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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평점 :
이 서평은 #북유럽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1권에 이어서 계속되는 재이와 소인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제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위태위태한, 창가에 생기는, 사라질 듯 남아 있는 그런 것입니다. 2권의 마지막에서 그 의미가 완성이 됩니다.
폐암 수술을 마친 윤소인과 그녀의 곁을 지키는 이재이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1권의 스포가 되는 것이군요).
두 사람은 소인의 요양을 위해 장흥으로 향합니다. 보림사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소인과 그 곁을 지키는 재이의 모습이 나옵니다. 마음대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 같이 빌고 기다리는 겁니다. 재이의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저 자리에 있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것을 지켜보는 모습,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소설 내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감상평이지만 흥미로운 건 소인이 기도를 마친 뒤 석탑의 균형과 선을 살피고, 사천왕상의 표현을 이야기한다는 점입니다. 걱정이 많은 와중에도 미술을 공부한 사람의 눈은 그대로입니다. 역시 전공병(?) 직업병(?)인지 그런 소소한 재미를 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소인을 재이가 돌봐야 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다가, 그림과 조각을 보는 소인의 말을 더 듣고 싶어지기도 하네요.

동백꽃을 보는 장면도 비슷했습니다. 꽃이 예쁘다는 말에서 끝나지 않고, 그 위에 눈이 쌓인 모습을 시와 그림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서로 조금 과장된 말도 하고 장난도 칩니다. 사정이 어렵다고 매 순간 심각한 이야기만 할 수는 없겠지요. 이런 대화에서 가까운 연인의 느낌이 이어집니다. 언제나 슬프게 있을 수 없기에, 애틋합니다.
재이는 소인이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좋은 물감을 마련하는 일과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일은 다릅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이 있는 겁니다. 1권에서는 재이가 무엇을 마련해줄지가 중요한 이야깃거리였다면, 2권에서는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재이가 어떻게 소인의 곁에 있는지, 행동하는 것이 주요한 이야기 내용이 되겠습니다.

반 고흐의 그림을 따라가는 여행 내용은 책에서 생각보다 비중이 큽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소인이 「오베르의 교회」와 「아를의 반 고흐 침실」, 초상화들을 살피는 장면은 미술 서적을 읽는 기분도 잠깐 들었습니다. 색과 붓질뿐 아니라 그림에 담긴 가난과 외로움까지 짚어갑니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소인은 참 여러 가지를 읽어냅니다. 사실 여기서 소인의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저는 아 그림이구나, 할텐데 말이지요.
그런 감상과 관련해서 책 내용 중에 마음에 든 것은 그림마다 굳이 거창한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는 대화였습니다. 재이가 카페의 불빛과 밤하늘의 색이 잘 어울린다고 하자 소인은 그렇게 느끼면 된다고 합니다. 유명한 그림 앞에서는 뭔가 그럴듯한 감상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꼭 그럴 필요는 없겠지요.
다른 그림을 두고는 재이의 설명을 들은 소인이 장난스럽게 상을 주기도 합니다. 이때는 소인이 선생님이고 재이는 학생 같습니다. 재이가 소인에게 해주는 일만 보다가, 그 역시 소인에게 배우고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함께 지낸다는 것도 상대가 잘 아는 것을 옆에서 조금씩 알아가는 일일 테니까요.
물론 그림 설명이 길어지면 약간 소설의 핀트가 어긋나고,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잠시 멈춘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인물들의 말투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고전스타일입니다. 재이처럼 자기 시간과 형편을 전부 내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렵겠습니다. 다만 저는 큰 고백보다 같은 그림 앞에서 농담을 주고받는 쪽이 더 좋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소인의 병은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됩니다. 그런 변화는 재인의 운명마저 결정짓게 됩니다. 너무나도 서리꽃이라는 제목이 잘 어울리는 결말이 납니다. 서리꽃이 왜 등장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꼭 책 속에서 찾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으신다면, 이래서 서리꽃이라는 제목을 붙였구나, 하고 느끼시게 될 것 같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운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뒷표지에 나옵니다. 처음에는 익숙한 사랑 이야기의 문구로 보였는데, 두 사람이 보내는 시간을 따라가고 결말을 보니 다르게 받아들여지네요. 상대를 반드시 웃게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보다, 잘되지 않는 날에도 함께 있을 수 있느냐는 말로 말입니다.
주제 찾기를 독자의 몫으로 남긴 저자입니다. 제가 느낀 것으로 그저 '헌신적인 사랑이야기'로 끝내기에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아낀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도 살펴야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재이가 소인에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걱정하며 챙겨주는 것만큼,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보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이 서리꽃 2에서 나타납니다.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할 수는 없어도 그림 앞에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습니다. 두 사람의 큰 약속보다 저는 그 모습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재이처럼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힘들 것 같긴 합니다. 그래도 곁에 있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조금 더 관심을 두고, 그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주는 일부터는 해볼 수 있겠지요. 이런 사랑도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 슬픈 사랑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