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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 상·청춘편 - 한 줄기 빛처럼 강렬한 가부키의 세계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11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내가 다 읽을 수 있을까?
요시다 슈이치의 신작 『국보』를 받아 들었을 때 든 생각입니다. 상,하로 나뉜 책이라니... 예전처럼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는 열정도, 시간도 조금은 부족해진 탓입니다. 제법 두께가 있는 소설은 시작하기 전 약간의 마음가짐을 필요로 합니다. 상, 하편으로 나누어져있는 책이니 양이 상당한 편이네요.
요시다 슈이치. 『악인』이나 『분노』처럼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포착하던 작가로 기억합니다. 그런 그가 '가부키'라는, 한 예술가의 일대기를 다룬 정통 소설을 썼다는 점은 꽤 흥미로웠습니다. '그가 그리는 예술가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이 책장을 열게 만들었습니다.

낯선 세계, 그러나 생생한 묘사: 가부키의 세계
솔직히 저에게 '가부키'는 낯선 분야입니다. 일본의 전통극이라는 정도의 지식, 특유의 분장과 몸짓이 떠오르는 게 전부였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소설은 그 낯선 '가부키'의 세계로 독자를 차분히 안내합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위해 상당한 시간 동안 취재하고 연구했음이 문장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단순히 용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 오르기 전 분장실의 공기, 배우들의 땀, 무대 위에서의 긴장감 같은 것들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처음에는 이 낯선 세계가 조금은 거리감 있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 '키쿠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 독특하고 엄격한 세계의 분위기를 함께 호흡하게 됩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가부키를 억지로 '이해'시키기보다, 한 인물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만듭니다.
운명과 재능이라는 삶의 조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몇 가지 중요한 줄기가 있습니다.
소설은 야쿠자의 아들로 태어난 한 소년이, 우리가 쉽게 상상하기 힘든 거친 환경을 뒤로하고 가장 전통적이고 폐쇄적인 세계라 할 수 있는 '가부키'에 발을 들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첫 번째는 '운명'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거대한 운명의 흐름에 놓이게 됩니다. 40여 년을 살아보니, 삶이란 것이 내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국보』의 주인공은 그 '주어진 환경'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배경과 가부키 세계의 순혈주의 사이에서 오는 차이를 내내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이 소설은 '개인이 운명을 개척하는가' 보다는, '주어진 운명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가'를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두 번째는 '재능'입니다. 우리는 흔히 '재능'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재능이 때로는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주인공이 가진 재능은 그를 돋보이게 하지만, 동시에 그를 타인과 다르게 만들고 때로는 고립시킵니다. 혈연과 실력. 상당히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과, 그 노력을 무색하게 하는 듯한 재능. 그리고 그 재능을 가졌기에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 소설은 이 '재능'이라는 조건을 가진 한 인간의 삶을 차분히 따라갑니다.
삶의 또 다른 이름, 라이벌: 인간관계의 깊이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할 때, 주변 사람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긴 서사를 받쳐주는 또 하나의 기둥은 '인간관계', 특히 '라이벌'의 존재입니다.
주인공에게는 평생을 의식하게 되는 라이벌이 있습니다. 그는 주인공과는 여러모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인물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라이벌'이라는 관계가 단순하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저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라, 때로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자, 지치지 않게 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합니다.
『국보』에서 그리는 두 인물의 관계는 단순한 질투나 경쟁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우정과 애증이 뒤섞인,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길을 걷게 하는 복잡한 관계입니다. 작가는 이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예술의 길'이란 결국 홀로 가는 길인 동시에, 누군가와 함께 걷는 길임을 보여줍니다.

상,하로 나뉜 국보. 책은 상당히 긴 내용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를 지치게 하지 않으면서, 한 인물의 긴 삶의 궤적을 꼼꼼하게 그려냅니다. 저도 하편까지 읽어보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가볍게 즐기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천천히 곱씹어볼 만한, 깊이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내용에 깊이가 느껴집니다.
책을 읽는 동안, '국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단순히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자신의 주어진 운명 속에서 재능이라는 짐을 지고, 평생을 바쳐 한 길을 걸어간 그 '삶 자체'가 하나의 '국보'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에 관심이 있으신 분부터 시작해서, 가볍게 소비되는 이야기보다, 긴 여운을 주는 깊이 있는 이야기를 선호하는 분, 그리고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는 과정에 대한 묘사를 좋아하는 분, 인간의 운명, 재능, 그리고 삶의 여러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을 즐기는 분들이라면 이 긴 장편의 여정에서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서평은 네이버 북카페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