? ㅣ 미래그림책 198
카타지나 보구츠카 지음, 용희진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9월
평점 :
이 서평은 카페블룸으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회사에서 돌아와 어두컴컴, 아무도 없는 집을 확인하면서 전자레인지에 인스턴트 만두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카페블룸 에서 받은 책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만두 좀 만들어 줄래요?"
피에로기, 폴란드의 만두와 같은 존재입니다. 본 제목은 분명히 피에로기와 관련이 있었겠지요.
제목 한 줄에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만두 좀 만들어 줄래요?라는 부탁은 가볍게 들리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관계를 시험하는 질문처럼 울립니다. 표지의 인물은 갓을 쓴 요리사 같기도 하고, 무대에 오른 연기자 같기도 한데, 노랑과 회색의 대비가 주방의 밝음과 저녁의 피곤함을 동시에 잡아당깁니다. 제 퇴근길 기분과 딱 맞아서, 첫 장부터 마음이 묶였습니다.

첫 장면은 마리나의 집입니다. 굽은 지붕의 저택, 울타리, 노란 나무. 현실보다 한 톤 낮춘 색들이 동화적인 거리두기를 만들어 주는데, 그래서인지 등장인물의 표정이나 감정보다 상황의 리듬이 먼저 들어옵니다. “하루는 매슈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라는 문장은 별일 없던 저녁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중말처럼 들립니다. 평소엔 귀찮은 부탁도 이날만큼은 이벤트가 됩니다.
이 책의 재미는 반복되는 핑계와 미션 수행 사이의 리듬입니다. 마리나는 매번 이유를 대며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고, 매슈는 그때마다 밖으로 뛰어나가 부족한 것을 찾아옵니다. 밀가루가 없어, 물이 없어, 달걀이 없어. 이 나열은 투정이 아니라 목록이고, 목록은 곧 행동의 순서가 됩니다. 회사에서 “자료는 있는데 표가 없고, 표는 있는데 결론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와 닮았습니다. 해야 할 단계가 보이면 몸이 먼저 움직입니다. 그림 속에서 매슈가 숲으로 달려가 장작을 패는 장면을 보며, 저도 내일의 해야 할 일을 떠올렸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하나씩 해결하면 저녁이 조금 덜 피곤해진다는 사실을요. 내일의 나에게 맡기며 미루게 되면 미래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읽다 보면 음식=사랑이라는 단순 공식 대신, 감정 노동과 경계 세우기의 미묘함이 보입니다. 부탁을 받는 사람의 컨디션과 의사가 존중받아야 하고, 부탁하는 사람도 혼자 먹기 싫다는 마음을 제대로 표현해야 하죠. 둘이 주고받는 대사는 연애의 달달함보다 협상의 예의를 가르칩니다.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하는 법, “그럼 내가 이건 준비할게”라고 손 내미는 법,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는 법. 그림은 과감한 평면 색으로 그 에티켓의 온도를 조절합니다. 노랑은 기대와 설렘, 회색은 지침과 현실, 흰색은 숨 돌릴 여지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덧붙이는 이야기에서 폴란드 만두 피에로기의 배경을 소개하는데, 저는 이 부분이 특히 좋았습니다. 반달 모양의 피에로기, 감자와 버섯, 치즈, 고기까지 다양한 속, 지역마다 다른 레시피, 여름 축제의 풍경. 만두가 국경을 건널수록 이름과 속이 달라지지만, 함께 빚고 나눠 먹는 장면만은 어디서나 비슷하다는 사실이 마음을 편하게 했습니다. 예전에 폴란드에 간 적이 있고 그 때의 행복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행복한 사람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는데 마리나와 같은 존재였었습니다.

책의 뒷표지는 이 이야기의 구조를 한 줄 요약처럼 보여줍니다. “밀가루가 없어요. 물도 없고요! 달걀도 없는걸요.”라는 말 뒤에 매슈가 이곳저곳 뛰어다니는 장면이 이어지고, 끝내 만두는 한 개도 빚지 못한다는 선언이 기다립니다. 저는 이 대목이 반전이라기보다 솔직한 결말이라고 느꼈습니다. 오늘은 실패할 수 있고, 실패한 저녁도 다음 날 이야기가 됩니다. 중요한 건 같이 뛴 시간, 서로를 바라보던 표정,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는 태도입니다.

레시피를 다시금 읽어 보며, 책이 단지 기분 좋은 동화로 끝나지 않게 배려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밀가루 300g, 뜨거운 물 125ml, 버터 20g, 반죽을 쉬게 하고 2~3mm로 민 뒤 동그랗게 떠서 속을 올리고, 물이 다시 끓으면 중불로 줄여 떠오를 때까지. 가시적인 성취가 쌓이는 단계들이 적혀 있는데, 저는 이 목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마감이 늘 미뤄지고 성과가 모호할 때가 많지만, 요리는 손이 움직인 만큼 결과가 나오니까요.
결국 이 책은 퇴근 후 20분짜리 휴식이면서, 함께 있음의 연습입니다. 부탁을 곧바로 들어주지 못하는 날도 있고, 모든 재료를 다 모았는데도 결국 못 만드는 날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둘을 보고 있으면, 만두라는 작은 단위가 일상의 온도를 바꾼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혼자 있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책을 보며 다시 느꼈습니다. 오해로 인해 떠나보낸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요.

레시피를 완벽히 따르지 못해도 좋고, 몇 개가 찢어져도 괜찮습니다. 오늘의 피로를 잠깐 내려놓고 서로의 속도를 맞춰 보는 일, 그게 이 책이 제게 건넨 가장 따뜻한 초대였습니다. 다시 보고 싶은 어떤 사람이 생각나는 하루였습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