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물방울 모양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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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북유럽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요즘 일본 소설 읽을 복이 터졌나 봅니다. 아니면 최근의 트렌드인가? 싶기도 하네요. 이번 주만 세 권째 읽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읽는 건 아니고, 뭔가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이나, 표지 같은 이유로 읽게 됩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기억은 물방울 모양' 이라는 소설입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담담한 이야기와 같은 소재의 내용이라는 표지가 눈길을 끌어서, 서평 이벤트를 신청해서 읽게 되었지요. 아무래도 요즘 친구들과 만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보니, 인연이 다시 빛나는 순간이라는 띠지에 혹한 것이 큽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고 나서의 내용은 단지 옛날이야기의 회상만은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졸업 작품을 함께 만들었던 나가세, 다카미네, 모리, 시즈쿠. 네 사람은 절친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며 인연을 이어갑니다. 보석을 리폼하던 회사가 문을 닫는 일을 계기로, 이들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됩니다. 추억만 꺼내기에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부터 만만치 않습니다. 즐겁기만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요.

책의 구성이 좀 독특합니다. 2025년에 시작해서 5년씩 거슬러 올라가며 1995년까지 회상한 다음,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지금의 사람들이 왜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담담히 서술하는 방식입니다. 앞으로의 일이 아닌 과거 회상이라 꽤나 흥미롭습니다. 먼저 본 말과 행동에 나중에 이유가 붙는 겁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면서 앞부분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재미있는 방식이네요.

첫 장의 날씨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좋은 날에는 날이 맑아 다행이라고 하고, 어색하면 날씨부터 꺼냅니다. 다들 한 번쯤 해봤을 말이지요. 별것 아닌 인사로 시작하는데, 말하는 사람이 놓인 상황에 따라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립니다. 처음부터 큰 사건을 벌이지 않아도 읽을 이야기는 충분하더군요. 그런 작가의 필력이 좋네요(번역하신 분도 그런 문장으로 잘 풀어내시는 거 같습니다)

미용실에서 흰머리를 발견하고 놀라는 나가세의 반응에는 웃음이 나면서도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비슷한 나이라 그런가... 그런데 오래도록 비슷한 머리 모양을 유지한 이유를 보니, 거기에 어머니가 했던 말이 남아 있습니다. 그냥 익숙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꼭 그것만은 아니었던 겁니다. 내가 좋아서 고른 것이라고 생각해도, 따져보면 남이 정해준 기준일 때가 있겠더군요. 저도 머리 모양은 거의 고정적인데, 이게 누구한테서 왔는지 생각해보면... 다들 사는 것 비슷합니다.




오랜만에 마주친 모리의 모습이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는 2005년 입니다. 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도 나오고요. 사실 무척이나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오랜만에 만났다고 무조건 반가운 이야기만 할 수는 없겠습니다. 가볍게 물어본 안부에 어디까지 대답해야 할지 고민되는 날도 있을 테니까요.

네 사람을 보면서 좋았던 건, 오래된 친구라면 서로의 사정을 전부 알아야 한다고 밀어붙이지 않는 점입니다. 모르는 부분도 있고, 말을 꺼내기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동안의 관계가 별것 아니었던 것은 아니지요. 늘 붙어 다니지는 않아도 만나면 아주 남 같지는 않은 사이도 있습니다. 꼭 절친이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겠더군요. 친구라는 정의가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 '지인' 정도의 느낌과 절친, 친구, 동료는 다 다른 느낌이긴 합니다.

보석을 고쳐 쓰는 일도 이들의 관계와 잘 어울립니다. 예전에는 자주 쓰던 장신구라도 어느 순간 손이 안 갈 수 있지요. 그렇다고 바로 버리기에는 거기에 얽힌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쓸 수 있는 모양으로 바꾸는 방법도 있는 겁니다. 사람 사이도 꼭 예전과 같아야만 계속되는 것은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친구 관계란 이런 게 아닌가? 하고 꼭 정의내릴 필요도 없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안그래도 요즘 친구 관계가 서먹서먹해지는 시기인데, 굳이 이걸로 마음 상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네요.


빗방울이 모여 강이 되고 바다로 흘렀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는 이야기는 저에게 꽤 좋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제목의 물방울을 보석 모양으로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좀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네요. 변한다는 것이 꼭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네 사람이 이어온 관계도 그렇고요. 친구..친구입니다.


지나온 시간을 전부 좋은 추억으로 만들지 않는 점도 현실적입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던 때도 있고, 남에게 말하기 싫은 모습도 있습니다. 그걸 알고 나면 처음 봤던 인물을 쉽게 판단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사실 소설은 재미가 없기도 하겠지요. 그렇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담담하게 현실로 돌아옵니다. 2025년이지요.


오래된 인연을 다룬 소설이지만, 결국 지금 그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라고 말하기 전에,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부터 물어보는 편이 낫겠지요.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아직 못 들은 이야기가 많을 테니까요. 친구란,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인연이 되면 다시 연락을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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