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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평점 :
이 서평은 #북유럽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태백산맥, 하면 실제 있는 산의 모습보다는 이 작가의 소설이 먼저 떠오릅니다. 저만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특별한 작품을 남겼던 조정래 작가입니다. 그런 저자가 자신의 마지막 장편 소설이라고 말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바로 이 서리꽃입니다.

등단 56년 만에 나온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장편이라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역사와 사회 문제를 많이 다루던 저자에게 이런 책이 나온 것도 재미있고, 저자가 이런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한 작가의 말 부분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야기는 대학 시절 시와 그림으로 가까워진 이재이와 윤소인에서 시작합니다. 재이는 시를 쓰고, 소인은 그의 시에 맞춰 그림을 그립니다. 특히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변용한 시화가 두 사람을 이어주는 계기가 됩니다. 말보다 먼저 시와 그림으로 서로를 알아봤다는 설정이 마음에 쏙 드네요. 푸릇푸릇한 대학 시절, 청춘의 사랑... 머나먼 이야기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애틋하네요.

책에는 시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지만 잘 쓰기는 어렵고, 조금 서툴더라도 자기 감성을 제대로 담았다면 의미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부분을 읽다 보니 사랑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 자체보다 그 마음을 어떻게 지켜가느냐가 더 어렵겠지요.
재이는 아버지 뜻에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 돌아옵니다. 그런데 다시 만난 소인은 기억 속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죽음, 남겨진 빚 때문에 그림에서도 멀어져 있었습니다. 재이는 그제야 자신이 알지 못했던 소인의 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후 이야기는 단순한 재회나 첫사랑의 설렘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돕고 싶어도 돈, 가족, 치료 문제 같은 현실이 끼어듭니다. 재이는 형과 거래까지 하며 소인을 돕겠다고 나섭니다. 여기서부터는 ‘얼마나 사랑하느냐’보다 그 사랑 때문에 실제로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집니다. 사랑이라는게, 참 소중한 것입니다.

조정래 작가답게 사회 문제도 빠지지 않습니다. 제주도의 난개발, 높은 아파트, 신공항, 자연 훼손에 대한 대화가 길게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사랑 이야기와 조금 따로 노는 것 같았지만,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이 살아가는 현실 역시 이런 문제 안에 있습니다. 사회와 떨어진 인간의 삶이란 쉽지 않으니까요. 사랑한다고 세상이 두 사람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구요.

재이의 가족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재이는 철학과 시를 좋아하지만 가족이 원하는 삶에서는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소인은 돈이 없어서 그림을 포기했고, 재이는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 돈 때문에 원하는 삶을 마음대로 고르기 어렵습니다. 둘의 처지는 정반대인데 묘하게 서로 닮아서 끌어당기나 봅니다.
조금 옛날식 사랑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재이는 소인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다시피 하고, 감정도 상당히 직선적으로 표현합니다. 요즘 소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장편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직 반 정도 밖에 오진 않았지만요.
읽다 보니 사랑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말을 지키기 위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메시지가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시와 그림으로 시작한 두 사람의 관계가 돈과 가족, 건강, 사회 문제를 만나면서 시험대에 오릅니다.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결론이 날까요?
1권을 다 읽었더니 궁금한 것은 단순해졌습니다. 두 사람이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보다, 서로가 자기 삶까지 지키면서 함께 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네요. 2권이 기다려집니다. 사랑의 크기보다 그 사랑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는지를 보고 싶습니다. 역시 거장의 흡입력은 어디가질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