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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의 아이 : 하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더픽션 / 2026년 8월
평점 :
이 서평은 #북유럽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상권을 읽고 나서 후다닥 하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가 따로 전개되던 부분이 언제 합쳐질까,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만납니다. 깨어나지 못하는 이레스 환자들과 살인사건, 그리고 시키나 아이가 눌러두었던 특별한 기억도 만납니다. 내용을 이야기하면 스포가 되어버리나, 자연스럽게 사건들이 만난다는 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조각들이 이어지는 재미가 하권에서 나타납니다.

상권에서 원인불명의 희귀질환 ‘이레스’와 꿈속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이었다면, 하권에서도 아이는 환자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영혼인 ‘마부이’를 되찾는 ‘마부이구미’를 이어갑니다. 단순히 꿈속에서 길을 찾아 나오는 일이 아닙니다. 환자가 무엇 때문에 절망했는지, 어떤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아무래도 의사로서의 책임감? 같은 것이 그를 자극합니다.
하권 초반에는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다마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피아노에 많은 것을 걸고 살아왔지만 더는 연주할 수 없게 된 사정, 그리고 구메라는 남자와의 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아이는 다마키의 기억을 따라가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봅니다. 여기서부터 환자의 개인적인 사연과 범죄 사건이 훨씬 가까워집니다. 점점 클라이막스에 다가가는 느낌, 짜릿합니다. 그래서인지 읽는데 속도가 붙었습니다. 계속해서 구메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스케일이 커져갑니다. 무죄 판결을 받았던 구메는 살인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습니다. 이런 구메를 조사해야 하면서 환자의 꿈을 들여다보던 일이 현실의 사건으로 연결되게 됩니다. 등장인물의 대화나 행동 하나하나를 허투루 넘기면 이야기에서 튕겨나가는 느낌이라, 몰입해서 읽게 됩니다.

소년 X, 23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현재 사건과도 연결이 됩니다. 주인공과도 연결되어 있는, 끔찍한 기억으로 존재하는 사건입니다. 특별 병실에 있는 마지막 이레스 환자는 누구인지, 지금의 사건과 과거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지까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환자를 치료하러 들어갔던 아이가 자신과 무관하지 않은 문제를 만나게 되면서 점점더 재밌어집니다. 상권은 따로 놀던(?) 이야기가 이제 하나로 흘러갑니다. 아주 자연스럽게요.
원래 주인공을 보면서 느꼈던 건 아, 의사가 환자들을 어떻게 깨울 것인가? 하는 호기심에 가까운 느낌이 주를 이루었다면, 하권에서는 이제 주인공이 다른사람을 도우면서 자기까지 감당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걱정스러운 느낌으로 바뀝니다. 환자의 사연을 이해하는 것과 자기 일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를 테니까요. 남에게는 필요한 말을 해줄 수 있어도, 정작 자신에게 같은 말을 적용하기는 어려운 법이지요. 좀 적용법이 다르겠지만, 내로남불(?) 같은 느낌이 아주 조금은 듭니다.


이야기의 흐름속에서 재미있게 느꼈던 것 중 하나는 꿈의 세계에서 얻은 단서가 현실의 사건을 다시 보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범인이 누구인지 맞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왜 절망했고 그 절망이 누구의 사건과 이어졌는지를 따라가게 됩니다. 환자의 사정을 하나 더 알게 될 때마다 현실에서 알고 있던 정보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미술 작품 같습니다.
하권에서도 판타지의 비중은 여전히 크긴 합니다. 아이가 몽환의 세계에서 깨어날 때, 익숙한 목소리와 병실의 장면이 뒤섞이는 부분은 현실과 꿈의 경계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치 하나의 세계처럼 말이지요. 상권에서 낯설었던 규칙들은 이제 익숙해져서 설정에 대한 의문 대신에, 그 안에서 무엇을 찾아낼지 호기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조금 이야기에서 벗어나지만 쿠쿠루가 다시 등장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몽환의 세계에 빠져 고통과 중력마저 다르게 작동하는 상황에서, 쿠쿠루의 도움으로 다시 감각을 되찾는 순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귀엽고 낯선 안내자처럼 보였던 존재가 하권에서는 아이에게 유용한 동료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중요한 역할도 하는데, 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소설에 등장하는 귀여운 조력자만으로 보기엔 꽤나 역할이 큽니다. 아, 판타지 소설의 대부분의 클리셰는 이런 귀여운 조력자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처음에는 잠든 환자들을 어떻게 깨울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하권까지 읽고 나니 그보다 더 궁금했던 것은 깨어난 뒤 이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다시 살아갈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는 재미와, 한 사람의 기억을 끝까지 들어주는 이야기가 함께 있는 책이었습니다. 상권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하권은 미루지 말고 바로 이어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 한국어 제목으로는 몽환의 아이로 되어 있고, 일본 원제는 ムゲンのi, 무겐노 아이라고 읽습니다. 몽환이 무겐이라 발음이 되고, 주인공 이름인 아이(愛衣)를 연결해서 몽환의 아이가 됩니다, 국내 제목은 그 의미를 살려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완독하고 나니 이 발음이 일본어로는 다른 뜻으로도 들릴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같은 발음인 '무겐노 아이'를 무겐(無限)’과 ‘아이(愛)와 같이 다른 방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몽환과 무한이 일본어로는 발음이 같습니다) 그래서 '무한한 사랑'으로 번역을 할 수 있는데요. 이 의미가 갖는 바가 컸습니다. 책을 다 읽고나서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제목이 가지는 의미가 또다른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몽환의 아이’로 시작해서 ‘무한한 사랑’으로 끝나는 제목, 그리고 내용입니다.
상권만 읽었을 때보다는 하권을 읽고 책을 완독하고 나서가 책 두 권 만의 만족도 이상인, 몇 배의 만족도를 주었습니다. 치넨 미키토 작가의 작품이 또 나온다면, 꼭 다시 정독해보고 싶네요.